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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과 개념어 연구
[182호] 2014년 04월 14일 (월) 이철호 동국대 다르마칼리지 교수
   
   △ 『영혼의 계보』(창비, 2013.12.30 출간)
 
  최근 번역된 아감벤의 『도래하는 공동체』(꾸리에, 2014)에는 자본주의가 초래한 디스토피아 속에서 현대인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구원의 잠언들이 담겨 있다. 그의 주저 『호모 사케르』가 그렇듯이 이 책에서도 아감벤이 그 유려한 사유의 탐색을 시작하는 장소는 바로 이탈리아어의 오랜 어원에 있다. 예컨대 ‘임의적’이라는 뜻의 형용사 ‘쿼드리벳(quodlibet)’의 라틴어 어원을 집요하게 들추어내서 그로부터 인간 존재의 특이성에 관한 철학적 통찰을 이끌어내는 사유방식은 아마도 아감벤의 애독자라면 낯설지 않은 장관 중 하나일 것이다.
  언어의 역사성에 대한 관심은 물론 철학에만 고유한 것일 리 없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 인문학계가 개념사 연구에서 보여준 성과는 그야말로 획기적인 의미를 지닌다. 특히 문학의 경우, 근대계몽기 이후 한국사회가 수용한 무수한 번역어들과 그 공론장을 면밀하게 탐구함으로써 ‘문학’을 자명한 실체가 아닌 역사적 구성물로 대면할 수 있게 되었다.
  아감벤이 비판적으로 계승하기도 한 미셸 푸코의 계보학이 시사하듯이 ‘문학’ 자체를 의문시하지 않고서는 한국문학과 주체에 대한 자유로운 발상이나 다양한 논의는 불가능하다. 문학은 우리가 이제까지 ‘문학’이라 호명하지 않은 것들, ‘문학’이라는 카르텔 외부에 엄존하는 법이다. 이를테면 민족, 리얼리즘, 역사적 유물론에 입각한 문학연구의 전통과 문학정전의 자폐성에서 벗어나 이른바 ‘문화연구’가 호황을 누리게 된 것도 문학을 구성하는 언어, 그 기원에 대한 탐색의 시도와 무관하지 않다. 「문학이라는 역어」(황종연)와 『한국 근대소설의 기원』(권보드래)은 그 대표적인 성과에 해당한다.
  『영혼의 계보: 20세기 한국문학사와 생명담론』은 앞선 연구자들의 안목과 통찰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저작이다. 나는 근대 문화담론의 핵심어였던 ‘영혼’과 ‘생명’을 중심으로 그 발생사적 기원을 해명하고 당대 문학텍스트에 미친 영향력을 고찰하고자 했다. 다시 말해, ‘생명’이나 ‘영혼’은 한국 근대 초기의 문화담론을 관통하는 유력한 에피스테메였다는 것이 이 책의 주된 가설이다. 황석우의 선구적인 시론을 한번쯤 읽어본 독자라면 누구나 주의를 기울였을 ‘영률(靈律)’, 근대소설의 시작을 알린 『무정』(1917)에서 주인공의 자아각성을 가능케 한 ‘생명’, 이제는 일상적인 단어가 되어버렸지만 192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신경향파 비평의 이론적 무기였던 ‘생활’, 그리고 대표작 「역마」로 잘 알려진 김동리의 해방기 문학에서 공공연하게 강조된 ‘운명’ 등은 그 시대적 격차에도 불구하고 실은 하나의 담론적 계보에 속해 있다. 『무정』이라는 민족주의 서사, 유미주의나 데카당스로 자신들의 문학적 정체성을 특권화한 동인지 세대의 예술론, 생명이라는 말을 부르주아 문학으로부터 탈환하는 가운데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서막을 자축했던 초보 유물론자들의 리얼리즘론, 그리고 근대 초기부터 한국전쟁기에 이르는 염상섭의 장편소설에서 자아와 세계를 낭만화하려는 경향을 포착할 수 있었다. 그들의 문학은 서로 갈등하고 때로는 적대적이기도 했으나 어떤 면에서는 같은 뿌리에서 자라나온 낭만적 영혼의 후예들이다.
  하지만 이 책은 ‘생명’이나 ‘영혼’의 원천을 제한적으로 검토했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만일 억압과 통념을 넘어 개인의 자유로운 내면을 옹호하려는 문화적 고투의 상흔이 이 어휘들에 배어 있는 것이라면, 그 원천은 굳이 베르그송이나 에머슨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영향들에 관한 숙고는 여전히 나의 몫이거나 아니면 미지의 누군가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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