최종편집 : 2021.5.10 월 10:36
인기검색어 : 등록금 반환, 코로나19, 조교 문제
신문사소개 | 호수별 기사보기
> 뉴스 > 학술 서평 > 인문산책
     
[인문산책] 코로나19 시대에 다시 보는 시몽동의 기술철학
[216호] 2021년 05월 10일 (월) 황수영 홍익대 교양학과 교수
   
△ 사진출처 : Pixabay

  나이 드시고 홀로 되신 후에 건강도 좋지 않으신 나의 어머니 때문에 늘 신경이 쓰인다. 활동적인 편이셨던 어머니가 작년부터는 허리의 통증 때문에 잘 걷지 못하셔서 외출하시거나 사회생활하시는 데 지장이 많다. 그러나 작년 초부터 밀어닥친 코로나19의 쓰나미는 내 어머니의 사례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광범위하게 우리 모두의 삶에 심각한 한계를 강제하는 중이다. 일상적인 사회활동에 있어서 개개인의 불편함은 말할 것도 없고 산업 현장, 교육 현장, 의료시설, 다중오락시설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전반적인 위축이 나타나는 것도 이제는 당연한 현실로 받아들여진다. 이 모든 것은 비정상인가? 우리가 인내하고 절제하며 견디는 것은 그것이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믿기에 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언젠가 과거와 같은 ‘정상적인’ 상황으로 돌아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삶에 대한 애착, 열정, 희망, 인내는 송두리째 배반당하고 아마 미쳐버릴 것 같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프랑스의 의철학자 깡길렘은 질병이란 비정상 상태가 아니라 다만 더 넓은 규범을 산출할 능력의 부재, 삶의 진취적 역동성이 방해받는 상태일 뿐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 허리가 굽은 노파는 허리를 펴고 걷는 데서 느껴지는 통증을 피하기 위해 꼬부랑 허리로 걸으면서 나름대로 생활을 영위한다. 다시 강조하면 질병과 장애는 축소된 규범이지 비정상 상태가 아니다.

  얼마 전, 어머니 집에 방문한 나는 당신이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친구들과 예쁜 사진들을 교환하시며 즐거워하시는 장면을 목격했다. 거기에는 화사한 봄꽃들과 어머니가 처녀이셨을 적에 꿈의 복장이었을 것임이 틀림없는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한복들이 있었다. 작년에 남동생은 어머니에게 스마트폰을 사드리고 조작하는 방법을 알려드렸는데 나는 어머니 연세에 불필요한 기술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아닌 게 아니라 어머니는 한동안 시시때때로 우리에게 연락하셔서 조작 방법을 물으셨다. 하지만 일정 시기가 지난 후에 당신은 나름대로 새 기기에 적응, 즐기는 방법을 터득하신 것이다. 나의 생각이 얼마나 짧았던지 반성하며 나는 어머니께 보행보조기를 사드렸고 당신은 거기에도 잘 적응하셔서 이제 하루에 한 번 외출하시는 데 큰 지장이 없으시다.

  우리는 현재, 깡길렘의 표현을 빌리면, 극단적으로 축소된 규범 속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사회학자는 이로부터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자신의 사회적 본질을 실현할 기회를 박탈당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연구할 기회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이는 과장된 것이다. 우리는 극단적 고립 속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이는 3차 산업혁명으로 불린 정보화혁명 덕분이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발달은 이미 코로나 사태 이전부터 인류의 광범위한 소통을 가능하게 해 주었고 당연한 일이지만 코로나 시대에 더욱 활성화되어 내 어머니의 사례가 아니라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이 이를 통해 소통하며 직업적 활동과 상품의 유통, 교육과 연구 등에서 준사회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인터넷의 활용 초기인 1990년대에 나는 프랑스에 있었는데 당시 그곳에서는 정보에 대한 가감 없는 접근이 개인에게 미칠 부작용을 우려해서 상당한 논의를 거치며 다른 나라에 비해 늦게 허용했던 것이 기억난다. 하지만 그 결과는 인간 사회에 대규모로 질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개인들은 이에 놀랍게 잘 적응하여 인류의 삶은 국지적인 역사를 넘어설 가능성을 넘보고 있다. 린 마굴리스에 의하면 단세포인 박테리아들은 핵과 이를 둘러싸는 막이 없어 서로 스치기만 해도 DNA를 교환한다고 한다. 박테리아 전체가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는 셈이다. 덧붙여 그는 진화의 가장 복잡한 단계에 와 있으며 가장 고립된 개체성을 가진 인간이 정보화 시대의 도래로 인해 생명의 원초적 형태인 박테리아들처럼 자유롭게 정보교환을 할 수 있는 네크워크로 연결된 상황은 아이러니라고 말한 바 있다.

