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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기발랄한 상상력을 뛰어넘는, 윤고은만의 몽상”
이 작가를 말하다-윤고은이라는 몽상가
[166호] 2011년 05월 30일 (월) 조현진 극작가

미래가 기대되는 작가, 윤고은

외로움은 최고의 비아그라다. 윤고은이 2008년 한겨레 문학상을 받은 『무증력증후군』의 첫 문장이다. 이 도발적 문장은 휘갈겨 쓴 것이 아니라 또박또박 하나씩 눌러 적은 것이다. 독자의 시선도 손도 세포 하나도 끝까지 놓치지 않도록.

   
  △  윤고은 작가
첫 문장부터 독자를 끌어당기는 『무중력증후군』은 어느 날 달이 절단 난 플라나리아처럼 늘어나면서 지구에는 무중력증후군이란 것이 유행한다는 이야기이다. 어느 날 갑자기 늘어나기 시작한 달처럼, 어느 날 달에서 그녀가 뚝 떨어졌다면 좀 더 드라마틱하겠지만 사실 그녀는 그 전부터 이 땅에서 잘 살고 있었다.

1980년에 태어난 고은주(윤고은 작가의 본명)는 2004년 「피어싱」이란 작품으로 제 2회 대산 대학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의 졸업을 앞두고 있던 때였다. 우리의 동문으로 현재 본교에서 강의를 맡고 있으며 나의 12년 지기이기도 하다.

대산 대학문학상 수상 후, 1회 수상자인 동갑내기 작가 김애란은 왕성한 활동을 펼쳤지만 고은주는 4년여 동안 공백기 아닌 공백기를 가진다. 2008년 윤고은이라는 이름을 달고 다시 세상에 나올 때까지. 윤고은은 고은주의 빈 시간을 빠르게 채우며 2년 만에 단편집 『1인용 식탁』을 묶어냈다.

이제 두 권의 책을 낸 작가. 확실히 윤고은의 문학적 성과라는 제목이 붙을 시점은 아니다. 나 역시 뛰어난 평론가도 아니고 학자도 아니고 그런 것을 논하거나 분석할 주제는 되지 못한다. 그래도 이러 이런 작가가 있더라는 수다스런 소개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청탁 받은 이 코너의 이름이 이 작가를 논한다거나 파헤쳐 보자가 아니라 이 작가를 (그저) 말한다 라서 다행이다.

하고 많은 작가 중에 윤고은을 택한 것은, 그녀가 나의 지기여서는 아니다. 사실 이것은 오히려 성가신 점이다. 자고로 작가 소개에 적합한 작가란 되도록 멀리 있는 작가다. 전화번호도 얼굴도 이름 석 자도 모른다면 더 좋고 살아있지 않다면 더욱 좋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산자는 말이 많다. 오늘 극찬한 작가가 내일 망언을 쏟아 내거나 말도 안 되는 작품이라도 내버린다면 낭패가 아닌가. 그러나 죽어있는 작가보다는 살아있는 작가에 대해 말하는 것이 즐겁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여러모로 살아있는 작가. 살아 있기에 앞으로가 기대되는 작가. 적어도 내일 인터넷을 도배할 망언을 쏟아 내거나 졸작을 내진 않을 작가. 소모 혹은 과소비 되지 않은 작가. 시퍼렇게 살아 있는 작가. 그것이 내가 윤고은을 선택한 이유이다.

단순한 상상력을 뛰어넘는 몽상들

물론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작가라 이름만 들어도 입이 간질간질하다는 것도 이유다. 습작기의 첫 소설부터 가장 최근의 소설까지, 발표되지 못 하였거나 발표하지 않은 것들 까지. 윤고은 작가는 내가 습작기를 포함한 전 작품을 읽어본 유일한 작가이다. 식물인간이나 뱃속의 태아를 화자로 내세우던 그녀의 습작시절 작품들은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처음부터 그녀는 개성이 뚜렷했고 상상력이 남 달랐다.

재기발랄한 상상력. 윤고은에게 가장 잘 붙어 다니는 수식어는 재기발랄한 상상력일 것이다. 그녀의 소설을 읽다보면 종종 신종직업과 신기한 뉴스들과 만나게 된다. 달이 늘어나기도 하고(『무중력증후군』), 혼자서 밥 먹는 법을 가르치는 학원이 생기기도 하고(「1인용 식탁」), 자신과 궁합이 맞는 나라를 찾아주는 검색 서비스가 등장하기도(「아이슬란드」) 한다.

어떤 것은 진짜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한다. 그런 게 어디 있어 라고 생각하고 읽다가도 어느 순간 있나? 싶어진다. 애써 사실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아 라고 억눌러 보지만 호기심은 인간의 십대 욕망 중에 하나가 아닌가? (그냥 해본 말이니 찾아보지는 말자.) 나는 종종 당장 전화를 걸어 이거 진짜야? 가짜야? 라고 물어보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하지만 그건 모던하지 못 하다. 남 몰래 인터넷으로 살짝 찾아볼 수도 있다. 그러다가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란 문구를 만나게 되면 그 사이로 혀를 쭉 내밀며 속았지! 하는 그녀를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재기발랄한 상상력인가? 일단 발랄하기만 하지는 않다. 꿈 꿀 시간조차 없어 다른 사람에게 대신 꿈을 꾸게 하는, 꿈을 꾸기보다 사기를 원하는 상상(「박현몽 철학관」)은 우울하며 무인모델에 갇혀 주민등록증을, 자신을 팔며 살아가고 뛰쳐나온 순간 로드킬 당하는 상상(「로드킬」)은 비극적이다.

