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0.11.26 목 15:37
인기검색어 : 등록금 반환, 코로나19, 조교 문제
신문사소개 | 호수별 기사보기
> 뉴스 > 학술 서평 > 서평
     
우리 자신인 호모 사케르에게 긴 애도를 표하라
한병철, 『피로사회』, 김태환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2
[171호] 2012년 05월 21일 (월) 허병식 문학평론가

   
 

 △ 『피로사회』

 
한병철의 『피로사회』는 오늘날의 사회를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자기착취의 사회로 규정한다. 그가 ‘성과사회’라고 말하는 이 시스템 속에서 주체는 오직 스스로를 착취할 뿐이며, 따라서 “병원, 정신병자 수용소, 감옥, 병영, 공장으로 이루어진 푸코의 규율사회는 더 이상 오늘의 사회가 아니다.” 21세기의 사회가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변모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의 주인이자 주관자이고, 자기 외에 그 누구에게도 예속되어 있지 않은 점에서 복종적 주체와 구별된다.” 각각의 자아가 더 이상 주권권력에 예속되어 있지 않고, 자아를 규율하는 것이 자기 자신인 사회, 그리하여 자신이 부적하다든가 열등하다는 끝없는 자책과 자학이 스스로를 추동하는 이 후기근대적 성과사회에서 주체는 자신을 끊임없이 소진시킬 뿐이다. 프로이트와 푸코와 아감벤이 지적하였던 근대 사회의 부정성은 더 이상 문제되지 않고, 오직 긍정성의 과잉만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핵심적인 주장이다. 그리하여 탈진하는 피로가 아니라, 부정적 힘의 피로, 무위의 피로, 장자적인 ‘쓸모 없는 것의 쓸모’를 찾아낼 줄 아는 능력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 성과사회의 폐해에 대한 작은 대안으로 제시된다.

저자의 주장을 따라 읽다 보면, 오늘날의 한국사회 또한 이러한 성과사회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어느 정도 수긍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온갖 자극과 정보와 충동들이 과잉으로 넘쳐나는 이 후기근대의 성과사회에서 사색적인 삶에 대한 요구는 무모한 기획으로 그치고 말 것이란 주장은 바로 지금 여기의 한국사회에 대한 조명이라 할 수 있지 않은가. 저자가 니체의 “활동하는 자, 그러니까 부산한 자가 이렇게 높이 평가받은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는 지적을 동원하여 이 후기근대에 대한 비가를 써나갈 때, ‘안 해본 것이 없는’ 주권자를 스스로 선택한 치욕을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의 한국인들이 지녀야할 부끄러움의 무게는 결코 작지 않다. 새로운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불러온 가상화와 디지털화의 과정이 타자성을 지워버리고 강력한 유대의 능력을 상실하게 만든다는 지적 또한 깊이 새겨들을 필요가 있을 터이다.

그러나 이 책의 주장을 온전히 수긍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후기근대가 어떤 방식으로 근대와 적대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후기근대의 노동하는 동물은 노동을 통해 인류의 익명적 삶의 과정 속에 용해되어버릴 만큼 자신의 개성이나 자아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너 자신이 되어라’라는 정언이 후기근대적 성과사회의 특유한 명령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 근대사회를 가능하게 만들었던 ‘진정성(authenticity)’의 이상과 어떻게 구별되는가는 의문스럽다. 버먼에 따르면 진정성의 이상은 사람들의 다수가 그들 자신과 매우 다르고, 종종 그들 자신을 다른 사람 속으로 변형하는 것으로 보이는 세계에서 자기 자신의 내면과 진실하게 대면하는 정치학을 제시한다. 지라르는 고귀함이란 그의 욕망이 자신의 내부에서부터 나오는, 그리고 그의 힘 하나하나를 전부 그러한 욕망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행사하는 사람에게 속하는 자질이라고 말한 바 있다. 자신의 내부로부터 나오는 욕망을 행사하는 근대의 주체와 자기가 자유롭다고 착각하면서 스스로가 자기자신의 호모 사케르가 되는 성과사회의 주체는 어떻게 구별될 수 있는가. 이러한 난점은 『피로사회』의 저자가 후기근대를 근대와 절연한 것으로 파악하면서도 후기근대의 신자유주의를 근대적 자유주의의 필연적인 결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상탈 무페는 개인적 자유와 인격적 자율성이라는 자유주의 이상의 잠재성을 충분히 발전시키려면, 이 자유주의의 이상을 그것에 접합된 다른 담론들과 분리해야 하며 정치적 자유주의를 경제적 자유주의와의 제휴에서 구해내야 한다고 말했다. 무페의 말이 옳다면, “너 자신이 되어라”라는 명령이 성과사회를 추동하고 있다는 저자의 주장은 좀더 정교하게 세공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면역학적 시대가 종언을 고하면서, 이민자나 난민이 위협이라기보다는 짐스러운 존재로 여겨질 뿐이라는 지적 또한 외국인에 대한 혐오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커져가며 정치와 윤리에 대한 논의가 주요한 의제가 되어 있는 한국사회에서 온전히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후기근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자신이 주인이자 동시에 노예인 호모 사케르와 다르지 않다는 지적은 피로사회에 특유한 우울증을 우리의 눈앞에 상연한다. 저자는 리비도적 에너지의 대부분을 자기자신에게 사용하는 후기근대의 자아에게 길고 고통스러운 애도작업은 불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는 분명하다. 그것은 저 헐벗은 생명들을 낳은 규율사회에 대한, 그 속에서 살아가던 인간이 지니고 있던 부정성에 대한 ‘길고 고통스러운 애도’를 멈추지 않는 것으로 규율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작업이다.

ⓒ 동국대학원신문(http://www.dgugspres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페이스북 방문해 주세요!
더 많은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교육방송국 동국대학원신문 동대신문 동국포스트
동국대홈동국미디어컨텐츠 센터동대신문교육방송국동국포스트개인정보처리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4620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로 1길 30 동국대학교 학술관 3층 대학원신문 | 전화 : 02-2260-8762 | 팩스 : 02-2260-8762
발행인 : 윤성이 | 편집인 : 이경식 | 편집장 : 김태환 | 발행처 : 동국대학교 대학미디어센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경식
Copyright DGUGSPRESS.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gupress@dongguk.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