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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투사를 위한 음모론
[486호] 2014년 09월 22일 (월) 박민미 한국철학사상연구회

   
   △ “프리메이슨은 지구 정복을 원한다.” <음모> 옌스 루쉬 작.
   한동안 글을 쓸 수 없었다. 철학적 클리셰로 말하자면 악신(惡神)이 내 귓가에서 ‘확신할 수 있어?’라고 속삭인 탓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이 거친 현실이 결국 펜을 들게 한다. 사회 곳곳에 드러나는 퇴행 현상은 우리가 21세기 민주주의 사회를 살고 있는지 의심하게 하기 때문이다.
   국가와 시민 사회 간에 음모론의 되먹임 현상이 끊이질 않았다. 천안함 음모론에서 세월호 음모론, 여기에 화답하는 종북 음모론까지. 음모론은 권력과 정보와 시선이 비대칭적인 한 제기될 수밖에 없는 의혹이다. 그리고 제기되었던 음모론 중에 음모가 실재했던 것도 다수이다. 가령 미국에서 매독 연구를 위해 200명의 흑인에게 실험을 했고, 미국 질병예방센터(CDC)는 매독을 그들의 아내, 자식에게 옮게 방치하고, 매독에 걸린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이러한 의혹이 사실로 밝혀져 당시 대통령이 사과한 사건이 그 단적인 사례이다.
   음모, 즉 반사회적 공모(complot)는 대비할 필요가 있다. 파스칼이 ‘신이 있을 확률이 매우 낮더라도 신의 존재를 믿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한, 소위 ‘파스칼의 내기 논증’을 상기해 보자. ‘1. 신이 존재하지 않고 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산다면, 당신은 잃는 것이 없다. 2. 신이 존재하지 않고 신이 존재하는 것처럼 산다면, 당신은 잃는 것이 없지만, 더 나은 삶이라는 이득을 얻는다. 3. 신이 존재하고 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산다면, 당신은 큰 시간을 잃는다. 4. 신이 존재하고 신이 존재하는 것처럼 산다면, 당신은 잃는 것이 없고 모든 것을 얻는다. 따라서 신을 믿는 것이 합리적이다.’ 파스칼의 논증을 공모에 대해 적용했을 때 만일 우리의 삶과 큰 관련이 있는 공모가 있다면 이에 대해 대비하는 삶을 사는 것이 합리적이다.  
   어떤 공모에 대한 의혹의 제기는 언론이나 학자, 일반인이 수행하는 비판 활동이다. 그리고 공모가 입증되면 책임을 지우고 무근거한 것으로 드러나면 의혹은 종결된다. 그런데 ‘음모론’은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의 원인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할 때, 배후에 거대한 권력조직이나 비밀스런 단체가 있다고 해석하는 경향으로, 한 사회가 소통이 단절되고 개개인이 고립되는 현상이 심화될 때 무성하게 자라는 것이다.
   미국의 역사학자 티모시 태키트는 프랑스어 관련 ARTFL 데이터베이스를 분석하면서 1789년 7월에 시작하여 1791년 여름에 절정에 이른 음모론 빅뱅이 ‘하나는 죽어가고 하나는 태어나려 애쓰는 그런 두 세계 사이에서 헤매’는 와중에 말 그대로 폭발하였다고 관찰했다.
   과거 사람들이 혁명기에 겪었던 공포를 우리는 예외가 아니라 상례로서 체감하고 있지 않은가? 공포는 현대의 조건이라고 바우만은 말한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유동하는 공포』에 이어 『빌려온 시간을 살아가기』에서 국가를 ‘공포의 기계’라고, 그리고 표현을 달리해 ‘공포의 관리, 공포의 정리정돈과 공포의 재활용 공장’이라고 규정한다. 국가는 본질적으로 비정치적인 힘들에 의해 미리 만들어져 저장되어 있는 ‘공포의 공급물들을 이용’해먹는다는 것이다.
   고도로 경쟁적인 사회 조건은 경쟁에서 낙오하면 누구도 보호해주지 않는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공포감을 배가시키고, 그럼으로써 나 이외의 모든 사람을 신뢰할 수 없는 상태에 내몰린다. 예컨대 경제 영역에서 벌어진 금융 위기는 전세계인에게 직접적이고도 가공할 만한 피해를 일으켰으면서도 책임 소재를 가리지 않는 부조리로 인해 공식적인 해명을 믿지 않았고, 배후의 세력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며 『시대정신』, 『화폐전쟁』, 크루그먼의 『대폭로』 등의 해석을 낳았다. 이러한 기초 토양 속에서 조너선 갓셜의 말대로 ‘스토리텔링 애니멀’인 인간은 설명되지 않는 사건을 만나면 집요하게 공백을 메워가며 설명하는 이야기, 즉 음모론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소셜미디어라는 조건을 통해 순식간에 이야기는 퍼져나간다.   

   칼 포퍼는 일찍이 음모론은 반증가능성에 노출되지 않기에 과학의 문지방을 넘을 수 없는 설명 체계라고 했다. 음모론을 체계적으로 비판한 호프스태터는 음모론이 ‘증오에 휩싸인 정치적 편집증’으로서 정상적인 지배적 주류사회를 위협한다고 논했다.
   그러나 포퍼 식의 비판은 빗나간 것으로, 음모론은 과학이고자 하는 담론이 아니다. 미셸 푸코의 ‘담론’ 개념대로 음모론은 담론으로서, ‘현실을 반영하거나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구성하는 생산적 전략으로서의 언표 체계’이다. 바디우로 이어진 진리 개념의 수정은 진리가 지식에 구멍을 내는 것이라는 주장으로 나아간다. 바디우는 철학의 탈-봉합(de-suture) 개념으로 진리의 특권화를 비판하며 모든 독단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 방향, 여러 개의 진리 개념을 제시한다. 담론 개념, 탈-봉합 개념 등을 고려할 때, 만일 음모론이 청중에게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고, 모종의 의미효과가 언표들로서 유통되고 있다면 음모론을 ‘음모론’이라고 낙인찍을 것이 아니라 음모론이 제기하는 의혹에 대한 책임있는 설명이 제시되어야 한다. 천안함 음모론이나 세월호 음모론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 채 제기되고 있다면 이 문제에 대한 해명의 책임이 있는 단위는 이에 대한 납득할 만한 설명을 제시해야 비로소 음모론이 종식될 수 있다.
또한 호프스태터의 ‘정치적 편집증’ 비판에 대해 고려하자면, 음모론이 편집증적으로 매달리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음모론이 편집증적으로 매달리는 것은 설명되지 않은 문제에 대한 해명이며, 설명을 해줄 주체가 침묵하고 있을 때 파편적으로 드러난 사실을 조립하여 이해가 필요한 사건에 대해 이해를 구하는 것이다. 또한 파편화된 현상을 관통하는 근원적 병인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정상적인 이성으로는 납득이 되지 않는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고 있다. 거리에서, 그리고 컴퓨터 자판 앞에서 다양한 목소리로 우리 사회의 문제들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을 요구하고 있다. 권력 집단은 자신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음모론이라고 낙인 찍으며 피하려 하지 말고, 비판 받을 만한 소지가 있는 일에 대해 책임을 지기 위해 광장으로 나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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