무엇보다 그것은 단순한 상상이 아니다. 현실에서 출발하는 그녀의 이야기에는 상상이란 말보다는 몽상, 꿈이란 말이 더 적합할 것이다. 무엇보다 상상가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윤고은 작가는 家란 말이 붙기 합당하게 이런 몽상을 즐겨하며 아주 전문적으로 해낸다.

윤고은, 윤고은이라는 몽상가

윤고은 몽상가라고 적어본다. 맞는 말이지만 부족하다. 윤고은은 작가다. 윤고은은 사람이다와 별로 다를 바 없는 문장이다. 나는 윤고은, 000는 몽상가라고 적어두고 몽상가 앞에 적어 넣을 000을 고민해본다. 내가 제일 먼저 집어든 000은 ‘현실적’이다. 그녀는 현실적 몽상가이다. 자칫 허무맹랑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야기들이 허황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 이야기 속에 살고 있는 인물과 그들의 욕망이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그녀 소설에 상상으로 만들어진 인물은 없다. 실제적이고 평범한 샐러리맨이나 백수가 대부분이다. 작가를 백수의 분류에 넣을 수 있다면 백수의 비중은 급격하게 늘어날 것이다. 그녀는 현실적인 인물들이 나누는 농담을 소설화한다. 달이 늘어나 버리는 농담 같지 않은 우주적이고 거창한 일도 있지만. 혼자서 밥 먹는 법을 가르쳐 주는 학원이 있었으면 좋겠다, 핸드폰이 혈중 알코올농도를 자동 측정해서 얼마 이상 되면 발신을 정지시켜 줬으면 좋겠어, 같은 농담들을 그녀는 소설로 만들어 버리곤 한다. 농담 밑바닥에 숨어 있는 욕망까지도. 실제로 그녀의 소설을 읽다보면 그녀와 혹은 다른 사람과 나눴던 농담들이 그대로 들어가 있기도 하다. 이야기의 중간은 매우 창대하지만 시작은 아주 현실적인 농담이다. 지구상의 농담을 씨앗으로 삼는 한, 지금 달 즈음에 묶여 있는 그녀가 훗날 더 멀리 날아가더라도 태양계를 벗어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두 번째로 집어든 000은 ‘달리는’ 이다. 그녀는 몽상가다. 방구석에 앉아 꿈을 꾸는 몽상가가 아니라 달리며 꿈을 꾸는 몽상가다. 썩 어울리는 것 같다. 그녀의 평범한 인물들은 공통적으로 불안하고 소심하다. 희한한 것은 겁이 많기 때문에 용감하다는 것이다. 그들의 불안은 그들을 행동하게 한다. 빈대가 세상을 뒤덮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인물만이 스스로 숙주가 되어 빈대를 물리치는 영웅이 될 수 있다(「달콤한 휴가」).

그녀는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물들을 달리게 한다. 앉아서 괴로워하거나 문제가 무엇인가 생각하느라 시간을 허비하게 하지 않는다. 그들은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학원을 가기도 하고, 병원에 가기도 한다. 최소한 그들은 도망을 간다. 죽어라 달려서.

나는 현실적과 달리는에 이어 발칙한, 잠들지 않는, 타고난, 도발적, 희극적 등등 생각나는 대로 모두 000에 집어 넣어보았다. 그러나 무언가 부족하고 어떤 것은 너무 과하고 어울리지 않기도 하다.

윤고은, 000 몽상가. 나는 한참의 시간을 허비한 끝에 마침내 빈칸을 채웠다.

너무 가짜가 많아서 진짜가 있는 게 오히려 믿어지지 않는 그녀의 작품에도 진짜는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인베이더 그래픽」에 나오는 인베이더 그래픽이다. 정체불명의 작가가 붙여놓는 다는 타일 조각. 「인베이더 그래픽」에 나오는 진짜 인베이더 그래픽은 소설 주인공인 소설가가 쓰는 소설. 그러니까 허구 속에 나오는 허구라는 것이다. 허구 속 허구는 진짜였다니 뭔가 또 속은 느낌이다.

꿈과 현실을 자유롭게 엮는 힘, 그리고 입담, 현실에 단단히 박혀있는 뿌리. 윤고은이라는 몽상가의 앞뒤로는 앞으로 000과 000이 수도 없이 늘어날지 모른다. 무중력증후군의 달처럼. 그러다 어느 순간 펑하고 사라지고 하나의 달만 남을 날이 올 것이다. 윤고은이라는 세 글자. 그 과정이 그녀에게나 그것을 지켜보는 우리에게나 매우 즐거운 나날들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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