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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집 받았지만, 새 집 줄게
모리스 모들리에,『증여의 수수께끼』, 오창현 옮김, 문학동네, 2011
[169호] 2011년 11월 28일 (월) 이지영 소설가 .

 

   
  △ 『증여의 수수께끼』
세대론이 대세다. 88만원 세대부터 C·D·E·G·I·M·P·U 세대까지 저마다 한 공부 하신 분들이 이름을 못 지어주어 안달이더니 이제는 아프니까 청춘이라며 청춘에게 콘서트까지 열어준다. 지금의 청춘은 위로받아 마땅한 세대가 되었다. 장강명은 장편소설 『표백』에서 현 세대를 사회에 대해 자살 선언을 할 수밖에 없는 세대로 그린다. 사람들은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하고 죽고, MBA 수석 졸업이 확정되고 죽는다. 위로받는 쪽이나 자살하는 쪽이나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러나 여전히 화두는 돈이다. 월가에서 시작된 시위가 전 세계로 널리 퍼져나가고 자신이 99%라고 확신하는 사람들은 99%의 결집에 가슴이 뛰었겠지만 결국 가장 가슴 뛰는 이들은 99% 중의 또 다른 상위 1% 아닌가? 99%의 99%는 무엇을 위해 외치는가. 돈을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의 모습은 당연한 일이지만 동시에 씁쓸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모리스 고들리에는 『증여의 수수께끼』의 서문에서 “돈 없이는, 수입 없이는 사회적 삶도 없으며 사실상 물질적·육체적 생존이 불가능하다. 이것이 문제인 것이다.” 라고 지적한다. 결국 현대 사회는 자본이 지배하고 있고, 모든 문제들은 이익인지 아닌지로 귀결되고 사람들의 관심사는 그래서 내가 돈이 많은지 적은지, 많이 벌고 싶은데 벌 길이 열려 있는지 아닌지 밖에는 없다. 그야말로 삶이 돈에 종속되어있는 세계인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세계는 언제부터 이 모양이 되었나. 누가 지금의 세계를 만들었는가. 모리스 고들리에는 이 책에서 다양한 민족의 사회상을 소개하고, 이 사회들을 지배하는 매커니즘의 생성과 전달 과정에 대해 고찰함으로써 현대 사회를 객관화하여 설명한다. 개인은 사회를 만들고, 사회는 개인의 가치관에 영향을 미치는 매우 유기적 관계로 이어져 내려온 사회에서 무엇이 문제였는가를 따지는 것은 아무 의미도 갖지 못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고들리에는 우리가 증여받은 이 사회가 증여되어온 과정을 직시해야 하는 까닭이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그것을 다시 증여해줄 것이기 때문임을 지적한다. 이것은 몹시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종종 잊고 살며, 영영 생각하고 싶지 않아하기도 하는 문제이고, 동시에 아주 중요한 이야기이다.

고들리에는 증여의 관계를 부모와 자식에 빗댄다. 이는 협상과 조건이 배재된 무조건적인 증여가 이루어질 것이고, 모든 세대는 원하건 원하지 않건 부모가 되어야만 함을 지적한다. 결국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어떤’ 부모가 될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그리고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지금 전 세계에 포진되어 있는 여러 사회적 현안들에 대한 현재의 논의들은 다소 수정되거나 보완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될 것이다. 우리는 사회를 증여받은 것에 즐거울 겨를도 없이 답례의 의미로써 다음 세대에게 그것을 증여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상기하는 것은 무척 유의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현대 사회의 모든 문제는 돈에서 불거지고, 돈으로 결판이 난다. 그래서 모두들 자신이 돈을 버는 일에만 관심이 있지 자신의 자식이 돈을 벌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다. 참으로 비정하고 어리석은 부모가 아닐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윗세대는 하지 않았으나 우리는 해야만 하는 것들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증여’를 논하는 것이 가치를 가질 수 있는 것은 그것이 결코 바뀌지 않는 것을 단순히 전달해주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증여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길이 열려있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위로받아 마땅하고 죽어 마땅한 세대에게 증여의 의무와 책임을 논하는 것이야 말로 몰매 맞을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사회의 구성원이 된 이상 우리는 보다 이 사회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은 개인이 사회의 구성원이기 때문이 아니라 개인을 구성하는 많은 것들이 사회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모리스 고들리에는 『증여의 수수께끼』에서 “왜 답례해야 하는가의 문제”에 대해 나름의 답을 찾고 있다. 우리 역시 이 점에 대해, 헌 옷 받아 입고 자라 자식에게는 왜 새 옷을 물려주어야 하는가에 대해 다소 못마땅할 수도 있으나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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