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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그녀의 세계에 발을 들이지 않는다
가네하라 히토미, 『오토픽션』, 문학동네, 2012
[173호] 2012년 09월 17일 (월) 홍 승 영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 수료

주인공인 다카하라 린은 소설가다. 그녀가 자전소설 원고를 청탁받는 장면을 통해, 이 소설 또한 자전적인 기록임을 밝히고 있다. 소설엔 두 번의 겨울과 두 번의 여름이 제시되며, 계절마다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22nd winter & 15th winter

스물 두 살의 다카하라 린은 남편 신과 막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하지만 그녀의 결혼생활은 행복하지 않다. 린의 불안감은 남편이 언제 자신을 떠나갈지도 모른다는 것에 기인한다. 린은 세상은 온통 악의로 가득 차 있고, 방심하는 사이 불행의 구렁텅이로 빠질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때문에 남편이 떠나갈지도 모른다는 그녀의 망상은 무엇보다 생생하다.

린은 남편과의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끊임없이 불행하다. 막연한 불안감은 남편 방의 ‘닫힌 문’앞에서 구체화된다. ‘닫힌 문’과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는 트렁크 때문에 린은 남편이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다. 린은 스스로 ‘스미스 스미스’라는 가상의 존재를 만들고, ‘논스톱’으로 재생되는 음악을 들으며 현재를 견딜 뿐이다.

열다섯 살의 린은 약물 중독에 빠져 있다. ‘잘린 목’을 한 자신의 환영을 보며, ‘고양이’라고 불리는 남자친구가 있다. 린은 어느 날 임신을 하고, 남자는 그녀의 곁을 떠난다. 그녀는 낙태를 선택한다. 린은 아직 성숙하지 못했고, 그녀의 세계는 견고해 지기도 전에 허물어져 버린다. 그녀에게 세계는 결국 ‘잘린 목’으로 귀결 된다. 그녀에게 세계는 ‘머리’가 없으므로 아무런 표정도 없이 부유하는 이미지로만 존재한다.

‘잘린 목’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이 남자의 사랑이었을지, 모든 감각을 마비시키는 약물이었을지 알 수 없다. 린은 한 생명체를 잉태했다는 사실에 경이로움을 느낌과 동시에 좌절을 겪는다. 그녀의 세계는 더 이상 자라나지 못하고, 대신 영원히 지속 될 것만 같은 불행을 마주한다.

18th summer & 16th summer

열여덟 살의 린이 마주한 것은 난교파티와 난무하는 폭력이었다. 친구들의 손에 이끌려 얼떨결에 따라간 곳이 난교파티 장소라는 걸 알게 된 린은, “여기서 강간을 당한다 해도 나는 란짱을 탓할 수 없다. 결국 그 정도는 자기가 알아서 어떻게든 해야 하는 것이다.”(p.110) 라고 진술한다. 그곳에서 린은 자신을 빠져나갈 수 있게 도와준 샤아라는 남자와 사귀게 된다. 하지만 그 또한 그녀에게 거짓말과 폭력을 일삼는 존재일 뿐, 진정한 사랑을 보여주는 인물은 아니다. 이 또한 “자기가 알아서 어떻게든” 해결해야 하는 일중의 하나로 치부된다. 

열여섯 살의 린은 학교를 그만두고, 가토라는 도박 중독자와 함께 살기 시작한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아무것에도 속박되기 싫다고 말한다. 도박 중독에 빠진 남자 때문에 그녀의 생활은 항상 궁핍을 면하지 못하고, 결국 자신은 또다시 ‘시시한 세계’에 빠져 버린 것이라고 자조한다. 

가토는 린의 팔목에 난 자해흉터를 대하며 자신이 그녀의 구원자가 되어 줄 것을 자처하지만, 현실은 점점 나빠질 뿐이다. 린은 자신 대신 파친코에만 빠져 사는 남자에게서 아무런 위안도 얻지 못한다. 그녀는 다만, “아무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기대지 않고 소속되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 돌아오길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 연 같은 생활”(p.227)을 꿈꿨을 뿐이지만, 그러한 소망은 결국 이루지 못할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만 확인한다. 

소설에 그려진 두 번의 겨울과 두 번의 여름은 화자의 아픈 기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책의 차례에는 스물두 번째 겨울에서 열다섯 번째 겨울까지 역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인공은 끊임없이 외로움과 불안 속에 살고 있으며, 그것은 순전히 사랑하고 사랑 받는 것에 대한 솔직한 욕망일 뿐이었음을 이야기한다.  

소설 전반에 걸쳐, 욕망이 빚어낸 망상은 이미 주인공의 일부로 자리 잡고 있다. 망상은 그녀의 의식 속에 기생하며 시시때때로 몸집과 표정을 바꾼다. 그녀는 망상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며, 그러한 자신의 행동이 결국 모든 것을 파국으로 이끌 것이라는 것만 어렴풋이 알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망상에 묶여 있는 존재일 뿐이므로, 온전한 의식과 사고를 갖지 못한다. 소설은 그녀의 심리를 그려내는 것에 있어서 이처럼 극단적이다.

무엇 때문에 아무도 그녀의 세계에 선뜻 발을 들여놓지 않고, 그녀도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타인을 몰아세우고 있는가. 그녀는 스스로의 기록을 들춰내면서, 상처받은 자신을 다그치고만 있는가. 그녀의 아픈 기억은 이제 종결 되는 것인가, 이제 시작인 것인가. 책을 덮자마자 여러 가지 의문들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 스스로에게 되물어 봐야 한다. ‘무엇 때문에 아무도 나의 세계에 선뜻 발을 들여 놓지 않고……’ 서서히 몇 개의 계절들이 스쳐지나가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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