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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당신이 마주한 현실, 그 진실과 사실의 차이는 무엇일까?”
유현목 <오발탄> : 화면의 사실, 영화의 진실, 당신의 현실
[172호] 2012년 06월 11일 (월) 송 경 원 영화평론가

주변을 둘러보면 클래식 영화에 대한 욕구가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고전영화를 즐겨보는 사람은 드물다. 영화전공자가 아닌 다음에야 철 지난 영화들을 일부러 찾아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마 자료 찾기도 쉽지 않고 제대로 된 DVD가 그리 많지 않은 탓도 있을 것이다. 하나 그 보단 ‘낡고 촌스럽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인 것 같아 조금은 씁쓸하다. 실제로 예스런 말투와 동작을 보다보면 종종 민망함에 손이 오그라들기도 하고 피식 실소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이 결코 작품의 질 때문이라 생각진 않는다. 그보단 오히려 언어의 친밀함 탓이리라. 외국말도 들을 땐 위화감을 느낄 수 없었던 시간의 장벽은 우리말로 할 때 유독 도드라진다. 말투와 양식에서 느껴지는 격세지감, 우리말이기에 알 수 있는 미묘한 차이들로 인해 ‘예스러움’은 ‘촌스러움’으로 쉽게 치환되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한국 고전영화야말로 그만큼 친밀하고 밀도 있게 우리가 지나온 삶의 맨 얼굴을 진득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영화의 본령이 ‘리얼리즘’에 있다면 자국 영화만큼 이를 제대로 표현할 수는 없다. 한국 고전영화를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지나간 시대의 흔적을 되짚어 보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 고전영화에 대한 장황설을 먼저 풀어놓은 건 혹여 낡았다는 인식 때문에 많은 이들이 보석을 발견하지 못하지는 않을까 하는 괜한 오지랖 탓이다. 그러나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을 찬찬히 한번 본 사람이 있다면 쓸데없는 걱정일 것이다. <오발탄>을 두고 흔히 ‘한국영화사 최고의 리얼리즘 영화’나 ‘해방 후 한국영화의 최고 걸작’이라는 수식어가 난무하지만 사실 이 같은 표현만으로 이 영화의 진면목을 짐작하기엔 오히려 모자란 감이 있다. 정교한 몽타주 연출, 스타 배우들의 인상적인 연기 등 흠 잡을 데 없는 작품성은 물론이거니와 영화가 담아내는 시대정신이 어떤 형태여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 <오발탄>
   
 

회계사무실에 다니는 철호(김진규)는 늘상 치통에 시달리면서도 병원 한번 가지 못한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식구 하나 건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나 뿐인 여동생은 가난 때문에 양공주가 되고 막내 남동생은 학교도 가지 않고 신문을 돌려야 한다. 게다가 몸 져 누워 정신이 오락가락 하시는 늙은 어머니는 시도 때도 없이 ‘가자!’고 외쳐댄다. 철호의 동생 영호(최무룡)은 그런 현실을 원망하며 은행 강도가 되지만 결국 실패하여 체포되고 만다. 심지어 그 사이 만삭의 아내는 병원에서 목숨을 잃는다. 절망감에 휩싸여 거리를 방황하던 철호는 무리하게 이빨을 두 대나 뽑고 결국 출혈 탓에 생을 마감한다.

진실과 사실의 차이는 무엇일까. <오발탄>에는 60년대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시대정신, 다른 말로 영화적 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데 이것은 보편타당한 휴머니즘적 감성을 자극하는 동시에 재현 불가능한 당대의 진실을 자극한다. 중요한 건 그것이 유현목 감독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재단된 진실의 ‘단면’이란 점이다. <오발탄>을 두고 대개 리얼리즘 영화라 하지만 사실 이 영화의 연출경향은 다분히 표현주의적 경향에 가깝다. 대부분이 세트촬영으로 이루어졌고 장면 장면은 의식화, 의미화된 미장센으로 가득 메워져있으며 심지어 배우들의 연기마저 연극 톤에 가까운 과잉된 색채로 점철되어 있다. 때문에 <오발탄>을 두고 종종 리얼리즘이냐 아니냐 하는 논쟁이 벌어지곤 하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이 논란이야말로 <오발탄>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중요한 지점이다. 이 영화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리얼리즘 영화’, 이를테면 다큐멘터리와는 전혀 다르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은 <오발탄>을 리얼리즘 영화라 칭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것은 화면의 사실성이 아니라 메시지의 진실성에 방점을 찍고 있기 때문이다.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은 이범선의 소설 『오발탄』에서 많은 부분이 각색되었다. 일단 영화 <오발탄>은 재미있다. 소설이 재미없단 말이 아니라 <오발탄>이 상업영화로서의 정체성에도 충실했단 말이다. 이 영화는 당대 유명 스타들, 고뇌하는 지식인 김진규와 거친 반항아 최무룡의 아우라를 고스란히 활용하며 몰입과 카타르시스를 유도한다. 하지만 이처럼 상업영화의 미덕을 충실히 지키고 있음에도 당시 피폐한 시대상을 고스란히 드러내었다는 이유만으로 2주일 만에 상영금지처분이 내려지기도 했다. 잘 만든 상업영화의 틀로도 감출 수 없었던 시대적 진실, 전후 피폐한 사회상이 몇몇 분들의 가슴을 긴장시켰다는 말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카메라가 사실을 포착한단 오래된 믿음에 사로잡혀 있지만 카메라만큼 진실에서 먼 기계도 없다. 익히 알다시피 CG가 나오기 훨씬 전부터 카메라는 현실을 조작하고 원하는 사실을 조각해내는 기계였다. 우리가 화면의 사실이 아니라 ‘카메라를 든 사나이’가 전하고자 하는 진실을 간파할 필요가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진실은 하나가 아니다. 밤하늘의 별처럼 많은 사실을 어떻게 규합하여 나의 현실 안에 녹여낼 것인가. 그 끝에 도달할 진실은 무엇인가. <오발탄>은 이 해묵은 질문에 대한 오래된 대답이다. 60년대를 담은 이 영화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이기도 하다. ‘오늘’, ‘여기서’ 당신이 마주할 현실. 판자촌이 사라지고 고층빌딩이 들어서도 고단한 삶은 변함이 없다는 사실. 그럼에도 삶은 멈출 수 없다는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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