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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텍스트에 관한 각주
엔리케 빌라-마따스, 『바틀비와 바틀비들』, 소담, 2011
[170호] 2012년 03월 26일 (월) 김희선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 소설가

이 책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일본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가 쓴 『소설 읽는 방법』을 통해서였다. 그는 거기서 더 이상 아무 것도 쓰지 못 하거나 혹은 쓰기를 완강히 거부하는 작가들에 대하여 말하며 바로 이 책, 엔리께 빌라-마따스의 『바틀비와 바틀비들(원제: 바틀비와 친구들)』을 언급한다.

바틀비는 허먼 멜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에 등장하는 남자이며, 어느 날 홀연히 월스트리트의 사무실에 나타나 그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라는 말만을 되풀이하다가 죽음을 맞는 기이한 주인공이다. 즉 그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음’을 선택하는데, 엔리께 빌라-마따스는 그런 ‘아니오’의 충동이 문학 내부에도 존재함을 주목하며(저자는 이것을 ‘아니오’의 문학이라고 부른다) 이런 ‘문학적 바틀비들’에 대한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소설 속에선 화자인 ‘나’ 역시 한 사람의 바틀비다. 왜냐하면 ‘나’는 오래 전 부친의 강압에 못 이겨 아버지의 첫 부인에게 바치는 거짓된 헌사를 썼던 충격으로 25년 동안 글이라곤 한 줄도 쓰지 못하고 지내왔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로베르토 모레띠의 소설 『피에르 메나르의 학교』를 읽고, 필경사가 되기로 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게 된다(과연 로베르토 모레띠의 소설은 실재하는 걸까? 그러나 이런 의문들, 즉 이 모든 게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서부터 허구일까, 하는 질문들은 소설을 읽는 내내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나’는 이제 세상에 존재했거나 존재하는, 또는 앞으로 존재할 수많은 바틀비들에 대하여 그리고 그들의 문학적 진실에 대하여 각주를 쓰기로 결심한다.

작가는 허먼 멜빌의 주인공인 필경사 바틀비에게서 문학에 대한 오래된 믿음 혹은 전통을 찾아내는데, 첫째로 그건 필경사라는 직업이 지니는 비밀의 일면이다. 사실, 무언가를 그대로 베껴 쓰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필경사가 실은 ‘글쓰는 자’ 즉 ‘작가’를 말한다는 것은 글쓰기에 관한 거의 유일하고도 자명한 진리일지도 모른다. 소설의 도입 부분에서도 『 피에르 메나르 학교』라는 이름으로 언급되었듯이, 이때의 필경사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소설 속 주인공인 ‘피에르 메나르’를 떠올리게 한다. 세르반테스가 쓴 『돈 키호테』를 그대로 다시 쓰는 ‘불가능한 작업’에 매달렸던 그 괴상한 남자는 결국 『돈 키호테』를 그대로 옮겨 적은 하나의 텍스트를 완성한다. 그리고 보르헤스는 이 작품(정확히는 『돈 키호테』1부의 9장, 22장의 한 부분, 38장을 그대로 옮겨 쓴)이 완전히 새로운 『돈 키호테』이며, 심지어는 더 풍부하고 깊이 있는 작품이라고까지 말한다. 즉 보르헤스에게 있어서도 작가의 ‘창작’이란 일종의 ‘옮겨 쓰기’이자 ‘편집’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필경사 바틀비’가 ‘아무 것도 하지 않음’을 선택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여기서 바로 문학의 두 번째 비밀인 ‘침묵’이 모습을 드러낸다. 바틀비들은 빌라-마따스에 의하면 “어느 날, 느닷없이 문학적으로 영원히 마비 상태에 빠지게 되는 부정적 충동 또는 無에 대한 이끌림”에 사로잡힌 자들이다. 또한 그들은 자신의 작품을 영원한 부재(不在)의 상태에 놓아두길 욕망하는 작가들이기도 하다. 예를 들자면, 바틀비의 한 사람이었던 아르뛰르 랭보는 아프리카로 떠난 후 정말 단 한 줄의 시도 쓰지 않았던 걸까? 그는 단지 새로 쓴 모든 시를 없애버렸던 걸지도 모른다. 마치 자기가 공들여 쓴 『돈 키호테』를 모두 불태워 버림으로써 영원히 부재하는 원고로 만들어버렸던 피에르 메나르처럼.

빌라-마따스는 이렇게 ‘침묵하기’를 선택한 수많은 작가들의 이야기를 소설 속에서 종횡무진으로 엮어 간다. 거기엔 『뻬드로 빠라모』를 쓰고 30년간이나 아무 것도 쓰지 않았던 후안 룰포의 이야기가 있고, 어느 날 갑자기 멕시코만의 바다 속으로 사라져 버린 시인 하트 크레인의 이야기가 있으며, 그 자신이 만들어낸 형이상학적이고 비현실적인 세계 속으로 조용히 침잠해버린 쥘리앙 그라크의 이야기가 있다.

그렇다면, 빌라-마따스는 왜 이런 이야기들을 쓴 것일까? 그리고 여기에 나오는 모든 에피소드들은 다 사실일까?

책의 첫머리에서 작가는 자신의 소설이 결국은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할 수 있는 어느 텍스트에 관한 각주”라고 말하며, 바로 이런 부정적인 충동과 ‘아니오’의 오솔길에서 새로운 미래의 글쓰기가 태동할 것임을 예측한다. 그렇다면, 빌라-마따스 역시 한 사람의 필경사로서, 침묵하거나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작가들의 마지막 비밀을 찾아 헤매는 그 긴 여정을 통하여 어떤 미로의 입구에 도달했던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마도 그것은,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하게 되는 역설을 통해야만 다다를 수 있는 ‘진정한 글쓰기의 가능성’으로 열린 문일 것이다. 물론 그 문 뒤에 펼쳐질 풍경의 실체는 이 책을 읽은 사람들 각자의 ‘각주’에 달려 있을 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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