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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자유주의에 대한 인식적 지도그리기
나카마사 마사키, 『현대 미국 사상』, 송태욱 옮김, 을유문화사, 2012
[171호] 2012년 05월 21일 (월) 임경교 조선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 『현대 미국 사상』

 
푸코, 라캉, 데리다, 들뢰즈와 그들의 후예인 지젝, 랑시에르, 바디우, 아감벤과 같은 대륙의 고급 이론들이 거의 모든 인문학도들의 책상을 점령하고 있던 최근의 풍경 속에서 사뭇 기괴한 현상이 발생했다.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거대한 태풍을 몰고 온 것이다. (물론 대중의 반응과 학계의 수용 사이에는 약간의 온도차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이것은 분명 기괴한 사건이었음에 틀림없었다. 무엇보다도 그 책은 철학의 불모지였던 미국의 저급(?) 실용주의 철학의 산물이었다. 게다가 이 책의 핵심은 우리나라의 진보 지식인들에 의해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무시되었던 미국 자유주의 전통 속에서 “정의”의 문제를 탐구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미국의 실용주의적 학문 경향은 유럽의 오랜 철학 전통에 비해 그 깊이가 부재한 것으로 여겨졌을 뿐더러, 그것의 자유주의 전통이라는 것 역시 궁극적으로는 미국의 천박하고 제국주의적이기까지 한 후기자본주의를 지탱하는 철학적 토대였다는 것을 완전히 부인하기는 어려운 것도 사실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상황 하에서 샌델과 그의 책이 일으킨 광풍은 분명 의미의 해석을 요구하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냉소적으로 본다면, 나카마사 마사키의 『현대 미국 사상』은 어쩌면 샌델이 몰고 온 이 기이한 광풍을 타고 대한해협을 건너온 책임에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잘못 건너온 책이라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오히려 샌델보다 먼저 왔어야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의 사상사 내에서 샌델이 차지하고 있는 학문적/철학적 위상을 그 어떤 입문서보다도 정확히 지도 그려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자유주의 사상의 연원과 발전 그리고 최근 9.11테러로 인한 자유주의의 위기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해석을 통해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이 책이 샌델의 강의보다 먼저 우리에게 도착했다면 아마도 샌델의 광풍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 책의 주인공은 샌델이 아닌 미국 좌파적 자유주의 철학의 대부라 할 수 있는 존 롤스(John Rawls)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미국 현대사에서 “자유”가 자유롭지 못했던 시기마다, 그리고 자유와 평등의 균형추가 한쪽으로 기울 때마다, 그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하며 새로운 자유와 정의의 개념을 창출해내고, 자유와 평등의 양립가능성을 끈질기게 탐색했던 롤스의 도전과 그에 대한 반대파의 응전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즉, 롤스와 그 후계자들을 중심으로 한 좌파적 자유주의를 중심에 두고, 하이에크와 노직으로 대표되는 우파적 자유지상주의자들과, 샌델과 찰스 테일러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주의자들의 경쟁적 삼각관계를 미국 현대사의 변곡점 속에 적절히 위치시키며 도식화한 것이다.

그러나 실상 나카마사의 책이 지니는 진정한 미덕은 이러한 알기 쉬운 도식화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보다는 왜 미국의 자유주의자들이 자유와 정의에 대한 철학적 정의에 천착하기보다는 그것의 실천적 측면을 강조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나카마사는 왜 샌델이 정의에 대한 근원적 정의는 제쳐두고 현실적인 딜레마에 대한 다양한 예를 통해 정의의 개념에 접근하고 있는지, 리차드 로티가 왜 근본주의(혹은 정초주의)로부터 탈출하여 철학에 대한 민주주의의 우위를 선언하고 있는지, 그리고 롤스가 왜 “공공적 이성”(public reason)을 바탕으로 한 입헌민주제도를 옹호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명쾌한 해석을 내놓는다. 그가 내놓은 해답은 미국적 실용주의이다. 물론 미국이 왜 실용주의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근원적이고 역사적인 탐색은 절제되어 있다. 예컨대, 유럽에 대비하여 “결여”된 국가로 규정될 수밖에 없었던 미국의 예외주의(exceptionalism)적 특성에 대한 분석을 통해 실용주의의 필연성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용주의와 자유주의와, 실용주의와 마르크스주의, 실용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등의 관계를 적절히 설정해둠으로써, 미국적 자유주의의 얼굴을 입체적으로 보여줌과 동시에, 1990년대 이후 학문적 주도권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넘어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득력 있게 들려주고 있다. 또한 부록으로 들려주는 미국 자유주의의 일본 수용과정과 일본의 학문적 발전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한국의 학문적/정치적 미래를 진단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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