  철학에서 이러한 상황을 예견한 이는 시몽동이다. 이미 1950년대에 시몽동은 개체 이전의 상태인 ‘전개체적 상태’를 가정하여 이로부터 개체가 출현하는 개체화과정을 자신의 철학의 주된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전개체적 상태는 이질적인 힘들이 공존하는 다양체로서 고대 그리스의 아낙시만드로스에게서 유래하는 무규정자의 상태다. 자연계에서 일정한 구조를 가진 것들은 무엇이든 개체화된 존재자다. 대부분의 광물의 기본을 이루는 ‘결정’이 그것이고 생명체들은 말할 것도 없이 개체화된 존재자들이다. 개개의 생명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산호나 히드라와 같이 군체의 형태를 가진 것들, 개미나 벌 같은 다형성(polymorphism, 생리적으로는 구분되지만, 삶의 실제적 과정에서 밀접히 연결되어 있는 개체들의 집단), 고등동물이나 인간의 사회와 같이 개체들이 모여 이루는 집단의 형태조차도 시몽동은 어떤 방식으로 개체화된 존재들이라고 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개체로 되기 이전의 전개체적 상태의 잠재력을 여전히 지니고 있어서 이 잠재력이 개체들을 관통하는 소통의 근원이 된다. 소통이 가능하려면 개체는 자신을 고립시키는 개체성을 넘어서서 전개체적 상태로 되돌아가야 한다. 시몽동은 이를 개체초월성이라 부른다. 인간들 사이의 관계가 단지 외적이고 기능적인 관계에 머물지 않는 것은 개체초월성으로 표현되는 전개체적 잠재력 덕분이다. 즉 우리는 존재의 원초적인 상태에서 이미 하나였던 것이다. 완전히 통일된 하나가 아니라 서로 이질적인 상태로 존재하여 양립 불가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결되어 있는 존재들, 이런 존재들이 바로 전개체적 다양체이다.

  정보화 시대에 작동하는 초연결망의 체계는 가히 개체초월적인 잠재력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체계는 인간들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기술적 존재의 매개를 통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결코 간과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 기술적 존재자들의 역할이다. 시몽동에 의하면 기술적 대상들 또한 특수한 방식으로 개체화된 존재자들이다. 기술적 대상들은 전적으로 인간의 의도와 힘에 종속된 존재자들이 아니다. 그것들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 맺음에서 발생하기에 자연에 내재하는, 무시할 수 없는 힘의 존재를 보여준다. 시몽동이 묘사하는 기술적 존재자들의 분류학, 그리고 그것들의 발생과 작동 및 인간과의 관계 맺음은 매우 독창적이며 현대적이다. 우선 기술적 대상은 도구나 연장, 기계들에 국한되지 않는다. 전통적인 수공업적 기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도구나 연장들은 사실은 기술성을 나타내는 ‘요소’들이며 기술적 ‘개체’는 산업혁명 이후에 나타나는 기계들에서 비로소 형태를 갖춘다. 또한 대규모로 진행된 산업혁명은 기술적 대상들 사이의 체계화를 요구하게 되고, 결국 기술적 대상들은 ‘집합체(ensemble)’의 형태로 작용하게 된다. 기술적 집합체들은 서로를 잇는 연결망의 형태로 존재하고 작동한다.

  산업혁명 이후 기술적 개체들(기계들)과 집합체들은 상호 보완하며 전대미문의 성과를 통해 인간의 노동을 소외시킨다. 인간은 과거의 노예 노동에서 해방되지만 기술의 발전 속에서 길을 잃게 된다. 기술은 계속해서 혁명적 단계들을 거치며 인간의 존재조건을 변화시켜 왔다. 시몽동은 연결망의 구조를 가진 오늘날의 기술을 ‘종합기술적 기술공학’이라고 부르며 이에 의해 변화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종합기술적 우주’라고 부른다. 거대한 연결망으로 제2의 자연이 되어가는 현대의 기술에서 인간이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는 기술적 대상에 존재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계와 인간의 가장 바람직한 상호작용은 서로가 닫힌 개체성에서 벗어나 서로에 대한 감수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기계에 대한 감수성은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무엇보다 필요한 인간의 덕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코로나19라는 시련은 우리에게 단지 넘어서기만 하면 되는 비정상적 단계가 아니다. 생태계의 미래는 예측하기 어려운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기술의 진화는 변화하는 자연과 상호작용한다. 새로운 기술혁명 시대의 초입에서 우리는 새로운 규범을 창조해야 될지도 모른다. 시몽동은 각 시대는 자신만의 휴머니즘을 갖는다고 한다. 휴머니즘은 그 시대의 소외 극복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기술적 존재자와의 상생은 다가올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휴머니즘을 가능하게 할 유일한 방도인지도 모른다.

ⓒ 동국대학원신문(http://www.dgugspres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페이스북 방문해 주세요!
더 많은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교육방송국 동국대학원신문 동대신문 동국포스트
동국대홈동국미디어컨텐츠 센터동대신문교육방송국동국포스트개인정보처리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4620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로 1길 30 동국대학교 학술관 3층 대학원신문 | 전화 : 02-2260-8762 | 팩스 : 02-2260-8762
발행인 : 윤성이 | 편집인 : 변재덕 | 편집장 : 서신화 | 발행처 : 동국대학교 대학미디어센터 | 청소년보호책임자 : 변재덕
Copyright DGUGSPRESS.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gupress@dongguk.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