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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사태를 진단한다
증오의 정치, 북미 핵공방의 끝은?
[137호] 2006년 11월 06일 (월) 윤지훈 (민주노동당 통일외교정책연구원)

“국지전을 각오하고 PSI에 동참해야 한다.”,
“지금 물리적 충돌의 가능성을 두려워해선 안된다.”

한반도에 발 딛고 사는 거대 야당의 유력 정치인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미국 네오콘 세력에게나 어울릴법한 이런 발언들을 연일 거침없이 쏟아 내는 그들은 미 국방부가 워게임을 통해 2003년에 작성한 보고서를 보지 못한 듯 하다. 비밀문서로 되어 있는 이 보고서는 지난 10월 13일 호주의 한 신문을 통해 공개되었다. 이 보고서는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경우 개전 첫 90일 동안에 5만2천명의 미군 사상자가 발생하고 100명의 민간인들이 희생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3년 남짓한 전쟁으로 3천여명의 미군 사망자를 낸 이라크 전쟁과 비교한다면 가히 충격적인 내용이다. 군사력을 비롯한 각종 수단을 사용해서 상대의 의지를 강제하기 위한 폭력적 정치 행위인 전쟁은 이렇듯 인간의 생존을 파괴하는 잔혹한 결과를 남길 뿐이다.

10월 9일 조선중앙통신사의 보도를 통해 공표된 북한의 핵실험은 ‘과거의 기억’이 아닌 ‘현재 진행형’이 되었다. 80년대 중반 프랑스의 상업 위성이 북한 지역에서 포착한 ‘의심스러운 행동’이 현실화 되어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사회의 탁자에 실제 올라온 것이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이번 문제의 해결이 이루어질 것인가에 대한 전문가들의 다양한 분석과 우려, 전망과 예측이 난무하지만 단언하기에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치밀한 전략과 다양한 변수들이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북미관계는 가속도가 붙은 열차가 하나의 레일에서 마주보고 달리는 형국이다.

2000년 조미공동선언 이후 북미관계 정상화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시점에서 출발한 부시 행정부는 기존 민주당 정부에서 추진한 북미관계 개선 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기 시작한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있어 기본 전제는 ‘Anything But Clinton(ABC)’이었던 것이다. 의회에서 다수파였던 공화당은 부시 행정부 등장 이후 북한에 대한 중유 지원 예산을 축소하였고, 2001년 9.11 테러 직후 일명 ‘악의 축’ 국가들에 대한 압박을 본격화하기 시작한다.

2003년에는 구체적 증거도 없이 대량살상무기를 갖고 있다는 단정적 의심을 이유로 이라크에 대한 2차 전쟁을 시작하였으며, 2002년에는 북한에 대한 아무런 증거 제시 없이 우라늄농축 핵 프로그램에 대한 시인을 종용하였다. 이를 근거로 IAEA 정례 이사회는 북핵 결의문을 채택하며 북한을 압박하기 시작하였고, 북한은 핵 동결 해제 및 NPT 탈퇴 선언으로 맞대응한다.

점증되는 위기 상황에서 미국은 직접대화를 통한 양자대화에서 다자 틀로 형식을 변경하며 2003년 8월 1차 6자회담을 시작하였지만 회담은 차수를 변경하며 지지부진하게 되었고, 역으로 미국을 압박하기 위해 북한은 2005년 2월 핵무기 보유 선언에 이어 5월에는 영변 5MW 원자로에서 폐연료봉 8천개 인출을 완료했다는 발표를 하기에 이른다. 2005년 6월의 정동영 장관 방북에 이어 7월에는 탕자쉬안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의 방북으로 6자회담은 재개되었고, 마침내 9월 한반도를 둘러싼 6개국이 합의 서명한 9.19 공동성명이 도출되었다. 94년 제네바 합의, 2000년 조미공동선언에 이어 비핵화와 적대관계 청산을 기본 골자로 하는 세 번째 합의가 이루어 진 것이다.

