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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들이 흩어지면
조이스 캐롤 오츠, 『좀비』, 공경희 옮김, 포레, 2012
[171호] 2012년 05월 21일 (월) 전호성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 · 시나리오 작가

 

△ 『좀비』

 
살아있는 시체, 죽었지만 식욕은 살아 있는 부패된 유기체 좀비는, 다양한 서사와 매체를 통해 반복 재생산 되면서, 흡혈귀나 늑대인간처럼 인지도 높은 호러 캐릭터로 자리 잡았다. 좀비는 그 형상이 혐오스러우면서도 인간과 닮았고 인간과 닮았으면서도 비생물체인 탓에 이질적인 공포감을 강하게 일으킨다. 상상으로 만들어진 대상들이 대체로 그러하듯, 좀비는 인간이 지닌 원초적 속성의 단면을 반영해 탄생시킨 피조물로 볼 수 있다. 인간의 일면으로 차마 인정하기 싫은 잔혹한 속성을 바탕으로 형상화된 괴물이 좀비이고, 혐오와 매혹을 동시에 일으키는 좀비는 악마적 인성의 알레고리인 셈이다.

조이스 캐롤 오츠의 『좀비』는 음습한 곳을 떼 지어 배회하며 인육을 뜯어먹는 판타지적 괴물을 다루고 있지는 않다. 『좀비』는 좀비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좀비와도 같은 속성을 드러내는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다. 작가는 살인자를 외부에서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고 살인자의 입장에서 세상과 사물을 바라본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독자가 살인자의 서술을 따라가며 그의 뒤틀린 사고와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효과를 자아내고, 인물의 의식세계 심층에서 타인과 세상을 바라봄으로써 낯설고 생소한 시각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한다.

소설의 주인공인 화자는 삼십대의 독신 남자다. 보편적 다수가 생각하는 ‘보통’의 기준에서 벗어난 취향과 사고방식을 지닌 인물이지만, 외적으로 드러나는 인물상은 지극히 평범하고 무개성하다. 이 살인자는 그가 범행의 대상으로 선택하는 주변의 인물들과 전혀 다르지 않거나 조금은 열등해 보이는 생활인으로 살아간다. 무능하고 무력해 보이는 인물의 기괴한 발상이 행동으로 옮겨질 때, 존재감 없는 인물의 지루한 일상과 대담하고 엽기적인 범행이 충돌을 일으키고, 이는 광기 속에 살아가는 자들이 드러내는 잔혹성보다 더 강한 충격을 일으킨다.

위태로운 조짐은 타인과의 교감을 기피하는 주인공의 태도에서부터 나타난다. 혀가 말하는 데 방해가 되고 자신이 몰락한 이유가 눈맞춤이라고 여기는 주인공은 내적으로 심한 분열을 겪는 인물이다. 분열된 두 자아는 서로를 타인으로 인식하고 소통한다. 주인공은 스스로를 ‘나’라고 칭하기도 하고 이름으로 지칭하며 타인으로 대하기도 한다. 그는 모든 사람의 성명을 성과 이름의 첫 글자로 지시할 뿐 누구도 온전한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 예외적으로, 자신을 가상의 인물로 위장할 때만은 주인공 ‘나’와 ‘나가 바라보는 타인’이 합일된다. 위장을 위해 내세운 가상의 인물만이 이니셜이 아닌, 성명 전체로 지칭된다. 은폐되어 있던 잔혹한 속성이 발현될 때라야 분열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내적으로 분열된 주인공이 반복적으로 살인을 범하게 하는 동력은 살해 대상을 향해 통제 불가하게 치솟는 성적 욕망과 끝 간 데 없이 강렬해지는 소유욕이다. 살인자는 자기에게 철저히 복종하고 자기의 뜻대로 조종할 수 있는 대상, “퍼런 내장을 쏟아낼 때까지 마음껏 농락하십시오, 주인님”이라고 말해줄 노예를 갈망한다. 자아가 제거되어 조종이 가능한, 생명체와 물체의 중간적 존재 좀비를 소유하고자 하는 것이다. 주인공은 희생자에게 전두엽 제거수술을 실행할 만큼 좀비를 탐닉하고 열망하지만, 좀비를 얻지는 못한다. 오히려 인간성에 반하는 행위를 거듭하는 주인공이 좀비와도 같은 존재로 비친다.

주인공의 좀비를 향한 욕망은 그가 처한 환경에서 기인하는 듯 보인다. 주인공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우월한 아버지와 보호관찰을 행하는 교정국의 감시 하에 놓여 있다. 억압적인 환경에 처한 인물은 자기에 대한 심판이 없는 세계를 간절히 욕망하고, 어떤 경우에도 심판을 하지 않는 존재인 좀비에 빠져든다. 그럼에도 『좀비』의 작가는 주인공의 잔혹성향이 오로지 주변 환경에 의해 형성됐다는 식으로 소설을 전개하지는 않는다. 이 작품이 담고 있는 궁극의 서사는 인간 내면에 본래부터 자리하고 있는 이중성과 잔학성에 관한 것이다. 잘못한 것도 없이 불량배들에게 구타당한 다음날, 주인공은 거울을 보며 말한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내가 알려지지 않은 얼굴 하나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단순한 폭행 사건이 연쇄살인에 필요한 위장의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있다. 강한 인상을 남기는 대목이다.

영화나 게임 속에서, 좀비는 종종 전염병과 같은 인류멸망의 원인으로 설정된다. 좀비를 인간이 지닌 잔학성의 종말론적 반영으로 본다면, 인류를 파국으로 몰아가는 단초는 인간 본성의 심층에 도사리고 있는 악성(惡性)이다. 소설 속 연쇄살인범의 의식세계와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인간의 잔혹한 이면을 다시 생각하게 되고 이 시대와 사회를 진단해보게 된다. 당장의 처방이 없는 진단이 무가치하지만은 않다. 실체를 파악하고 이해하기 전에는 어떠한 문제적 상황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살인으로부터 쾌락을 느끼는, 인간 존재가 지닌 원초적 잔혹성이 부정하고 은폐한다고 해서 사라질 리 없다. 오히려 그 이면을 직시하고 인정하는 데에서 인간성 회복의 의지가 비롯된다 할 것이다. 살인자의 잔학성을 이야기하는『좀비』를 읽으면서 살인의 유혹을 느끼지는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소설에서, 주목할 만한 문구들이 여럿 발견된다. 그 중, 가장 짧은 장에서 주인공 화자가 무심한 어조로 서술하는 내용이 특히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살이 붙어 있지 않으면 뼈들은 흩어진다. 그래서 서로를 잃게 되면 거기엔 어떤 정체성이 있을까.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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