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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評 -‘적대적 공생관계’, 과연 어디에 방점을?
막스 호르크하이머 저, <도구적 이성 비판>, 문예출판사, 2006.
츠베탕 토도로프 저, <덧없는 행복>, 문학과지성사, 2006.
[137호] 2006년 11월 06일 (월) CRUE 서평전문편집위원

오늘날 모든 사유는 사유가 아닌 어떤 것, 즉 그것이 생산에 미치는 효력이나 사회적 태도에 주는 영향에 비추어 평가되어야만 하는 운명 앞에 놓였습니다. 각종 사유를 고찰하는 철학 교수들이 학문의 원형으로 삼는 것은 놀랍게도 실험 물리학입니다. 그들은 사유를 마치 그것이 사물인 것처럼 다루며, 현대적 자연 지배로부터 추상화된 것 이외에 진리에 관한 모든 다른 이념을 제거합니다. 이처럼 학문에 있어 실험을 제일의 원리로 추동하는 것은 현대의 산업 지상주의와 한 쌍을 이루는 ‘실용주의’입니다.

호르크하이머의 좬도구적 이성 비판좭은 이와 같은 실용주의의 재료로 기능하는 오늘날의 이성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는 저술입니다. 이 책은 아도르노와 함께 쓴 좬계몽의 변증법좭 이후 호르크하이머가 독립적으로 저술한 최초의 책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아도르노는 좬한 줌의 도덕좭을 발표하였지요. 따라서 프랑크푸르트학파를 대표하는 두 학자의 서로 다른 저작은 좬계몽의 변증법좭 이후 그들의 사유가 각자의 입장에 따라 어떻게 변주되었는지를 추적해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합니다.

그 중 좬도구적 이성 비판좭만을 놓고 보면, 도구적 이성이란 개념을 전유하기 위한 호르크하이머의 작업이 밀도 있게 전개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듯이 좬도구적 이성 비판좭은 도구적 가치로만 평가되는 오늘날의 이성이 처한 지위를 가감 없이 드러내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적이 예증을 통해 전개되기보다는, 순전히 철학적 사유의 맥락 속에서 전개됩니다. 좬한 줌의 도덕좭이 모래알처럼 흩뿌려진 한 줌의 글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양상입니다.

좬도구적 이성 비판좭을 통해 호르크하이머가 비판적으로 평가한 신토마스주의자들이야말로 종교에 있어서의 실용주의자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견 적대적으로 보이는 종교와 계몽은 신토마스주의자를 통해 다소 위험스러운 결합의 양태를 취합니다. 신토마스주의를 통해 토착적인 신앙은 해체되고, 믿음은 합목적성의 문제와의 관련 하에서만 파악됩니다. 즉 자신이 지닌 목적과의 관계 하에서만 그 믿음의 가치가 매겨지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토마스주의는 기복신앙과 비교될 수 있습니다. 기복신앙의 세례자들은 전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이득이 주어지는 한에서만 그 믿음을 유지합니다. 우리는 매년 이 시기마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한 신토마스주의의 맹신자들을 목도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대입 수학능력시험을 앞둔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지요. 그들의 목적이란 자녀의 대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루소에 의하면 이와 같은 기복신앙은 이기주의와 연결될 수 있습니다. 이기주의란 사회 제도의 산물로서, 자연 상태의 자기보존과는 엄연히 구별되는 것입니다. 오늘날과 같은 사회 상태에서 인간은 전적으로 사회적인 소속과 타인과의 의존 관계, 그리고 다른 인간과의 교류에 의해 결정됩니다. 인간은 타인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들의 시선을 의식합니다. 그런데 기복신앙에 있어서는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는 이익의 크고 작음만이 그 신앙이 가지는 가치를 평가하는 척도가 됩니다. 따라서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는 이익을 보다 크게 만들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타인의 이익을 작게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대입 수학능력시험의 경우를 다시 들어보더라도, 내 아들이 1등을 하기 위해서라면 남의 딸이 2등, 3등으로 밀려나야만 하는 것이지요.

