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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쌍생아의 정체성을 찾아서
한성훈, 『전쟁과 인민』, 돌베개, 2012
[174호] 2012년 10월 15일 (월) 박 상 원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석사과정

필자가 북한의 개성공단과 금강산에서 일할 때 북측 직원들의 모습이 아직 기억에 남는다. 그들은 낮에는 남측 직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밤에는 당의 주의사항과 남측 시사에 관해 간단한 교육을 받는 총화(總和)를 실시한다. 북한 인민은 아직 자신의 조국을 위해 잘 조직된 체제의 성원으로 기능하는데, 이는 하방(下方)적이고 권위적인 국가 중심적 방식만으로는 절대 성취할 수 없는 모습이었으리라.

저자의 문제의식도 여기서 출발한다. ‘인민’(people)이라는 개념은 복잡하고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다. 서양에서 정치적 ‘인민’을 처음 이야기한 것은 로마였으며, 그 모습은 다면수(多面獸-beast with many head)였다. 인민은 일관적이지 않으며 중구난방이다. 이성보다 감성, 순간의 기분과 변덕에 의존하는 인민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민주주의와 인민주권의 시대의 실질적 주체인 ‘인민’을 규명하려는 학문적 시도는 국내외적으로 번성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그 학문적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자료접근이 어려운 북한이라는 영역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미개척 분야에서의 도전적인 성과물이다. 그 동안의 북한 연구는 집권층의 기반이 되는 인민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 북한 체제를 떠받치는 기층이 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 과연 그들은 어떠한 과정을 통해 통일된 정치적 주체로 거듭났는가? 저자는 북한 인민의 기원을 전쟁이라는 극단적 폭력의 경험을 통해 규명하려 한다.

저자는 해방 이후부터 1958년까지 전쟁수행경험과 사회주의체제 조직과정이 북한 인민을 형성하는 결정적인 계기였다고 주장한다. 전쟁은 북한 인민이 스스로 정체성을 내재화하는 정치적 사건이었다. 칼 슈미트가 『정치신학』(1922) 및 『정치적인 것의 개념』(1929)을 통해 이야기한 바와 같이 전쟁이란 일종의 ‘예외상태’이며, 전쟁의 목적은 아군과 적을 가르고 집단 내부의 동질화·균일화를 추구하는 동시에 적으로 규정된 존재를 모든 물리적인 수단을 총동원하여 박멸하는 것이다.

북한 인민도 전시 총동원체제라는 ‘비상사태’를 준비하면서 국가권력이 지방과 개인을 장악하고자 하는 의도에 포섭됐다. 인민의 ‘주체화 과정’은 주로 국가의 공권력과 공적 영역이 사적 영역을 제한하면서 시작된 것이었다. 국가는 선전선동과 정치교육을 통해 인민을 군대와 노력에 동원하였고 체제위협인사 배제 및 친일청산과정을 통해 동질감을 강화해나갔다. 인민은 노동을 매개로 ‘집단’으로 조직되었고 점차 사회와 국가를 위해 노동한다는 연대와 계급의식을 고양했다.

저자는 미군이 저지른 무차별적인 학살 행위가 북한 인민의 ‘반미의식’을 자연스럽게 내재화할 수 있었던 계기였다고 분석한다. 반미는 폭력의 가해자로서의 미군을 ‘적’으로 인식한 반작용의 결과였다. 하지만 인민은 폭력의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이기도 했다. 체제 안전을 명분으로 반동분자들을 군중심판에 회부하고 학살도 마다하지 않았다. 폭력의 경험과 내재화는 인민의 자기정체성 형성과정의 일부였다. 그 결과는 강력한 민족주의 의식과 투철한 반미의식으로 점철된 자주성의 확보였다.

북한 인민은 국가권력이 제시한 이념과 정치사상을 미시적이고 자율적으로 학습하며 주체화했다. 당, 노동, 군대, 학교규율은 인민을 권력의 그물망 안에 포섭시켰다. 하지만 계급의식, 민족의식, 집단의식을 겸비한 인민의 형성은 ‘당-국가’ 혹은 ‘당-군대’체제 수립을 통해서 완성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1950년대 말 당과 군대의 일체화가 수립되면서 ‘선군정치’의 기반이 되는 ‘북조선 인민’이 공고화되었다는 것이다. 그 주역은 노동자, 농민, 지식인 계급이었다.

서두와 말미에서 저자는 분단정체성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필요한 작업은 북한을 무조건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 체제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공백으로 남겨져 있던 북한 ‘인민’을 규명하는 꼼꼼하고 성실한 연구 결과는 북한 연구에 항상 뒤따르는 자료 습득의 난점을 상쇄한다.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학문 흐름에 일조할 재미있는 연구결과를 선취(先取)했다. 다만 북한 인민은 법적으로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생략되어 있다는 것. 즉 법적 지위가 과거로부터 어떻게 계승되었는지, 공민권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에 대해 조명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거의 모든 정치 공동체의 응집력을 부여하는 사회학적·인류학적 ‘신화’(myth)에 주목하지 않았다는 점을 한계로 들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소소한 아쉬움은 저자의 다음 연구에서 기대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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