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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한 심리묘사와 절묘한 리듬감, 시드니 루멧의 정의란 무엇인가”
CINE FOCUS : 시드니 루멧 <12명의 성난 사람들>
[170호] 2012년 03월 26일 (월) 송경원 영화평론가

정의란 무엇인가. 이 식상하고 고루한 화두가 어느 날 서점가 높은 단상 위에 혜성처럼 등장해 우리 사회 곳곳을 유령처럼 배회한지도 벌써 2년이 넘었다. 혹자는 제목에 속았을 뿐이라고도 했고 누군가는 그만큼 우리 사회에 ‘정의’라는 가치가 결핍되어 있기 때문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어느 쪽이든 여전히 『정의란 무엇인가』는 잘 팔리는 중이고, 그럼에도 여전히 정의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아마도 이 엄혹한 시절이 끝나기 전까진 계속 그렇게 미로를 헤매야 할지도 모른다.

   
   △ <12명의 성난 사람들>

최근 <도가니>나 <부러진 화살> 같은 사회성 짙은 영화들이 연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흥행가도를 달리는 것도 비슷한 심정의 발로일 것이다. 이렇게 무겁고 어두우며 심지어 불편하기까지 한 영화들이 이만큼 주목의 대상이 된 적은 그간 한국영화계에 한 번도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극장을 찾는 이유는 대개 달콤한 환상을 즐기기 위함이지만, 시절은 마침내 우리를 극장에서마저 분노케 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스크린을 통해 진실에 눈을 뜨고, 분노하며, 생각하고 있다. 정말 정의란 무엇일까.

답이 궁금하다면 지금 당장 옛 영화들을 찾아보라. 사실 영화의 역사를 찬찬히 살펴보노라면 이 같은 현상은 드문 일이 아니다. 영화는 현실을 잊게 만드는 환각제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을 각성시키는 횃불이기도 했다. 러시아 혁명정신을 떠받쳤던 것, 혹은 프랑스의 예술혼에 불을 지폈던 것이 영화였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사회를 투명하게 비추고자 하는 카메라 근원의 욕망은 다큐멘터리, 다이렉트 시네마, 시네마 베리테까지 거침없이 나아갔다. 그것이 가슴 찡한 드라마이든 한 치 흔들림 없는 리얼리즘이든, 카메라는 늘 그렇게 큰 것보다 작은 것, 밝은 곳보다 어두운 곳, 평화로운 곳보다 문제가 있는 곳에 머물러 온 것이다. 그리고 여기 반동적이면서도 근본적인 카메라의 정신을 그야말로 적진 한 복판에서 풀어낸 흥미로운 영화가 있다. 1957년 시드니 루멧 작품, <12명의 성난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고 판결에 기뻐하는 사람과 좌절하는 사람들이 교차하는 법원, 한 법정에서 판사가 배심원들을 향해 최종판결을 주문하고 있다. 판사는 배심원들을 향해 막중한 책임이 있는 만큼 신중한 판결을 부탁한다고 말하고는 있지만, 턱을 괴고 하품까지 해대는 그의 표정은 심드렁하기 짝이 없다. 이윽고 12명의 배심원들은 법원 구석 좁은 방으로 이동하고 살인죄로 사형을 언도 받은 소년의 최종판결을 위한 회의에 들어간다. 회의실에 앉은 각양각색의 사람들. 첫 배심원 경험에 흥분한 사람, 빨리 끝내고 야구 경기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 법원 건너편 고급건물을 바라보며 느물거리는 미소를 날리는 사람도 있다. 이들이 만장일치로 유죄를 판결하면 소년은 바로 사형이다. 일사천리로 회의가 진행되고 별 다른 이야기 없이 바로 유죄 여부를 묻는 진행자. 그리고 올라가는 11개의 손. 단 한명, 헨리 폰다만이 홀로 반대하며 말한다. 우리 좀 더 이야기해보자고. 귀찮은 일은 빨리 끝내고 집에 가고 싶은 11명의 사람들과 한 사람의 생명이 달린 일이니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1명의 외로운 싸움을 보여준다. 무려 90분 동안. 

<12명의 성난 사람들>은 얼핏 답답하고 밋밋해 보이는 영화다. 일단 사건이 없다. 등장인물도 방 안의 12명이 전부다.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그 좁은 방을 벋어나지도 않는다. 눈에 띄는 움직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스펙터클한 화면과는 거리가 멀다. 허나 신기하게도 영화가 진행될수록 지루하기는커녕 배심원들 간의 밀도 있고 긴장감 넘치는 토론들이 관객의 심리를 쥐락펴락한다. 특히 치열한 논박과 설득과정에서 벌어지는 각 인물들 간의 수 싸움과 섬세한 심리 묘사가 절묘한 리듬감을 형성하여 90분 내내 작품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를 빛나게 하는 것은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게끔 만드는 영화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을 믿는다. 그것도 지나치게. 사람들은 남을 꾸짖는 데는 밝아도 자신의 과오를 돌아보는 일에는 서툴고, 한번 익숙해진 타성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누구나 그럴 수 있다. 그것 자체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허나 이를 알고도 고치려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확신이란 우리에게 흔들리지 않는 강력한 힘을 가져다주지만 때로는 독과 같다. 맹목과 확신은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 사람이라면 응당 의문과 회의를 품고 다른 이의 의견에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내가 보지 못한 것을 다른 사람이 알려주고 다른 이의 허물을 내가 메워주는 것, 그것을 위한 사회다. 이 영화는 바로 이러한 사실을 일깨워준다. 소년의 유죄를 확신했던 11명의 배심원들이 한 명 한 명 자신의 의견을 철회하고 무죄로 돌아서는 것은 그 자체로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정의의 실현과정인 것이다. 할리우드에서 이야기를 가장 잘 다룬단 평가를 받으며 감독들에게 존경받는 감독이었던 시드니 루멧. 그가 제시하는 단순하지만 빛나는 진리. “늘 이렇지. 항상 한 명이 반대야.” “그럼 이제 어떻게 하죠?” “대화를 해야죠.” 빠르게 보다 바르게. 잃어버린 정의는 그곳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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