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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다 - 2006년에 주목할 만한 음반
경계를 넘나들기 : 트로트적 음악에 대한 접근들
[137호] 2006년 11월 06일 (월) 최지선 대중음악 평론가

한국 대중음악에서 트로트는 일개 장르 이상을 뜻한다. 성인음악은 물론, 10대 댄스음악까지 트로트의 직·간접적인 자장(磁場) 하에 놓여 있다. 심지어 ‘대박’치려면 세칭 ‘뽕끼’가 적당히 있어야 된다고도 한다. 그렇지만 잘 알려진 대로 트로트는 여러 시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트로트의 왜색 논란이 오랜 난제였다는 점보다도, 트로트가 저급한 음악이라는 경멸 어린 시선이 더 본질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뽕짝’은 왕성한 잡식성 흡수력을 자랑하며 원 형태에서 변신을 거듭하고 세련화되어 왔다. 트로트가 몇 년, 몇 십년을 단위로 전국적 히트를 기록하는 일도 순환적으로 발생해왔다(알다시피 최근의 히트 순례의 주인공은 장윤정이다).

비주류 음악권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5음계 형식, 원초적 리듬 패턴, 가사나 음색에서 흐르는 비탄과 애상의 분위기 등 트로트 음악의 특성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음악 속에서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뽕끼’를 호명하곤 했다.

이때 대개는 위트나 농담조를 빌려오거나, 혹은 키치적으로 접근하기 위한 풍자가 소환되기도 한다. 그간 뽕짝을 ‘쌈마이 컬트’로 만든 이박사나 볼빨간을 상기할 수도 있고, 삼류통속 실험의 ‘작가’들이었던 황신혜 밴드, 어어부 프로젝트 등의 작업을 기억할 수도 있다. 이는 주류 음악에서의 히트를 위한 공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우선 한국 인디 씬의 선두주자이자 펑크 록의 맏형 크라잉 넛의 5집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청년 특유의 불만을 폭발시키거나, 애틋한 낭만을 호명하기 위해 크라잉 넛은 펑크의 직진적이고 거친 주재료에 키치적이고 장난스러운 터치를 융합시켜왔다. 갖가지 다양한 장르의 양념을 버무린 ‘짬뽕’ 펑크라고나 할까. 최근 발표된 5집도 크게 보면 이런 맥락하에 있되, 전보다 더 느긋하고 완숙한 경지를 보여준다.

이들의 위트 섞인 장난기는 곡제목부터 발동되어 있다. ‘OK 목장의 결투’가 아니라 ‘OK 목장의 젖소’이고, 영국의 펑크 밴드의 전설 클래시(Clash)의 ‘London Calling’의을 패러디한 ‘명동콜링’, 한자를 의도적으로 오기한 ‘백수일기(白水日記)’가 눈에 띈다.

사실 크라잉 넛이 ‘뽕짝’을 직접적으로 호명한 것은 아니다. 명동 거리에 대한 추억이 하모니카와 어코디언에 녹아 있는 애수 어런 선율과 화성이 귀를 잡아끄는 ‘명동콜링’은, 펑크에 진작부터 도입되어 왔던 스카/레게 리듬을 기본으로 한 것이다. 또한 쿵짝거리는 폴카 리듬은 크라잉 넛이 기왕에 자주 혼융시켜왔던 아이템으로, 아이리쉬 휘슬이 인상적인 ‘마시자’, 어코디언의 ‘My World’ 등처럼 유쾌하다.

스카/레게나 폴카의 쿵짝거리는 리듬은 뽕짝의 그것을 연상시키는 것도 같다. 하지만 여기서 더 언급하고 싶은 곡은 ‘물밑의 속삭임’이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게 심수봉이 ‘깜짝’ 피처링을 한 곡이다. 심수봉의 특유의 비음 섞인 ‘뽕끼’와, 크라잉 넛 답지 않게 사뭇 진지한 노래가 교배되고 있다. 이처럼 크라잉 넛의 음악은 트로트를 전면적으로 사용한 사례라기보다는 키치와 농담, 삼류와 촌티라는 자신들의 음악적 어법에 마치 트로트‘적’ 뽕끼를 융합시킨 것처럼 느껴진다.

