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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에 대한 해석에 반대한다
수전 손택, 『은유로서의 질병』, 이후, 2002
[174호] 2012년 10월 15일 (월) 김 유 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

거짓 이미지를 깨는 일은 수전 손택의 사명과 같다. 그녀는 이미지 자체를 걷어내고 투명하게 보고 싶어한다. 다른 저서인『해석에 반대한다』나『사진에 대하여』에서 추구하는 투명성(Transparency)은 “사물의 반짝임을 그 자체 안에서 경험하는 것,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에 비추어 은유는 사물에 의미를 덧씌우는 ‘불투명성’으로 볼 수 있다.

그녀의 문제의식은 세상에 은유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은유는, 아리스토텔리스의 “어떤 사물에다 다른 사물에 속하는 이름을 전용(轉用)하는” 수준을 넘어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는 ‘살아있는 은유’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은유가 도덕적인 의미나 편견을 양산할 때 ‘너무 많은 것’이 된다. 질병은 사물성이자 인간에게 속한 것이어서 질병에 대한 은유는 질병을 가진 인간에게 고스란히 옮아간다. 유행병이 사회의 무질서나 왕의 실정을 나타낸다는 식의 신화적 해석이 근대적 개인에게 적용되었을 때 질병은 육체적 고통을 넘어선다.
이 글은 문학 에세이인만큼 유럽의 근대 문학작품에 나타난 질병의 은유가 망라된다.

결핵은 18세기에 낭만적인 영혼의 질병으로 여겨졌다. 결핵은 콜레라와 발진티푸스 같은 유행병과는 달리 그것에 걸린 사람을 공동체에서 고립시킨다. 결핵환자는 얼굴이 창백해지며 기력은 점점 쇠락해간다. 꺼져가는 촛불이 더 커지듯 정욕이 넘치고 이성을 유혹하는 비범한 재능을 얻는다고 여겨진다. 개성적이고 낭만적인 자아의 극적인 출현이다. 노발리스는 “완벽한 건강이라는 관념은 과학적으로만 흥미로울 뿐이다”며 이를 거든다. 결핵이 감수성이 풍부한 예술가의 질병으로 치부되는 일은 1952년 이소니아지드가 개발된 뒤에야 사라졌다.

이에 비해 암은 실존적인 병이다. 암을 선고받는 순간 죽음이 옆에 와 있다. 걸리는 부위도 결장, 전립선, 고환 등 수치스러워 숨기고 싶은 기관이 많다. 결핵이 서서히 영혼의 정화와 함께 육체의 낭만적인 쇠락을 일으킨다면 암은 육체의 고통과 동의어다. 톨스토이의『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이반은 암에 걸린다. 암환자는 결핵환자처럼 낭만적일 수 없다. 죽음 앞에 직면한 이반은 판사로서의 직위에 만족하며 헛되게 보낸 자신의 인생을 암이라는 죽음의 병에 걸리고서야 진지하게 되돌아본다.

매독도 빠질 수 없다. 보들레르가 “뼛속까지 스며드는 매독처럼, 공화주의라는 정신이 우리 모두의 핏줄 속까지 스며들어 있다”고 할 때 그것은 비유의 수준이다. 입센의 『유령』이나 토마스 만의『파우스트 박사』에서 매독은 오스왈드나 아드리안 레베르퀸은 도덕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더럽혀진 상태를 은유한다. 성적인 타락에서 생긴 매독은 현대에 와서는 에이즈(AIDS)로 대체되었다. 영화『너는 내 운명』은 에이즈 걸린 다방 여자를 좋아하는 농촌 총각 이야기였다. 에이즈 걸린 여자는 사랑할 수 없는 여자라는 은유 도식을 깼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은데, 영화의 소재가 된 현실 속의 에이즈 여자는 버림받고 혼자 살고 있다고 보도되었다. 수전 손택은 에이즈가 수혈을 통해 걸리는 경우도 많고, 단지 후천성 면역 결핍의 ‘증후’일 뿐이라며 에이즈에 대한 도덕적 심판을 거부한다.

기억을 점점 상실해가는 알츠하이머는 매우 문학적인 병이다. 기억은 인간의 정체성의 요소이며, 인간관계의 조건이다. 기억의 소멸은 한 인간에게 비참한 일이지만 그로써, 세상과 정신적으로 서서히 작별을 고하는 의식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은유로서의 질병’이다. 

이 글은 질병에 대한 문학적 은유가 한편으로 인간을 고상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사실, 폐결핵 환자는 숨을 쉴 때마다 악취를 풍긴다. 질병이 개성에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은 치료할 수 없는 병에 대한 낭만적 해석일 뿐이다. 질병은 질병일 뿐이고, 잘 치료하는 것이 우선이다고 주장하는 수전 손택도 질병에 대한 낭만적 혹은 실존의 은유로써 인간은 운명적인 비참함을 견뎌나갈 수 있다는 데는 동의할 것이다. 그녀가 문제 삼은 은유는 불안과 천박한 태도와 폭력을 담고 있는 편견이다. 유방암과 자궁암을 앓은 적이 있는 그녀로서는 암에 대한 온갖 은유로 고통을 겪었다. 신체의 면역능력이나 유전적 요인과 관련된 암을, ‘암적인 존재’, ‘종양의 침략’, ‘파괴 분자’, ‘절대적인 악’ 등으로 표현하는 일은 암 환자를 소외시킨다.

은유의 도식을 깨는 일은 어렵다. 특히 질병은 신체의 구체적 현상이어서 은유의 보조관념으로 포박당하기 쉽다. 수전 손택은 투병 경험에서 얻은 분노와 깨달음을 무기 삼아 질병에 대한 부정적 해석을 거부한다. 중요한 것은 날것의 형태인 질병의 현상과 치료일 뿐이다. 질병에 대한 해석 거부는 인종이나 성별에 대한 것보다 더욱 근본적이다. 질병은 누구나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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