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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내가 까마귀였을 때」
방치된 상처가 꿈틀거릴 때, 정면으로 통찰하라
[165호] 2011년 05월 02일 (월) 최문애 극작가

 

상처를 정면으로 응시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고연옥 작, 임영웅 연출의 연극 「내가 까마귀였을 때」는 외면하고 싶은 상처를 대면시키려고 집요하게 안간힘을 쓴다. 연극은 13년 전 잃어버린 아이가 집으로 돌아오면서 시작된다. 가족들은 잃어버린 아이를 찾았다는 기쁨과 설렘에 들뜬다. 그러나 13년만의 상봉은 오롯이 환희로만 채워지진 않는다. 첫 만남부터 그들 사이에는 왠지 모를 묘한 긴장과 불편한 기운이 흐른다.

   
  △ 연극「내가 까마귀였을 때」의 무대. 13년 전에 잃어버렸던 막내 아들이 돌아온 뒤 가족의 숨겨진 비밀이 드러나는 장면.

아이는 가족을 잃은 후 거리에서 자랐다. 얼마 동안은 고아원에 있었지만, 아이에겐 거리가 집이고 가족이었다. 먹을 것이 없어 며칠을 굶었고, 남의 것을 훔치는 일도 다반사였다. ‘까마귀’라고 불리며 거리를 배회했다. 그 사이 소음이 심한 공장 2층에 세 들어 살던 가족들은 열심히 돈을 모아 번듯한 2층 집으로 이사를 했다. 전교 1등을 놓친 적 없는 누나는 명문대 법대생이고, 공부는 잘하지 못했지만 심성만은 곧은 형은 동생을 찾을 생각으로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가난한 사람들의 집을 지어주었다. 아이가 없는 집은 모든 것이 평온했다. 그런 형과 누나, 부모님을 자랑스럽다고 말하던 아이는 돌연 자기가 이 모든 것을 망쳐버릴 것이라고 말한다.

아이는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동물 같다. 온순하게 있다가도 돌변하여 가족들을 향해 위선자라고 소리를 지르고, 갑자기 어디선가 불쑥 튀어나와 이죽거리며 사랑을 증명해보라고 겁을 준다. 아이는 평온한 일상을 깨뜨리고 가족들을 두려움으로 몰아넣는다. 아이의 행동은 일견 가족들에 대한 부러움, 시기심 혹은 자격지심으로 보이지만 곧 그 이유가 드러나게 된다. 아이는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버려졌던 것이다.

부모는 아이가 너무 어렸기 때문에 기억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다섯 살이었던 아이는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누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가 더욱 불편했다. 아무것도 몰랐던 형은 부모를 향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냐며 참담해한다. 결국 가족들은 몇 년간 처박아 두었던 아픈 상처를 정면으로 바라보게 된다. 갑자기 베인 상처처럼, 뜬금없이 든 멍처럼 모두를 아프게 만들었던 아이는 바로 몇 년 전 스스로 낸 상처였던 것이다.

사실주의적인 무대, TV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여러 번 본 것 같은 스토리, 그리고 방금 관객석에 앉아 있다 나간 것 같은 평범하고 일상적인 모습의 배우들. 이 연극은 언뜻 사실주의 연극 같아 보인다. 그러나 작품은 사실적이라기보다 상징적이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는 가족사의 아픔이기도 하지만, 13년 전 IMF 극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했던 우리 사회의 소중한 그 무엇이기도 하다. 또 경제발전을, 사회민주화를 이룬다는 그럴싸한 명분 아래 희생된 땀과 눈물과 귀중한 목숨이기도 하다.

연극 「내가 까마귀였을 때」는 무엇보다 작가의 집요한 주제의식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거실이라는 평범한 무대, 어떤 테크닉도 가하지 않은 최소한의 연출에도 불구하고 이 연극이 빛날 수 있는 것은 그 덕이다.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곪을 대로 곪아 악취 나는 상처(막내)가 아무도 건드려주지 않아 스스로 몸부림치는 부분들이다. 가족들 모두 그 상처를 외면하기 때문에 작가는 어떤 사건을 통해서도 그 상처를 드러낼 수가 없다. 따라서 작가는 오로지 아이 내면의 미묘한 움직임으로 그 상처를 보여준다. 어쩌면 표면적인 개연성이 보이지 않아 모놀로그로 보이기 쉬운 그 부분을 배우가 잘 표현해 주었다. 막내 역을 맡은 윤정욱은 신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감정 표현이 풍부하고 소름끼치는 연기를 보여준다.

그렇다고 해서 아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는 아이를 버렸다는 진실을 아프게 털어놓으며 무릎을 꿇은 후 잊고 있던 상처를 직시한 가족들, 그리고 아이는 너무나 쉽게 화해하고 희망에 차 현실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 상처가 진실을 토로한다고 해서, 단순히 어루만진다고 해서 그렇게 단순하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가? 인정하기까지 13년이나 걸린 상처가 말이다.

현실을 예리하게 포착하는 것도 연극의 역할이지만, 앞으로의 비전을 어렴풋하게나마 제시하는 것도 연극의 중요한 역할이다. 켜켜히 쌓아올린 작가의 주제의식을 끝까지 몰아붙여서,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할 수 있었다면 조금 더 극의 완성도가 높아지지 않았을까 싶다.

TV, 인터넷, 스마트폰 등 간편해진 매체와 가볍고 발랄한 이야기가 넘쳐나는 시대에 여전히 연극이 존재해야 한다면 이렇게 좀 더 멀리서, 좀 더 깊이 통찰하고 묵직한 메시지를 담아내는 것이 연극의 역할 중 하나일 거란 생각이 든다. 너무 빨리 변하는 시대의 속도를 따라잡기에 연극은 너무나 아날로그적이지만 온전한 한 걸음을 내딛기 위해서는 대면해야 하는 작품 속 ‘상처’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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