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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공간]그림으로 만나는 루쉰, 루쉰이 건네주는 그림
연구자의 서재
[186호] 2014년 11월 03일 (월) 박진영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쉰다섯 살의 젊은 문호가 타계한 지 일 년 만인 1937년 10월에 루쉰을 신중국의 성인 반열에 올려놓은 것은 옌안의 전사 마오쩌둥이다. 중일 전쟁이 터지면서 긴 항전과 내전에 돌입한 직후의 일이다. 얼마 뒤 전쟁터 한복판에서 미래를 설계한 유명한 논문에서 마오쩌둥은 낡은 중국의 콩쯔(공자)를 대신한 루쉰이야말로 위대한 문학가일 뿐 아니라 위대한 사상가요 위대한 혁명가라 일컬었다.
   이십 년 뒤인 1957년 3월에 마오쩌둥 주석은 만약 루쉰이 살아 있다면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는 공교로운 물음을 던졌다. 마치 집을 나간 노라가 어떻게 되었는지 수소문한 한창때의 루쉰과 방불했다. 세간에 떠도는 말로는 루쉰이 감옥에 갇혀 글을 쓰거나 아니면 침묵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이 마오쩌둥이 내민 묘답이라는데 아마 사실과 어긋날 것이다.
   루쉰 전집을 등짐으로 지고 전선을 누볐다는 마오쩌둥 아닌가? 해방구에 루쉰 예술문학원을 세운 것이 마오쩌둥이며, 루쉰의 묘를 훙커우 공원으로 옮기고 묘비명을 쓴 것도 마오쩌둥이다. 틈 날 때마다 루쉰을 인용하면서 떠받든 마오쩌둥이 누워서 침을 뱉을 리도 없거니와 십 년 뒤에 몰아닥칠 문화대혁명의 광풍을 예고한 것은 더더욱 아닐 터다. 마오쩌둥의 진의는 루쉰이 소설은 쓰지 못할지언정 죽음을 무릅쓰고 산문을 쓸 것이라는 데에 있다. 눈앞에 닥친 숱한 난제와 위협을 정면으로 돌파해 나아가는 불굴의 의지야말로 루쉰 정신의 정곡이다. 그러므로 루쉰은 끊임없이 매섭게 쓸 것이다. 하찮은 감옥 따위를 겁낼 루쉰이 아니다. 
   어쩌면 루쉰이 한국에서 줄기차게 번역된 것도 그래서일지 모른다. 루쉰을 처음으로 번역한 것은 뜻밖에도 일본이 아니라 한국이다. 무엇이든 일본보다 먼저 번역된 경우는 아주 드물다. 제국에서 가장 먼저 번역된 루쉰의 소설은 『고향』이지만 식민지에서는 『광인일기』와 『아Q정전』이 앞자리에 나섰다. 일본인은 혁명 문학으로 읽기 시작했으나 한국인에게는 여전히 문학 혁명의 망치 소리다. 적성국 중공의 작가이면서도 루쉰만은 내칠 수 없었고, 민주주의의 샐빛이 보이자마자 루쉰의 산문부터 찾아 쥐었다.
루쉰은 어떻게 항전과 내전, 건국과 분단, 홍위병과 개방을 견디고 살아남았을까? 한국인에게는 왜 나쓰메 소세키나 모리 오가이가 아니라 루쉰이란 말인가? 무엇이 루쉰을 먼 나라, 딴 나라의 작가가 아니라 동아시아의 사상가이자 혁명가로 읽게 만들었나? 남한, 북한, 중국, 타이완, 일본의 동아시아 5개국에서 루쉰만큼 공통의 역사, 공통의 문학이 공유되는 때가 언제 또 올꼬?
   왕시룽과 뤄시셴의 그림 전기는 루쉰의 삶을 324점의 연환화(連環畵)로 짠 평전이다. 삶의 한 장면 한 장면을 그림으로 표현하면서 짤막한 이야기 마디로 엮은 책이 『루쉰 그림 전기』다. 그런가 하면 왕시룽이 펴낸 『그림쟁이 루쉰』에는 루쉰이 한평생 새기고 그리고 도안하고 장정한 112점의 글씨나 그림이 추려졌다. 루쉰이 빼어난 미술가이자 디자이너요 근대 판화 운동의 선구자라는 사실이 놀랍고, 단 두 권의 소설집을 남겼으되 300여 편을 옮긴 번역가로서 면목이 새삼스럽다. 그것이 다일까?
   루쉰의 삶을 그림으로 맛볼 수 있고 루쉰이 손수 매만진 그림을 들여다볼 수 있건만 꼭 루쉰이라서 문제다. 톨스토이의 삶이든 빅토르 위고의 예술이든 얼마든지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루쉰이라는 역사, 중국이라는 실감이 아니던가? 이를테면 『루쉰 그림 전기』를 보면서 사람을 잡아먹는 집, 철벽으로 둘러싸인 방에서 고함치는 광인과 아Q를 다시 만나게 된다. 『그림쟁이 루쉰』을 펼치면 검은색 직사각형에 갇힌 암홍색 ‘납함’의 글꼴에서 소리 나지 않는 부르짖음을 만지게 된다. 우리를 자꾸 되돌아보게 하는 것은 중국이 아닌 한국이요 중국인이 아닌 한국인일지 모른다. 또한 그때 거기의 한국과 한국인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한국과 한국인인지 모른다.
   손으로 글을 쓰기보다 발로 도망 다니기 더 바빴다는 루쉰은 죽음을 코앞에 두고 멋진 유언을 남겼다. 누가 루쉰 아니랄까 봐서 마지막 일곱 번째로 당부하기를 남을 해치고 복수에 반대한다는 둥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둥 떠드는 무리와 가까이 하지 말라 했다. 그러고 나서는 한술 더 떠서 원수들이 나를 증오하도록 내버려 두어라, 나 또한 결코 용서하지 않으마고 덧붙였다.
   응징해야 마땅한 자, 망각하지 말아야 할 일이 유난히 넘치는 세월이다. 나는 연구자로서, 학자로서 루쉰처럼 끊임없이 말하고 철저하게 쓰고 있는가? 루쉰처럼 마구 너그럽지 않고 함부로 관대하지 않게 공부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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