그러나 미국 강경 네오콘 세력은 이 합의에 불만을 표출하며 핵문제 외에 인권, 마약, 위폐 등의 장외의제를 부각시킨다. 이른바 ‘북핵문제에서 북한문제로의 확대 정책’을 취한 것이다. 제일 먼저 시작된 조치는 BDA 계좌 동결로 시작된 금융제재였다. 미국은 북한의 위폐 제조, 유통 혐의를 이유로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 은행(BDA)의 북한 관련 20여개 계좌 총 2400만불에 대해 동결 조치를 취했고, 추가 제재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북한은 이 문제와 관련해 2006년 3월 7일 리근 북한 외무성 국장이 미국에 가서 ‘증거 제시 관련자 처벌, 위폐 감별 기술 지원 및 협조, 미국 내 북한 계좌 개설’등을 제안했으나, 미국은 뚜렷한 증거 제시 없이 ‘북한이 혐의를 인정하고 위폐 제작 인물과 기계를 미국에 넘길 것’을 요구했다. 2002년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에 이은 ‘진실게임’이 반복된 것이다.

이후 6월 크리스토퍼 힐의 평양 초청 거부, 6-7월에 연이어 벌어진 ‘용감한 방패(Valiant Shield) 2006’, 환태평양해군연합훈련 등을 통해 북한은 미국이 세 차례에 걸쳐 합의된 북미 적대관계 청산 및 근본적인 관계 개선에 의지가 없다고 판단을 했으며, 7월 5일 다량의 미사일 시험발사 후 UN안보리의 1695호 대북결의안이 통과되고 대북 제재가 강화되자 다시 10월 3일 핵 시험 예고 뒤 6일 만인 9일에 공식적인 첫 핵 시험을 실시하였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에도 미국은 국내외 대북 정책 실패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북한과의 직접 대화 요구도 거부한 상태다. UN안보리 1718호의 대북결의안으로 ‘국제사회 대 북한’ 구도를 만들고 UN헌장 41조에 기반한 경제적, 외교적 제재를 취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북한의 핵 시험과 핵 보유 문제가 현실화된 상황에서 이제는 핵 물질의 이전 문제를 금지선(red line)으로 설정하고 대북 압박을 본격화 하고 있다.

미국의 이러한 전략은 북의 핵 보유에 대해서는 모호한 태도를 취하면서 동북아시아 지역의 핵 개발 확산을 차단하고, 북에 대해서는 ‘악의적 무시’ 전략을 계속 사용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북은 ‘제국주의에 초강경으로 대응하는 사생결단의 반제 투쟁정신’을 강조하는 선군정치로 맞대응하고 있다. 한반도의 전쟁이 종료되지 않은 정전협정 상태임을 감안한다면, 북 입장에서는 배수진을 친 것이다. 북은 동구 사회주의권 몰락과 이라크에 대한 무차별 침공을 지켜보며, 반세기 넘게 초강대국 미국과의 대결 과정에서 그들 스스로 학습한 생존 전략으로 독특한 선군정치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2005년 2월 핵무기 보유 선언 이후 어쩌면 당연한 수순인 북의 핵실험에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국제사회는 강력하게 대응하고 있다. 강력한 UN의 제재 조치와 전방위적 압박 전략을 예상했을 북은 이 시점에 가장 높은 수준의 정치적 결단을 내린 것일까? 다음의 몇 가지 이유들은 북의 핵실험 강행에 대한 판단 근거가 될 수 있다.

첫째 미국과의 적대 관계 청산을 위한 북의 손익계산 속에 이번 핵실험이 실시되었다고 볼 수 있다. 북의 최종 목표는 북미간 상호 적대 관계 청산과 국교 수립이다. 핵포기와 북미관계 정상화를 이루어 제재에서 벗어나 경제 개혁을 통해 정상국가로서 국제사회에 등장하길 원한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북에 대해 ‘악의적 무시’와 ‘선제공격’, ‘정권 교체’ 등을 추구하고 있다고 최종 판단한 북은 미국의 정책변경을 압박하기 위한 구체적 행동 조치로 이번 핵실험을 실시하였다. 94년의 제네바 합의와 2000년의 조미공동선언은 북이 이번 핵 시험을 선택하는 데 있어 좋은 참고자료가 되었다.

둘째 북은 핵 포기를 통한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이 철회되지 않는 한 핵보유를 통한 물리적 군사력을 확보하는 것은 궁극적 안전장치를 마련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였다. 핵을 가진 국가에 대한 군사적 압박이 불가능하다는 국제사회의 경험적 진실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북은 동구 사회주의권 몰락 이후 과거 혈맹국가들과의 관계 변화와 균열, 이라크 전쟁 등을 보며 자위적 수단의 최종 목표를 핵 보유로 상정한 것으로 보인다. 핵이 주는 억지력은 상대방에 대한 강력한 ‘위협’ 능력에 있다. 비용 대비 효과 면에서 북 당국이 버릴 수 없는 카드였던 것이다. 이러한 북 당국의 선택은 향후 북핵 포기를 위한 6자회담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의 비핵화와 핵 군축을 위한 회담으로서 ‘틀’ 변경을 시사한다.

