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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의 자유
김이듬,『말할 수 없는 애인』, 문학과 지성사, 2011
[169호] 2011년 11월 28일 (월) 박판식 시인 .

 

   
  △『말할 수 없는 애인』
여기 흘러온 자들은 서로를 멸시하여 웃음을 주고받곤/ 버스를 타고 야시장으로 간다// 문상 온 사람들이 명절날 아침처럼 낯설어할 때/ 모처럼 모인 형제들은 싸운다/ 살인이 있었고/ 한 여자가 아기를 안고 강물 아래로 몸을 던졌다/ 동산 꼭대기에서 연기가 피어 오른다// 사계절이 사라졌고/ 오래된 성곽과 망루의 보수공사는 끝나지 않는다/ 사랑한다고 말한 것뿐인데 고양이는 내 뺨을 할퀴었다/ 흉터를 방지하는 연고를 바르며 이놈을 어찌할가 골몰한다// 전철을 타보지 않은 아이들은 소년이 되기 전에 스쿠터 뒤에 소녀들을 싣고/ 제 삼촌뻘 되는 이들에게 배달 다닌다/ 명절에 이들은 한복을 차려입고 쟁반을 들고 급히 움직이느라/ 버스를 들이받고 강둑으로 튕겨 오른다// 그러나 이 모든 사소한 사건은 지역신문에도 실리지 않고/ 문풍지 없는 미닫이문 앞에서 라면 박스를 안고 웃는 의회 정치인 얼굴만 찍혀 있을 뿐 -「고향의 난민」중

 

누구라도 그렇지만 특히 시 쓰는 사람은 자신의 양심을 믿어서는 안 된다. 양심은 남을 속이고 자신을 속인다. 그래서 시 쓰는 사람에게 양심은 고백의 대상이 아니라 투쟁의 대상이여야만 한다. 시 쓰는 사람은 매번 양심에 진다. 시는 번번이 질 수 밖에 없는 패를 들고 양심에게 덤벼든다. 그런데 정작 승리의 이득을 챙겨가는 쪽은 양심이 아니라 시와 양심이 도박판을 벌일 수 있게 비밀 장소를 제공한 삶이다. 삶은 시와 양심의 배후에서 그들이 어떤 술수를 부리는지 조용히 양쪽 모두의 패를 지켜본다.

김이듬의 시 속에서 주로 독자에게 말 걸어오는 이는 고아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고아가 독자인 나에게 말 걸어오는 것은 아니다. 나는 고아가 혼자서 넋두리 하는 것을 엿듣는다. 부모의 생물학적 죽음만이 사람을 고아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 그러나 누군가에게 그 받지도 배우지도 못한 사랑을 주어야만 입장에 처한 아이는 모두가 고아다. 고아는 삶의 방식을 혼자서 터득한 독학자일 수밖에 없다. 삶의 독학자는 한편으로는 자유롭고 한편으로는 외롭다. 

그런 면에서는 동물(고양이)이 살아가는 방식이 고아의 방식보다 우월하다. “사랑한다고 말한 것뿐인데 내 뺨을 할퀴”는 고양이의 방식을 고아는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다. 사랑 없이도 냉담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고양이는 고아보다 우월한 존재다. 하지만 김이듬 시 속의 고아는 고양이식의 삶의 이치를 터득할 팔자가 못된다. 고양이는 사람의 양심 같은 것은 바라지도 않는데, 김이듬 시 속의 고아는 인간의 양심 때문에 그런 냉담한 고양이와 심지어 들쥐에게조차 공평하려고 헛힘을 쓴다.

따라서 세상에서 매일같이 벌어지는 사소하지만 절대 사소하지 않은, 주로 사랑의 결핍과 서로 다른 사랑의 표현방식 때문에 벌어지는 사건들 때문에 고아는 분노한다. 그러고도 분을 참지 못하고 “밤을 치던 칼로 신문지를 찍”다가 고양이를 데리고 동산에 올라가 “다리를 푹 꺾고 머리를 홱 젖혀 팔을 벌”린 채 “다 죽여버릴 거”라고 절규하다 침을 흘리며 개와 고양이와 함께 납작 엎드리고 만다.  고아는 그 망할 놈의 양심 때문에 무심한 고양이나 개는 되지 못한 채 그들이 하듯이 납작 엎드린 채 자신이 태어난 고향을 가만히 지켜본다. 그 순간 고아는 고향에 돌아왔지만 여전히 “고향의 난민”인 자신의 처지를 인식한다. 

그런데 세상엔 고아가 너무 많다. 김이듬의 눈에는 특히 고아가 더 많이 보이는 것 같다. 아기를 안고 투신한 여자도 그렇고, 명절날 한복을 입고 손님을 접대하는 다방이나 술집의 소녀들도 그렇고, 그들을 오토바이에 싣고 다니는 소년들도 그렇고, 죽은 딸을 쉬쉬하고 있는 담배 가게 아저씨도 그렇다. 그런데 고아들은 눈에 띄고 싶어 하면서도 또 숨고 싶어 하는 존재들이다. 고아들의 고통과 비밀이 시집 곳곳에 편재해 있지만 그것은 도드라지는 동시에 또 조용히 숨어 있다.

그래서 이 시집은 앞에서가 아니라 뒤에서부터 읽는 편이 훨씬 좋다. 시집의 마지막에 실린 시 「고향의 난민」을 나침반 삼아서 시 속의 화자가 그렇게 했듯이 “고양이들과 떠돌이 개와” 같이 “납작 엎드려” 시집을 되짚어 읽으면, 질 속에서 나오지도 못한 채 늙어 죽는 이와 설령 질 밖으로 나왔다하더라도 사랑에 굶주린 고아의 넋두리들이 문득 들려올 것이다. 그리고 혹 운 좋은 사람은 비정한 고아 어머니의 유언에서 뜻하지 않은 슬픈 사랑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시집 『말할 수 없는 애인』은 차갑고 비정한 세상(세상의 이해하기 힘든 갖은 변종의 모정과 부정들)에 던지는 시인의 일찌감치 패배한 사랑(양심의 가책)이다. 그런데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고아에게 세상을 직시하고 세상에 대한 사랑을 부정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 가혹한 처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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