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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간을 벗어나는 우주는 없다
도올 김용옥, 『사랑하지 말자』, 통나무, 2012
[173호] 2012년 09월 17일 (월) 장 정 일 소설가

김용옥의『사랑하지 말자』는 지은이와 가상의 청년이 ‘청춘·역사·우주·종교·사랑’ 등의 아홉 가지 주제를 갖고 문답식 대화를 나눈 책이다. 제목의 역할은 ①내용을 요약하고, ②다른 책과 구별하게 하고, ③독자를 유혹하는 것이다. 전화번호를 알고 싶어 114에 전화만 걸어도, 대뜸 “고객님, 사랑합니다.”라는 낯 뜨거운 ‘애정 고백’이 대세인 터에, 사랑하지 말자니? 이 제목은 제목의 세 번째 역할에 충실하다고는 할 수 있으나, 책 전체를 요약하여 대변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2012년 대선은 이미 승자가 결정되어 있다.”, “박근혜이다.”라는 본문 속의 두 구절로 대서특필됐다.

젊은이들과의 대화 형식으로 포장은 했지만, 이 책의 진정한 면모는 ‘대선 특수용’이다. 실제로 지은이는 출간 직후 어느 인터넷 매체와의 대담에서 ‘대선 국면’을 백 퍼센트 염두에 뒀다면서 “올해가 대선이라서 이 책이 나왔어요. 대선이라는 ‘총체적 위기 상황’을 사상가로서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고민을 담은 책이에요.”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주의 궁극적인 본질이 뭐냐, 이런 이야기는 ‘우리철학’이 아니에요. 우리 민족은 그런 질문 해 본 적도 없어요. 우리나라 철학계는 철학적 문제의식조차 수입해 왔어요. 그렇다면 지금 한국인의 철학적 관심이 뭐냐? 이 시점에서 우리철학이라는 건 ‘대선에서 누가 이길 거냐’ 이런 겁니다. 이거야말로 우리철학이지요.”라고 말했다.

과격해 보이는 저 발언은 철학자 김용옥에게는 매우 근본적인 것이다. 본질과 현상을 나누는 그리스 철학이나 기독교 신학은 하늘(天)과 땅(地)을 구분하면서, 전자에 우월한 지위를 부여한다. 그것이 서양철학의 밑바탕인 형이상학이다. 하지만 지은이를 철학자로 이끈 동양철학에는 애당초 그런 이분법이 없다. 우리는 ‘천지(天地)’를 하늘과 땅을 통칭하는 합성어(일반명사)로 쓰고 있지만, 원래는 동양인의 특별한 우주관을 나타내는 특수 개념이다. 예컨대 영어에 ‘유니버스(Univers)·월드(World)·코스모스(Cosmos)’와 같은 표현은 있어도, 천지처럼 하늘과 땅을 하나의 유기적 개념이나 동등하게 대접하는 표현은 없다. 고작 ‘헤븐 앤 어쓰(Heaven and Earth)’처럼 나열될 뿐이다.

동양인의 천지는 초월적이고 실체적인 ‘우주’를 따로 상정하지 않는다. “우주는 시공간이다. 시공간을 벗어나는 우주는 없다. 따라서 우주 내의 모든 사태는 시공간 내의 사태일 뿐이다. [...] 우주 내에 불변이나 절대나 완벽한 보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언어적 구성물일 뿐이다.” 이런 근거에서 지은이는 “시공을 초월하는 절대자” 또한 인간의 이성이 구성해 낸 언어적 주장일 뿐이라면서, “내가 말하려는 것은 우리가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사태가 시공 속의 사건일 뿐이라는 것이다. 하나님도 시공 속의 사건이며, 천당도 존재한다면 그것은 시공 속의 사건이며,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나 우리의 모든 관념도 시공 속의 사건일 뿐이다.”라고 말한다.

신조차 ‘지금-여기서’의 시공간적 현실로 존재해야 한다면, 어찌 철학자라고 예외일 수 있을까? “이 시점에서 우리철학이라는 건 ‘대선에서 누가 이길 거냐’ 이런 겁니다. 이거야말로 우리철학이지요.”라고 했던 지은이의 말이 수긍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철학자가 현실 정치와 거리를 둘수록 순수한 철학의 본연이 나타난다고 믿는 사람도 적지 않으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서양 철학자 가운데 현실 정치를 외면한 사람도 없지만, 동양철학만 갖고 이야기하더라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유교에는 천당과 극락이 없다. 그 대신 유교는 ‘평천하’와 ‘여민(與民)’이라는 강력한 정치적 이상주의 운동에서 출발했다.

앞서 말했듯이, 이 책은 가장 유명한 ‘대중 철학자’인 지은이가 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예측한 것으로 언론에 널리 소개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 책을 바로 읽지 않거나, 지은이의 주장을 맥락 없이 편취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랑하지 말자』가 절절하게 강조하고 있는 핵심은,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안 되는 이유다. 책에 따르면 우주의 궁극적 본질에 의탁할 수 없는 인간의 세계는 변화를 요체로 삼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박근혜 후보는 정치가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아버지(박정희)라는 과거와 분리할 수 없기 때문에, 변화하는 생명의 세계나 민족의 미래와는 상극이다. 그의 말처럼 “시공 속에서는 변화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운동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박정희의 성공은 그 시대에나 가능했지, 결코 반복될 수 없다.

서구문화의 기저였던 기독교는 성을 죄악시하면서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전치를 통해 남녀 간의 사랑을 억압했다. ‘성본능(libido)’을 생의 근원으로 삼은 프로이트 이론은 거기에 대한 반발이다. 그런데 억압에 대한 반발로 출현한 성욕주의가 이제는 현대인을 강박으로 몰아넣는 또 다른 억압 기제가 되었다. 이 책의 제목은, 이 문제에 대한 나름의 이해와 해결을 모색한 끝에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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