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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사라 바트만과 해부학의 탄생」
사라 바트만이 완전히 묻혀서는 안되는 이유
[166호] 2011년 05월 30일 (월) 정기석 영어영문학과 석사수료

 

   
 
인종차별주의적 폐해의 상징적 인물인 '사라 바트만'(Sarah Baartman, 1789 ~1815)의 유해를 프랑스로부터 돌려받기 위한 협상이 7년 간 지속되다가, 유해의 반환을 결정하는 주요한 사건이 발생하는 데, 이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시인인 다이아나 퍼러스가 프랑스 상원위원들의 면전에서 '사라 바트만을 위한 헌시',「나, 당신을 고향에 모시러 왔나이다」를 낭송한 것이 그것이다. 시의 일부분은 이러하다. "나 당신을 해방시키려 여기 왔나이다/ 괴물이 되어버린 인간의/ 집요한 눈들로부터/ 제국주의의 마수를 가지고/ 어둠 속을 살아내는 괴물/ 당신의 육체를 산산이 조각내고/ 당신의 영혼을 사탄의 영혼이라 말하며/ 스스로를 궁극의 신이라 선언한 괴물로부터!"

그렇다면 어떻게 '사라 바트만'의 육체는 산산이 조각나고, 그 영혼은 사탄의 영혼이라 불리게 되었는가. 남아프리카의 코이코이족(KhoiKhoi는 부족어로 '사람'을 뜻함) 출신의 사라 바트만은 영국인 의사 윌리엄 던롭(William Dunlop)의 손에 끌려 1810년, 스무 살 나이에 영국으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사라 바트만은 '호텐토트의 비너스'(‘호텐토트’는 유럽인들이 코이코이족을 유인원과 비슷한 열등 족속이라며 경멸적으로 부르는 표현)라 불리며, 철창 우리에 갇혀서 나체의 몸과 성기를 내보이는 인종 전시를 당한다. '

이상한 쇼'(Freak Show)라는 이름의 이 전시는 유럽인의 성적 관음증의 대상이 되어 흥행 속에서 5년 동안 지속되었다. 하지만 사라 바트만은 그 같은 모멸적인 삶의 더 견디지 못하고 1815년, 젊은 나이에 사망한다. 하지만 죽음으로도 그녀의 비극적 삶은 끝나지 않는데, 그녀의 시신은 해부학자였던 조르주 퀴비에(George Cuvier)에게 양도되어 그의 해부학적 연구 자료가 된다. 퀴비에는 그녀의 시신에서 뇌와 생식기를 분리한 다음 알코올 용액에 담그고 '인간이 멈추고 동물이 시작되는 지점'을 찾아내는 연구를 했고, 그 후 그녀의 시신은 뇌와 생식기가 분리된 채 '박제'되어 프랑스 오르세 박물관에 소장 및 전시된다.

지난 5월 13일부터 21일 사이, 대학로 소울 소극장에서 행해졌던 연극 <사라 바트만과 해부학의 탄생>은, 사라 바트만의 삶과 그녀의 몸을 해부하고 분석한 서양 해부학자의 시선을 통해서, 서구 근대의 지식 및 해부학 탄생의 폭력성을 목도하게 한다. 미셸 푸코가 지적한 바와 같이 언어학, 경제학과 더불어 근대 과학의 분과학문으로 생성된 생물학은 다양한 층위에서 서구 근대의 권력과 연계된 지식의 메커니즘을 생산해왔다. 생물학의 하위 범주인 해부학도 그 중 하나인데, 이는 권력의 대상이자 표적이라는 측면에서 새롭게 발견되었던 '신체'를 서구 중심의 '동일성'과 '차이'로써 조망한 것이다.

중세의 신(God)의 자리를 이어받아, "스스로를 궁극의 신이라 선언한 괴물"인 서구, 남성, 백인 중심적 믿음으로 구성된 이성과, 그것을 토대로 하여 탄생된 '해부학'이 얼마나 작위적이고 허황되게 만들어졌는지를 이 연극은 사라 바트만과 그녀의 ‘몸’을 응시한 당시의 유명한 해부학자들의 행태를 통해 여실히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석호 연출자의 말을 빌면, “사라 바트만이라는 아프리카 여인의 몸을 해부학적으로 응시하면서 그 몸의 내용을 발명하고 왜곡한 가부장적 시선의 폭력에 대한 고발을 담고 있다."

1인극으로서 한 명의 여배우(위희순 분)가 다섯 명의 해부학자와 사라 바트만을 연기하며 진행되는데, 당시 해부학자의 남성 중심적 시선으로 바라본 여성의 몸에 대한 믿음이란, 신체를 떠돌아다니는 자궁을 고정시키기 위해서는 남성의 변을 말린 가루를 먹어야 하고, 수음(手淫)을 하는 여성은 '마녀'이기 때문에 화형 되어야 했다는 것이다. 더불어 서양 해부학자의 시선에서 사라 바트만의 신체와 생식기 역시, 서양인과 다르다는 이유로 기형적이고 악마적이며, 음란한 것으로 비춰졌고, 그것이 그녀의 비극적 삶의 이유가 되었다. 남아프리카에서 이미 아버지와 약혼자를 백인들의 손에 의해 잃고, 서양 남성의 관음증적 시선 아래에서 사물화되고 박제화되었던 사라 바트만의 절망적인 삶은, 서구 남성의 지식과 권력이 담합된 이성의 믿음 아래 행해진 가장 비이성적인 행위의 결과였다.

서구, 백인, 남성 중심주의의 폭력성과 서구 근대가 획득한 이성의 허위성을 관객에게 환기시키면서 연극은, 이미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믿고 있는 작금의 지식, 권력의 행태 역시 과연 자연스러운 것인지, 지금도 여성과 소위 제3세계라 불리는 나라의 사람들을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억압하고 있지 않는지 묻는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유색인임에도 불구하고 백인을 제외한 다른 피부색을 가진) 유색인을, 또 여성을 여전히 피지배의 대상으로 보는 폭력적 시선을 갖고 있지 않는가.

사라 바트만의 유해는 200년이 지나 2002년 그녀의 고향에 묻혔다. 하지만 과거의 폭력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고, 더하여 연극에서 사라 바트만의 자궁을 담아놓은 알코올 성분의 액체를 술처럼 따라 마시는 해부학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불편함만큼이나 불편한 진실이 반복해서 만들어지고 있는 작금의 시대는, 사라 바트만의 삶이 아직 온전히 묻혀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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