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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끄 타티 <윌로 씨의 휴가> - 진짜 웃음에 대한 이야기
“휴식이 필요한가? 그렇다면 어리숙한 신사 윌로 씨를 찾아라”
[171호] 2012년 05월 21일 (월) 송 경 원 영화평론가

영화 역사 상 최고의 광대는 누굴까. 찰리 채플린의 이름을 댄다면 대부분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채플린의 말은 그가 가진 웃음의 철학을 고스란히 녹여 보여준다. 그의 영화를 보며 한참을 웃다보면 어느새 가슴 속엔 씁쓸한 앙금이 함께 내려앉곤 한다. 기본적으로 채플린의 코미디는 폭력적인 사회 현실을 회피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며 덕분에 그가 전하는 웃음은 우리 가슴 깊숙이 침잠하여 오랜 여운과 생각을 남긴다. 실로 시대의 광대이자 거장답다. 하지만 그 탓인지 채플린의 웃음은 어딘지 무겁고 딱딱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현실에 대한 엷은 회의가 못내 개운한 웃음을 방해하는 거추장스런 기분. 그래서일까. 개인적으론 현실의 그림자에서 웃음을 발견하는 채플린보단 프랑스의 대표적인 코미디 배우이자 영화감독인 자끄 타티 쪽에 더 애정이 가는 게 사실이다. 

 

△ <월로 씨의 휴가>

채플린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졌지만 자끄 타티 역시 영화사의 위대한 감독 중 하나이다. 게다가 일찍이 앙드레 바쟁도 “수줍음을 존재론적 위치까지 격상시킨, 찰리 채플린에 비견되는 위대한 희극작가”라고 격찬을 아끼지 않았던 위대한 광대이기도 하다. 중절모에 콧수염, 지팡이를 짚은 찰리 채플린처럼 자끄 타티에게도 영화 속 분신과 같은 캐릭터가 있는데 구부정한 어깨에 어수룩하고 순해 보이는 거대한 몸집의 신사, ‘윌로 씨’가 바로 그 사람이다. 감독으로서의 타티는 <플레이타임>(1967) 같은 전무후무한 작품들을 다수 남겼지만 그럼에도 타티는 우리에게 영원한 ‘윌로 씨’일 수밖에 없다. 1953년작 <윌로 씨의 휴가>는 구부정한 어깨를 늘어뜨린 ‘윌로 씨’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자끄 타티의 대표작이다.

이야기는 단순하기 이를 데 없다. 휴가철이 되자 사람들은 브리타뉴 해변에 모여들고 그곳에 왠지 어울리지 않는 신사 윌로 씨도 도착한다. 권태로워 보이는 해변의 휴양지는 이 굼뜨고 느린 사나이가 등장하면서 지루한 휴가지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다. 나머지는 윌로 씨가 일으키는 우스꽝스런 사고들을 지켜보기만 하면 끝이다. 그야말로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 구성이지만 이것은 그저 그런 단순함이 아니다. 이 세상을 쓸어 담고도 남을 만한 여유를 지닌 위대한 단순함, 그야말로 삶을 넉넉하게 만들어주는 사소함의 아름다움이 여기에 담겨져 있다.

까놓고 말해 <윌로 씨의 휴가>는 심심하다. 영화에는 별 다른 사건이 없다. 그저 식사시간에 서로의 공간을 침범하여 당황하고, 카약에 페인트칠을 하다가 뒤집혀 상어가 나타난 걸로 오해받는 것 정도가 전부다. 그러나 파도에 실려 간 페인트 통이 정확히 윌로 씨의 손짓에 맞춰 다시 돌아오는 순간 우리는 그곳에 삶이라는 이름의 기적이 깃들어 있음을 목격한다. 엄청나게 크고 동시에 믿을 수 없이 사소한 인생의 모든 순간에는 지금, 오늘, 여기라는 이름의 기적이 함께 하는 것이다. <윌로 씨의 휴가>는 느리게 사는 윌로 씨의 굼뜨고 귀여운 몸짓을 통해 포장지에 쌓인 기적을 하나씩 벗겨서 우리 입 속에 넣어준다. 그 맛은 심심하지만 달짝지근하여 절로 입가에 따스한 미소가 번지게 한다. 이것이 요즘 나에게 채플린보다 타티를 찾고 싶게 만드는 중요한 이유다.

채플린은 웃음을 조각한다. 그의 유머는 상황, 시대에 빗대어 ‘만들어’ 진다. 하지만 타티의 웃음은 이미 삶에 녹아들어 의외의 지점에서 ‘발견’된다. 윌로 씨는 절대 관객을 웃기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아마도 <윌로 씨의 휴가>를 보며 박장대소하는 일은 좀처럼 없을 것이다. 심지어 사람들마다 웃음이 터지는 지점마저 다를지도 모른다. 윌로 씨의 존재는 딱딱하고 재미없는 세상에 던져진 하나의 무질서, 혹은 한없는 삶에의 긍정이다. 윌로 씨가 보여주는 우스꽝스러운 행위들은 파편화된 사건을 묶어 그 끝없는 긍정의 가능성 한 가운데로 우리를 인도한다. 우리는 윌로 씨와 함께 놀이의 한없는 반복 속에서 세상의 부조리함을 드러내고, 조롱하며, 끝내 잃었던 여유를 되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채플린과 윌로씨의 결정적인 차이이다. 채플린은 <모던타임즈>에서 기계에 끌려들어가는 노동자처럼 현실에 밀착한 채 끊임없이 나아간다. 채플린에게 자유란 그 시간으로부터 탈출해 다시 시골로 돌아가는 것으로 밖에 확보될 수밖에 없다. 그에 반해 윌로 씨의 웃음은 일상의 사소함 속에 존재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고 숨 막혀 하는 그 곳에서 살짝 걸음을 늦추는 것만으로도 피어나는 웃음과 여유, 그 무의미함의 유의미야말로 삶을 진정 풍요롭게 만드는 지고의 가치다.

오늘날은 소위 ‘피로사회’다. 의미, 속도, 자기 착취는 시대의 질병이다. 다른 어떤 영화보다 <윌로 씨의 휴가>가 더 예뻐 보이는 건 이 때문이다. 웃음마저 공산품처럼 소비해야 하는 시대, 휴식이어야 할 그 시간조차도 의미로 가득 채우려고 하는 숨 막히는 요즘이기에 윌로 씨의 엉뚱함이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이리라. 너무 심심하고 지루하다고? 그래도 좋다. 아니, 그래서 좋다. 영화를 보며 딴 짓도 하고 딴 생각도 하다보면 어느새 입가에 지워지지 않을 미소가 얹혀 있을 테니까. 그때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느슨하고 넉넉한 웃음이 얼마나 절실한지를 새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휴식 같은 웃음이 부쩍 그리운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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