셋째 북 당국은 핵 시험을 통한 핵무기 보유가 국제사회에서 북의 입지를 강화하고 발언권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있다. 북 당국은 98년 광명성 발사 이후 소원했던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2002년 북일 정상회담을 진행했으며, 미국 또한 2000년 조미공동선언을 발표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또한 인도와 파키스탄이 핵실험을 한 이후 미국 등 국제 사회로부터 경제제재를 받았지만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제재는 해제되었고 국제사회는 두 국가의 핵 보유를 묵인하는 상황에 이르렀으며, 두 나라는 국제사회에서 발언권이 높아졌다. 국제사회에서 힘의 시위가 국력의 또 다른 표현이 되는 현실 속에서 북은 제3세계 국가들에 대한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넷째 경제적으로 어려운 현실 속에서, 제2의 고난의 행군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르는 북은 인민들의 단결과 결속이 핵심적인 과제로 나섰고, ‘선군정치’의 유용성을 선전하는 좋은 정치적 기재가 핵실험의 성공 소식이었을 것이다.

북의 핵 시험 실시 이후 미국과 일본은 바쁘게 움직였다. 핵실험 실시 직후 6일 만에 UN안보리 대북 결의안 1718호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결의안 통과 직후 박길연 주유엔북한대표부 대사는 “우리는 이번 결의안을 전적으로 거부한다.”면서 “만약 미국이 북에 대한 압력을 가중시키면 북은 이를 전쟁선포로 간주하고 계속해서 물리적 대응조치를 취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고, 17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이를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이에 대해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결의안 통과 후 한, 중, 일, 러 순회 방문을 하면서 “이들 지역 나라들은 미국과 전략적 동맹관계의 혜택(benefits)을 누리는 동시에 그에 따른 ‘부담(burden)’도 같이 해야 한다”고 발언하며 전면적인 대북제재에 동참할 것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특히 그는 금강산관광사업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드러냄과 동시에 한국의 PSI(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 참여를 적극 주문하였다. 미국은 국제사회의 전면적인 대북제재로 북을 고립, 압박하여 북 당국이 핵 개발을 포기하고 6자회담에 복귀한다는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지만, 현재 북의 대응으로 볼 때 실현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다. 이에 따라 미국은 제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한국과 중국의 적극적인 동참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하고 두 나라를 압박하고 있으나, 한국과 중국 정부는 제재를 위한 제재에 반대하며 평화적 해결을 위한 선별적 제재 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관련 당사국들과 전문가들은 북핵실험의 성공 여부, 추가 핵실험 실시 가능성, 한국정부의 PSI 참여 문제, 대북 제재의 실효성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논쟁을 벌이고 있다. 향후 한반도의 위기지수는 어느 수준까지 올라갈 것인가? 그리고 위기를 관리하고 평화지수를 높이기 위해 관련국들과 한국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나? 현재 북핵실험의 성공 여부에 대해 미국과 일본, 우리 정부가 공식 발표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미국 국방정보국은 16일 핵시험 사실을 공표하였다. 미국과 일본의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대북 제재의 수위가 조절되지 않고, 전면적인 선박 검색 등의 조치가 이루어진다면 북한은 추가적인 조치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추가적인 조치에는 2차 핵실험,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국가준전시체제 선포, 정전 협정 무효화 등이 있을 수 있다.

한편 한국 정부는 PSI와 관련해서 어떤 식으로든 입장을 정리할 것으로 보인다. 전면 참여는 아니더라도 현재의 참관 수준보다 한 단계 진전시키는 방안을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영해를 통과하는 북한 선박에 대해 남북해운합의서에 근거한 엄격한 선박 검색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이 요구하는 전면적인 PSI 참여는 무력 충돌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또한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단은 큰 틀에서 계속 진행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되 운용 방법을 개선하고, 추가적인 경제 프로젝트와 관련해서는 보류하고 민간교류를 분리해서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여 ‘상황 유지’ 수준에서 관리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른 측면에서는 북한의 핵위협에 대응한다는 차원에서 미국의 핵우산 공약을 명시하며 구체적으로 추진하는 전략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18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군사위원회와 20-21일 연이어 진행된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이를 확인하였다.