여기서 크라잉 넛의 음악보다 더 트로트 질감이 느껴지는 특이한 듀오의 노래를 살펴보자. 20대 청년 한국인과 50대 중년 일본인으로 구성되었고, 싱글에 이어 정규앨범 〈행복〉을 발매한 ‘하찌와 TJ’가 그들이다. 하찌가 강산에, 전인권, 한대수 등 앨범 프로듀싱, 세션 등을 담당했던 베테랑 뮤지션이라는 사실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들이 ‘뜨게’ 된 것은 ‘장사하자’라는 싱글의 플래시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 때문이다. 진솔하고도 코믹한 느낌의 이야기와 함께, 밴드 뜨거운 감자의 보컬이자 방송인으로 활약하는(?) 김C와 육봉달(개그맨 박휘순) 캐릭터가 코믹하고도 ‘빈티나는’ 질감으로 정겹게 그려져 있다.

이들이 뛰어넘는 건 나이나 국적만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어쿠스틱 기타 중심의 소박한 포크의 테두리 내에 있으면서도 다양한 장르가 교차한다. 그중에서도 ‘장사하자’의 트로트적 질감이 가장 인상적이다. 버스(verse)에서 트로트의 ‘꺾는목’을 연상시키는 보컬이나, ‘고속버스메들리’를 연상시키는 연결부도 재미있다. 이외에 쿵짝거리는 리듬 위에 애수어린 선율이 얹힌 ‘집으로 가는 길’, 일본이나 한국 전통음악 어딘가에 위치한 ‘백사장’부터, 보사노바를 변형한 ‘안녕’, 하와이언 분위기의 ‘남쪽 끝섬’ 등에서 이 음반의 무경계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음악의 국적은 한국도, 일본도 아닌지 모른다. 그걸 ‘아시안 팝’에의 열망이 침윤되어 있다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앞에서 이야기했던 것 같은 트로트(적 음악)를 단순히 키치나 위트 수준이 아니라, 보다 더 전면적으로 트로트를 음악적 질료로 삼은 사례가 있다. 그것도 한두 곡에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앨범 전체를 통해……. 소규모아카시아밴드라는, 이름도 특이한 그룹의 2집 음반 〈입술이 달빛〉이 그것이다. 9곡 중 보너스 트랙을 제외한 6곡에서 ‘쿵짝쿵짝 쿵짜작 쿵짝’하는 트로트 리듬이 넘실거린다. 이 음반에는 트로트뿐 아니라 구전동요나 민요에 대한 관심이 투영되어 있다. 그렇지만 원색적인 트로트와도, 날 것의 ‘우리 소리’에 대한 천착과도 거리가 멀다. 1집과 연장선상에서, 서정적이고 고즈넉한 포크로 재탄생했다. 그것도 튀는 곡 없이 일관된 색채로 정갈하게. 너무도 가식적일 정도로 수수하고 소박하게.

하모니카와 어코디언이 애수에 젖게 하는 ‘고양이 소야곡’, 기타 선율이 아주 구슬프게 들리는 ‘슬픈 사랑 노래’, 부유하는 듯한 ‘파티’, 뽕짝거리는 리듬이 경쾌한 ‘입술이 달빛’까지. 그 중에서 ‘단장의 미아리 고개’와 ‘또 돌아보고’는 명시적으로 트로트를 지명한 사례이다. 물론 이 역시 소박한 일렉트로닉 포크 같다. 구전동요 ‘두껍아 두껍아’에서 차용한 ‘두꺼비’는 돌림노래 형식이 흥미로운 흥겨운 포크 팝이다. 작곡 및 기타연주의 김민홍의 목소리는 아주 낮고, 보컬 송은지는 가볍고도 몽환적인 목소리를 낸다.

사실 트로트는 익숙한 음악이면서도 낯선 음악이다. 7080세대가 트로트를 의도적으로 기피했다면, 지금의 10대에게는 트로트는 아주 낯선 음악이다. 비주류 음악권의 시선 역시 마찬가지다. 이 말은 결국 트로트가 여러 음악 재료 중 이색적인 하나의 모티브이고 질료일 뿐, 진짜 트로트에 대한 오마주는 아니라는 말이 된다. 결국 이들이 트로트에 가까이 갈수록 역설적으로 트로트로부터 멀어진다. 이처럼 고정되었던 경계가 또 허물어진다.

최지선 (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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