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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사람의 마음, 잡기 힘든 사랑의 온기”
사랑을 말하는 입은 많지만 사랑을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174호] 2012년 10월 15일 (월) 송 경 원 영화평론가

   
   △ <위험한 관계>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대상에 이름을 붙여 이해한 척 하고 싶어 한다. 모두가 정의를 말하지만 아무도 정의의 참 뜻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쉽게 용서를 입에 올리는 사람치고 진정한 용서를 실천할 수 있는 이는 드물다. 인류의 역사를 관통하는 수많은 물음표 중에서도 가장 오래되었지만 끝내 밝힐 수 없었던 감정은 아마도 ‘사랑’이 아닐까. 사랑을 말하는 입은 많지만 사랑을 정의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백 명이 있으면 백 가지 형태의 사랑이 있다고 할 만큼 사람마다 다른 것이 사랑이다. 한편으론 누구나 다른 이의 사랑이야기에 금방 눈물지을 만큼 보편적인 감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긴 세월 내내 사랑에 대해 읊조려왔다. 시로, 소설로, 영화로 수없이 되풀이되고 만들어진 사랑 이야기에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는 본능인 동시에 그 달콤한 감정이 지나간 향기에나마 취하고자 하는 허기짐이 묻어있다.

1782년 프랑스군 장교였던 피에르 쇼데를로 드 라클로의 소설 <위험한 관계>가 아직까지도 영화로 만들어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읽을 때마다 다르고 만들어질 때마다 새로워지는 사랑의 감정. 비록 설명할 순 없어도 동감할 수는 있는 사랑이란 이름의 미스터리는 2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매번 새롭게 피어난다. 2003년 이재용 감독이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라는 이름으로 한국관객에게 선보였던 이 이야기는 최근 한국 멜로의 거장 허진호 감독의 손에 의해 1930년의 상하이로 무대를 옮겨 다시금 스크린을 찾았다. 로제 바딤의 <위험한 관계>(1959), 밀로스 포먼의 <발뭉>(1989), 로저 컴블의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1999), 이재용의 <스캔들>(2003)까지 수 차례 영화로 만들어진 이야기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버전을 하나만 꼽으라면 1988년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이 만든 버전의 <위험한 관계>다. 뛰어난 연출, 화면의 완성도, 명 배우들의 호연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등장인물들이 사랑의 치명적인 위험함에 대한 물음을 계속 반복해서 되묻고 있다는 점에서 사랑이란 감정 자체의 본질에 가장 접근했던 영화로 기억하고 있다.

때는 18세기 프랑스 혁명 전, 퇴폐와 향락, 위선의 극치를 달리고 있던 파리 사교계를 배경으로 바람둥이 발몽드 남작(존 말코비치)과 사교계의 흑막이자 마성의 여인인 메르퇴이유 부인(글렌 글로즈)의 위험한 게임을 그린다. 자신을 배신하고 떠난 바스티드 백작이 불랑쥬 부인의 딸 세실(우마 서먼)과 결혼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한 메르퇴이유는 한번 찍은 여인은 반드시 취하고 헌신짝처럼 버리기를 일삼는 발몽드 남작에게 세실을 유혹해줄 것을 부탁한다. 그러나 이 때 발몽드는 고모의 성채에 머물고 있는 고결한 여인 투르베 부인에게 한참 빠져있는 중이었다. 투르베 부인이 좀처럼 넘어오지 않아 답답하던 차에 불랑쥬 부인이 투르베 부인에게 자신의 험담을 한 사실을 전해들은 발몽드는 분노하여 세실을 유혹한다. 한편 계속된 거절 끝에 결국 발몽드의 유혹에 넘어간 투르베 부인. 하지만 어느새 발몽드도 그녀의 순수함에 감화되어 진정한 사랑을 느끼고 있었다. 허나 기쁨도 잠시 그런 발몽드에게 질투를 느낀 메르퇴이유 부인은 세실의 어린 연인 당스니(키아누 리브스)를 종용하여 발몽드와 대결을 벌이게 한다.

사실 소설 <위험한 관계>는 당시 프랑스 귀족들의 허위와 위선을 고발하고 교훈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집필되었지만 실제로는 당대의 연애 지침서로 널리 활용되었다고 한다. 그만큼 도무지 알 수 없는 연애심리에 대해 절묘하게 포착해낸 부분이 있다. 이야기는 순수한 사랑을 하는 어린 세실과 당스니 커플, 그리고 위선과 거짓, 악의로 가득 찬 발몽드와 메르퇴이유의 관계를 축으로 전개된다. 재밌는 건 세상 물정 모르는 세실과 당스니 보다는 악인이랄 수 있는 발몽드와 메르퇴이유 쪽의 심리에 흥미를 넘어 공감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내가 왜 그 많은 청혼을 물리치고 결혼하지 않는 줄 알아? 더 이상 누구의 명령도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이야.” 발몽드의 구애를 매몰차게 거절하며 내뱉는 메르퇴이유 부인의 대사는 그녀가 단순한 악역이 아니라 스스로의 걸음으로 시대와 맞선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게 한다. 다만 이 이야기에서는 그런 감정이 비틀리고 억눌려 이상한 형태로 분출되었을 뿐이다. 메르퇴이유 부인이 발몽드를 파멸에 이르게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자신처럼 정상적인 사랑을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한 발몽드가 순수한 사랑의 의미에 눈을 뜨기 시작하는 모습을 아마도 그녀는 참아낼 수 없었으리라.

무릇 사랑이 어려운 이유는 자신에게나 타인에게 솔직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세실과 당스니의 사랑이 순수하고 아름답지만 부럽지는 않은 이유는 그들의 사랑이 고통을 모르는 아이들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거짓말을 한다. 그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때로는 살아남기 위해, 때로는 상처 받지 않으려, 때로는 스스로 거짓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매일매일 거짓을 토해내며 살아간다. 인간이 스스로를 속일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인 이유는 모든 인간이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상처를 주는 것도 받는 것도 두려워하는 평범한 사람이라면 메르퇴이유와 발몽드의 비틀린 애정행각에 연민과 공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은 불안해서 사랑을 한다. 상대를 소유하고 싶어 하고 나를 위로해주길 바란다. 하지만 고통을 아는 자의 사랑은 좀 더 품이 넓다. 나보다 상대를 먼저 생각하고 상대의 상처를 먼저 걱정한다. 나에서 너로 넘어갈 때 비로소 사랑은 그 모호한 얼굴을 조금씩 우리에게 내비치는 것이다. 허나 내 마음도 제대로 모르는데 상대의 마음을 알기는 참으로 어려운 까닭에 우리는 사랑이라는 미로 위에서 오늘도 헤맨다. 몰라서 못 하는 게 아니다. 알지만 어쩔 수 없는 것에 가깝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위험한 관계>처럼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본다. 그들을 연민하며 오늘 내가 저지른 실수들을 위로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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