루소적 사유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까닭은 바로 이와 같은 자아와 타자와의 관계에 대한 성찰이 그의 사유 속에 포함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루소는 ‘고독’의 철학자로서 타자에 대한 배제를 일삼은 인물로 일면적인 평가만을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토도로프는 좬덧없는 행복좭을 통해 루소를 재해석해냅니다. 이는 루소라는 인물의 재평가는 물론이거니와 루소적 사유의 복권이라고도 할 만한 의미 있는 작업입니다. 루소가 전파한 계몽으로 인해 신음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있어 루소적 사유의 복권은 호르크하이머나 아도르노의 것과 같은 우울한 비전이 아닌 희망적 비전을 제시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좬덧없는 행복좭은 루소에게 있어 ‘타인’, 더 나아가 ‘타자’는 산소와 같은 것으로, 타인 없는 실존은 상상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는 타자에 대한 배제가 아닌 타자에 대한 인정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가진 루소에 대한 고정관념에 대해 전복을 요구합니다. 개인은 타인 없이 살 수는 있지만, 각 개인이 내재화하는 타인의 시선 없이, 완전히 혼자서 존재할 수는 없습니다. 이처럼 루소라는 철학자가 지닌, 그리고 토도로프라는 루소 해석가가 지닌 최량의 사유 속에서 자아와 타자의 순진한 차이는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이와 같은 타자를 향한 루소의 사유를 고려해볼 때,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此有故彼有 此起故彼起)’는 좬잡아함(雜阿含)좭의 경구가 주는 의미는 새삼스럽습니다.
이와 같은 ‘부정적 관계성’에 기초한 주객의 관계, 자아와 타자의 관계를 ‘적대적 공생관계’라는 어휘로 부를 수 있을 듯합니다. 루소는 ‘적대적 공생관계’라는 역설적 합성어를 놓고 ‘공생관계’ 쪽에 방점을 찍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요. 어쩌면 루소는 ‘적대적’과 ‘공생관계’라는 단어 사이에 작동하고 있는 미묘한 자장의 영향 하에 있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적대적’이라는 말은 그 안에 이미 관계성을 포함하고 있으니까요. 이에 따라 관계성을 고려하게 될 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루소에 관한 기존의 상식은 커다란 혼란을 겪게 됩니다.

기존의 상식에 의하면 루소는 항상 고독을 자처한 인물이었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타자를 사물화한 인물이었습니다. 호르크하이머가 경계한 타자의 사물화, 바로 그것이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던 루소에 대한 인식이었고, 이와 같은 루소의 사유는 곧 계몽 일반이 가진 폭력적 타자인식이라고 이해되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토도로프는 이러한 고정관념이 놓치고 있는 루소적 사유의 연원을 추적해갑니다. 그것은 작가로서의 루소를 주목할 때, 비로소 그 단초가 획득됩니다. 토도로프는 바로 이 지점에 착목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자들의 말들을 다루고, 타자를 대상으로 한 구조물을 만들기 위해 인생을 보낸 루소가 과연 고독의 화신이 될 수 있었을까라는 토도로프의 질문은 무척이나 의미심장합니다.

따라서 루소가 말한 ‘고독’은 문자 그대로의 고독이 아니라 그가 처한 상황, 즉 ‘의사소통의 상황’ 하에서 되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루소의 고독을 타자의 배제로만 해석했던 기존의 역사는 루소를 자기식대로 응용하고 싶었던 폭력적 과거일지도 모릅니다. 양차 세계대전을 포함한 각종 분쟁이 바로 그 예이겠지요. 이와 같은 시대에 철학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인문학 위기에 대한 최근의 목소리들을 들어보십시오. ‘팔리지 않는’ 인문학에 대한 위기의식으로 팽배해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의식이야말로 인문학이 처한 궁핍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줍니다. 인문학을 평가하는 기준조차 계량화, 사물화되어 있는 것이지요. 이성적 반성을 포기한 세계대전 시기 유럽의 이성과 인문학적 사유를 결여한 현재 대한민국의 인문학은 너무도 많이 닮아있습니다.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외침에 대해서도 부정적 사유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과학의 발전은 생산력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었고, 생산력의 발전은 잉여 생산과 더불어 잉여의 시간을 우리에게 제공해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상이나 숙고를 위한 시간은 철저히 실종된 듯합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떠나야 할 사람은 비단 마르셀 프루스트 한 사람 뿐만이 아니라 성찰이 결여된 덧없는 행복에 도취되어 있는 현대인들 모두가 아닐까요.

서평전문편집위원 C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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