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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 나우(apocalypse now)
문강형준, 『파국의 지형학』, 자음과모음, 2011
[167호] 2011년 09월 26일 (월) 김혜인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파국의 지형학』 표지를 거꾸로 보면 거대 도시가 나타난다. 도시는 고층 빌딩과 원형 광장, 일직선의 도로로 메워져 있으며, 그 상단에는 ‘POLO GROUNDS’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미국의 전설적인 야구장 ‘폴로 그라운즈’ 그 자체이자, 자본주의의 상징적 공간이기도 한 이 거대 도시 위에는 일련의 물결이 드리워져 있다. 그것도 찬란한 금빛의. 하지만 사실, 표지 그림을 바로 보면 거기에는 재앙 직전의 상황이 펼쳐져 있다. 도시는 지반 자체가 아래를 향해 뒤집혀 있어 금방이라도 추락해 멸망할 형국이다. 저자에 따르면 파국을 뜻하는 영어 ‘catastrophe’는 그리스어 ‘katastrephein’에서 유래하는데, 이는 ‘아래kata’와 ‘뒤집힘strephein’이 결합한 것으로, ‘아래로 뒤집히는 상황’을 의미한다. 도시 전체가 뒤집혀 버린 이 파국의 세계에 드리워져 있는 금빛 물결은 실상, 멸망의 균열과 전조들이 서로 연결된 ‘파국의 지형도’이기도 하다.

문강형준의 문화비평서 『파국의 지형학』은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금빛 물결 그 이면에 잠재하는 ‘파국의 지형도’를 그려내며, 파국의 분위기와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을 사유하고자 한다.

공산권 몰락 이후, 미국발 자유주의의 전면화가 자본의 유토피아적 시작을 알리는 가운데,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은 실상 신자유주의의 견고한 탄생을 예고했다. 저자가 지그문트 바우만의 말을 빌려 얘기하는, 국가는 사라지고, 사회는 녹아버리고, 오직 개인의 투쟁만이 남은 이 신자유주의라는 ‘액체 시대’인 지금-여기, 한국의 경우에도 이 ‘단 하나의 덩어리’에 저항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철거민을 비롯한 프롤레타리아의 좌절은 어느 때보다 두텁게 쌓여갈 수밖에 없으며, 다수의 사람은 그 어느 때보다 파국에 대한 상상에 강력하게 휩싸일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의 시대, 우리의 일상이 영원하리라고 믿는 이들은 언제나 오늘 편안한 이들이다. 오늘 뼈가 빠져야 하는 이들은 오늘의 시대와 일상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13)든 것처럼. 그러나 저자는 이 ‘받아들이기 힘든 불편함’ 속에서 유령처럼 출몰하는 ‘파국의 상상력’에 잠재된, 위기와 절멸을 상상함으로써 현재의 질서를 역전시키고 절멸시키려는 적극적인 혁명적 의지를 함께 포착해내며, ‘세상의 끝’ 이후 세계에 대한 인간의 열망을 비춘다.

『파국의 지형학』은 문학, 영화, TV 쇼프로그램 등과 같은 대중문화와 철학, 종교, 정치이론 등을 접목하여, 동시대 전방위적으로 나타나는 증후를 분석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를테면 현재 많은 문화 생산의 주요 소재가 되는 좀비는 과거 노예와는 달리 자신을 억압하는 주인조차 없는 ‘자기 자신의 주인’으로서, 자본주의의 극단적인 노동 소외를 상징하는 은유이다. 절멸의 상황은 철학에서도 나타나는데, 데리다로 대표되는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에 담긴 의미 불가능성에 대한 지향은 실상 자본주의가 지향하는 무의미성과 교환가치의 무한 연쇄와 교접한다. 그러나 안티고네와 김예슬의 사례처럼, 무의미를 향한 죽음충동이 가지는 창조의 가능성, 즉 진정한 파국이 생산해내는 가능성 역시 잊지 않는다.

더불어 유토피아 담론 및 운동의 계보를 추적하며, 그 가운데 드러났던 혁명적 가능성에 대해서 말한다. 이를테면 16세기 ‘천년왕국운동’은 지배계급의 억압과 착취에 맞서 새로운 왕국을 건설하고자 반란을 일으켰던 운동이다. 이 반란의 가담자인 농노와 장인 등은 당시 ‘비동시성’ 혹은 ‘시대착오성’을 지닐 수밖에 없었으며 지배계급에게 ‘광신자fanatics’로 취급받았으나, 바로 이들의 ‘광신’이야말로 유토피아적 열정이자 혁명적 가능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조건이 된다. 이 ‘성급한’, 그리고 ‘실패한’ 기획들은 과거 어느 순간에 고착되어 역사화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되살아나 혁명의 가능성을 미래로부터 불러일으킬 조건이 될 수 있다는 것, 이러한 점은 ‘아포칼립스’(apocalypse:‘파국적 사건’ 혹은 ‘계시’를 의미함)와 ‘유토피아’가 사실 동전의 양면이라는 사실로부터는 나온다.

파국의 상상이 우리 곁을 함께하며 무의미, 욕망, 적대, 경쟁, 폭력을 불러일으키는 ‘아포칼립스 나우now’, 그러나 이 시간은 반대로 유토피아적 열정이 가장 고양되는 시기이며 동시에 자신이 ‘인간’임을 그 어느 때보다 가장 강력하게 증명할 수 있는 윤리적 순간이다. 다시 표지로 돌아가서, 거대 도시가 아래로 뒤집힌 채 파국을 앞둔 최후의 형국은 반대로 이 세계의 시작을 ‘POLO GROUNDS’가 아닌, 다른 어떤 새로운 것으로 상상 가능토록 하는 최초의 모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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