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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라는 향락, ‘반(半)난민’이라는 아포리아
서경식,『언어의 감옥에서』, 권혁태 옮김, 돌베개, 2011
[167호] 2011년 09월 26일 (월) 조은애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한 인간의 아이덴티티 형성 과정을 물을 때 국민국가라는 조건/틀을 전면화시키는 것은 더 이상 전략적인 수단이 될 수 없는 것일까. 다양한 에스닉 집단의 잡거 상태가 ‘다문화’로 통용되는 지금, 여기서 발생하는 수많은 단절의 사태들은 이(異)문화 간 디스커뮤니케이션이라는 문제로 보아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국민’이라는 정치공동체 내부의 정치적·윤리적 문제로 보아야 하는 것일까. 근대 국민국가 체제 확립 과정에 얼룩져 있는 식민주의와 식민지 경험은 지금 얼마나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런 문제들에 도달하기 위해 재일조선인 인문학자 서경식이 ‘언어’라는 출발점을 택한 것이 누군가에게는 잘 이해되지 않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자연스럽게 익힌 모어(mother tongue)와 국민으로서 습득한 모국어(native language)가 모두 ‘한국어’로 일치하는 우리 대부분이 그것을 완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한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현재 재일조선인의 기원과 역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재일조선인으로서의 언어경험을 통해 국민·국가주의와 식민주의를 비판하는 그의 발화방식이 얼마나 직설적이며 ‘날것’의 논법인지를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신체에 각인된 모어의 내력과 그 과정의 부자연스러움,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그것의 폭력적 형성과정을 반복해 상기시킨다. 그럼으로써 한편으론 윤동주가, 다른 한편으론 파울 첼란·프리모 레비·장 아메리라는 유대계 지식인이 통과해야 했던 ‘단절의 세기’의 언어경험과 자신의 언어경험이 어느 지평에서 공유되며 갈라지는지를 탐색해 나간다. 적(식민자)의 언어를 모어로 하여 글을 쓴다는 것, 그러한 행위가 자신의 아이덴티티와 직결되어 있다는 것, 모어와 모국어의 불일치가 자신을 비국민/난민의 상태로 규정짓는다는 것, 자신의 모국어 집단으로부터 끊임없이 반문과 비난을 받는 것. 이 모든 사태들은 그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카프카적인 악몽”에 다름 아니다.

한국에서 번역된 그의 두 번째 평론집 『언어의 감옥에서―어느 재일조선인의 초상』(돌베개, 2011)은 근대 국민국가 체제가 양산한 일종의 그림자―비국민/(반)난민―라는 위치에서 ‘국민주의’를 비판하고 ‘민족’과 ‘국가’라는 틀을 재고한다는 점에서 그의 첫 번째 평론집인 『국민과 난민 사이』(돌베개, 2006)의 연장선에 위치한다. 그러나 한편, 처음 자신의 모국어 집단 속으로 파고듦으로써 모어인 일본어와 모국어인 조선어(한국어)의 분열을 ‘악몽’의 수준으로까지 경험했던 1년여 간의 서울 체재 기간이 두 저서 사이의 어떤 결절점을 형성했다고 판단된다. 단지 여행지·체류지에서의 경험을 디아스포라, ‘단절의 세기’ 등과 같은 보편적인 근대의 이면들과 연결시켜 사고한다는 점에서 보면, 한국에서도 꽤 출판된 바 있는 그의 에세이 류(『디아스포라 기행』, 『시대의 증언자―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등)와도 분명 공유되는 감성이 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가 ‘카프카적 악몽’이라 묘사했던 ‘날것’의 언어경험이야말로 해방/패전과 한일협정 이후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한일 양국의 ‘동시대사’에 직접 들이댈 수 있는, 잘 벼린 칼날이 되었다는 점이다.

정치공동체의 일원인 국민으로서 지닌 향락과 책임을 (스스로 규정한) 반(半)난민의 위치에서 묻고 있는 이 책의 3부 「화해라는 이름의 폭력」에서 그러한 논쟁적인 성격이 가장 잘 드러난다. 그는 여기서 두 가지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데, 첫째는 전후책임론과 관련하여 2000년대 이후 우경화하는 일본 리버럴 세력의 레토릭과 그에 부합하는 대다수 일본인들의 ‘국민주의’적 심성이다. 둘째는 화해라는 명분 아래 이른바 한국의 양비론자와 일본 리버럴 세력이 취하는 타협의 모드이다. 거기에는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내셔널리즘/페미니즘 논쟁, 교과서 문제와 독도 문제, 야스쿠니 문제 등 다양한 층위의 논점들이 있지만 이러한 사태들에 있어서 저자 서경식이 경계하는 것은 그러한 논점들을 ‘시민사회론’의 지평에서 굴절시키려 하는 움직임이다. 어느 순간부터 ‘국민주의자’가 시민권의 주체와 동의어가 되며, 일정한 보증이자 향락으로서의 국민이 대단히 특권적인 것임을 간과함으로써 국가주의와 공범관계를 맺는 것. 그것이 바로 대다수 정치공동체의 일원이 지닌 심정적인 것으로서의 ‘국민주의’이다.

그는 이 지점에서 한나 아렌트를 인용하여 ‘죄’와 ‘책임’의 구분을 강조한다. ‘죄’가 개인적인 것과 달리 ‘책임’은 언제나 정치적이다. 오직 “망명자이거나 국가 없는 사람들”만이 이런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ハンナ·アレント, 「集團の責任」, 『現代思想』, 1997.7). 서경식의 부연에 따르면 “어느 나라의 가장자리를 벗어나 다른 나라의 가장자리에 표착할 때까지의 ‘난민’만이 이 조건에 해당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누리는 국민이라는 향락과 그 대가로서의 책임이라는 것을 상정했을 때, 그 ‘무책임’의 대가란 서두에 언급했던 언어의 문제와 마찬가지로 그저 이해와 표상이 불가능한 공백의 영역으로 치부해 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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