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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는 불, 『불의 정신분석』 읽기
가스통 바슐라르, 『불의 정신분석』, 김병욱 옮김, 이학사, 2007
[170호] 2012년 03월 26일 (월) 최두호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

사물을 깊은 사유로 도해할 때 인간이 사물의 이중적인 성격을 만나게 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불에 대한 자료를 열심히 수집하던 바슐라르 또한 사람들이 한 편에서는 불을 굉장히 성스럽게 묘사하면서도, 한 편에서는 불을 굉장히 속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리하여『불의 정신분석』에서는 불에 대한 대조적인 묘사들을 끝없이 나란히 두고 있다. 바슐라르는 원소들 특히, ‘불’에 대한 이러한 모순율이 정신분석학의 ‘지속적 승화’와는 다른 ‘변증법적 승화’라고 정의한다. 한 가지 성격이 강화되거나 약화되는 방식의 신경질적인 변이가 아니라, 두 요소가 함께 가며 서로를 자극하여 유지되는 승화, 산술적인 ‘객관성’으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바슐라르 식의 진정한 객관성, ‘완고한 기쁨’으로 표현되는 승화, 우리가 ‘신비로움’이라고 정의했던 것이 차가운 불과 따뜻한 불 사이에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차가운 불과 따뜻한 불의 승화가 상호의 대화적인 격돌을 중시하는 헤겔의 변증법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서, 바슐라르의 변증법을 좀더 단순하게 이해해야 한다. 바슐라르의 변증법은 힘을 향한 진행이라기보다 상반되는 서로가 함께 움직이는 양가성의 원리를 일컫는다. 바슐라르는 이 양가성을 증명해내기 위해, 불에 홀린 문장들을 찾아 길게 열거한다. 또 수사들 안에 들어 있는 종교적인, 과학적인, 역사적인 믿음들을 언급하는데, 그럼에도 바슐라르의 관심이 그런 ‘집단 무의식’의 원형을 궁구하는 데 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불을 신비로워 한다는 것은, 불이 신비롭다고 믿고 있다는 것은 바슐라르를 ‘융’과 만나게 한다. 실제로 간간히 ‘융’이 언급되는데, 공통점은 항상 바슐라르는 ‘융’을 만나자마자 쫓기듯 다시 풍성함의 세계로 복귀한다는 것이다. 불에 대한 수사들과 관련하여 바슐라르가 찾아낸 믿음들, 그가 창안한 수많은 콤플렉스들이 그런 집단 무의식과 동치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콤플렉스가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양산되는 감이 있다는 것 자체가 바슐라르의 돌아섬을 보이는 것이다. 바슐라르가 그렇게 여러 번 돌아서는 만큼 이 책은 상상력에 대한 다원적인 사례를 담을 수 있었다. 

바슐라르는 기꺼이 산만해졌던 것이다. 식탁 위에 있는 촛불에 손가락을 스쳐서 뜨거움에 짜릿해하기도 하고 불에 들숨과 날숨을 불어 놀리어 보기도 하고, 곧 불투명하게 굳어버리는 촛농을 손가락으로 만져서 지문인장을 만들기도 하고, 촛농이 굳기 전에 심지 아래에 눈물처럼 고인 물에 방금 탄 성냥 부스러기를 넣어보기 하면서, 촛불의 성분 분석에 대한 호기심으로 인해 촛불의 신비로움이 깨져나가지 않게끔 끝없이 경계하고 있는 어린 아이 같다. 그러면서 그는 불을 묘사하고, 불을 서술하고, ‘불의 정신분석’을 문학에 적용한다. 그는 존재론 아닌 시론에 머무는 자의 즐거움을 체득했다.

플라톤이 동굴의 비유에서 놓쳤던 것은 사물의 낮고 작은 흔들림과 그것을 즐기는 자의 상상력이었다. 대상은 존재를 속이지 않는다. 사물들의 그림자는 사물들과 마찬가지로 흔들릴 것이고, 그 그림자를 만드는 것이 심지어 동굴 밖 태양이라 할지라도, 태양은 언제나 밝지는 않을 것이므로, 그림자는 매순간 농도의 차를 지닐 것이다. 하루 종일 동굴 안에 있는 죄수들은 그 너울거림을 보며 즐길 것이다. 죄수들이 동굴 밖으로 걸어 나가면서 이데아의 빛을 깨달아간다는 비유는 바슐라르에게는 확실히 우습다. 인간은 동굴 안에 머문다. 인간 존재만이 지각이라는 한계 상황에 걸려 스스로 안에 머물려 있는 것은 아니다. 사물들 또한 자기 자신에 머문다. 그들은 말로 주장하지 않지만, 있는 것으로 주장한다. 불에게는 다른 사물에게 지속적으로 가하는 ‘정신’이 ‘있다’. 모순율 속에 굴러가는 불에 대한 수많은 갈래의 심상들 속에는 불의 끊이지 않고 작용하는 ‘힘’이 원천에 ‘있다’. 그 힘은 플라톤이 말한 것처럼 가상이 아니다. 사물이 자기 자신에 머물기를, 즉 ‘있기’를 진정 포기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번에 촛불은 ‘불의 힘’으로 너울거리는 자신의 존재를 실현했고, 내가 눈동자를 움직이며 그것을 좇아 위로받는 나를 만들었다. 나와 불은 서로 겹쳐지면서, 각각 흔들리면서, 서로를 흔들면서, 공유할 수 있는 이미지 한 개를 만드는 것에 합의를 본다. 바로 그것이다. 바슐라르에게 상상력이란 사물과 인간의 시선이 겹쳐지는 그 순간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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