북핵 시험 실시 이후 통과된 UN안보리 대북결의안의 수위를 조절하면서 대화를 강조한 중국과 러시아는 결의안 통과를 전후하여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알렉산드르 알렉세예프 러시아 외무차관이 14일 북한에 이어 15일 한국을 방문하면서 대화 메신저를 자임하고 나섰고, 중국은 탕자쉬안 국무위원이 미국과 러시아의 방문에 이어 19일에는 후진타오 주석의 특사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 위원장과 전격 회동하였다.

이 회담의 자세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북핵 공방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중요한 움직임이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창조적 상상력을 발동해 본다면 대화 재개를 위해 중국 측이 ‘모종의 제안’을 미국에 하였고, 북한에 이것을 설명한 후, 다시 미국 측에 전달하는 일종의 메신저 역할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전망을 할 수 있다. 중국 측이 제안한 ‘모종의 제안’에 대해 일각에서는 북한은 추가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며, 미국은 금융제재 조사에 대한 일시 중지나 일부 자금 해제, 그리고 중국이 참여하는 북미중 3자 대화 개최 등의 내용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안에 대해 미국 부시 대통령과 라이스 국무장관은 6자회담 틀 내의 양자회담만 가능하며 금융제재 등과 관련해서는 정책 변경을 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한편 중국과 러시아는 UN안보리 결의안을 존중하되 형식적인 제재로 미국과 일본의 요구에 대응할 것으로 보이며, 북한 체제를 위협하는 수준의 전면적 대북제재는 동참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러시아의 이런 입장은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분풀이 경제제재’의 실효성을 제약하는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

실제 PSI를 통해 해상에서 북한 선박에 대한 정선, 검문, 검색이 일어난다면 북한의 물리적 대응을 피할 수 없을 것이며 상황은 감당할 수 없는 사태로 발전할 수 있다. 당분간 미국은 북에 대화를 제의하지 않을 것이 명확하나, 뉴욕타임스, FT, 가디언, 르몽드 등 외신들이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고, 11월 7일 미국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패배한다면, 냉각기를 가진 후 상황 변화에 따라 물밑 흐름이 작동할 수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마주 달리는 열차를 멈춰 세우기 위해서는 양 기관차의 기관사가 서로 대화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 미국 상하원을 통과한 2007 국방수권법의 ‘대북정책조정관’ 임명은 눈여겨 볼 만 하다. 대북정책조정관에게는 의회에서 북핵 문제를 비롯한 전반적인 대북 정책의 검토와 북한 협상의 지휘권 등을 부여하도록 되어 있으며, 예산안 통과 이후 60일 이내에 임명하게 되어 있다.

탕자쉬안 국무위원이 북미 양국에 전달한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지만, 앞에서 예측한 수준이었다면 2006년판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외교적 노력이 현실화 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북한과 미국은 추가 조치 중단과 금융제재 일시 해제 등으로 상호 대화의사를 표명하고 중국이 중재하는 대화에 참가한다.

그리고 미국은 부시 행정부와 공화당이 신뢰할만한 인물 중 북미 대화에 유연한 입장을 가진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 같은 인물을 대북정책조정관으로 임명하여 제2의 지미카터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북한에 특사를 파견하고 동시행동의 원칙으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다. 참여정부도 이런 움직임에 발맞춰 연일 부시 행정부를 비판하는 DJ의 방북을 추진하고 한반도 화해와 평화를 위해 국제사회에 노력하는 모습을 남북이 동시에 보여줘야 한다.

그러나 위에 열거한 이 모든 상황은 미국의 전향적인 입장 변화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미국의 전향적인 입장 변화를 어떻게 끌어낼 것인가? 11월 7일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의 패배에 기대를 거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의 역할이 제한적이라는 측면에서 앉아서 구경만 할 수는 없다. 단 1%의 전쟁 가능성이라도 없애기 위해서는 7천만 민족의 단일한 ‘반전평화’ 열망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부시 행정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일 것이다.

윤지훈(민주노동당 통일외교정책연구원)

※본고는 북한의 6자회담 복귀선언 이전에 작성된 원고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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