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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
에단 와터스, 『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 김한의 옮김, 아카이브, 2011
[165호] 2011년 05월 02일 (월) 배재형 영상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 석사 수료

 

   
 
 
자신의 행동이 나쁜 결과로 이어졌을 때, 우리들이 하는 가장 흔한 변명은 ‘의도’에 관한 것이다. 자신의 의도는 선한 것이고, 선한 의도에서 시작된 일이기에 결과만을 놓고 판단하지 말라고, 우리는 말한다. 하지만 선한 의도는 때때로 결과까지 조작하기도 한다. 부정적인 측면은 축소하거나 은폐하고 긍정적인 측면은 부풀리고 과장한다. 이런 조작은 선한 의도 때문에 면죄부를 부여받기도 한다. 이는 우리 역사를 조금만 들춰봐도 쉽게 발견된다. 그러나 결과를 조작한 ‘선의’를 과연 ‘선의’라 부를 수 있는가? 작가는 바로 이 부분을 건드린다.

거의 모든 의료사고에서 피해자 측은 가해자, 즉 병원 혹은 의사가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데 전력한다. 병원이나 의사의 의도 자체를 문제 삼는 경우는 몹시 드물다. 의사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존재한다는, 의학이 가지는 기본 전제는 거의 신성불가침의 영역처럼 흔들리는 법이 없다.

의학은 다른 어떤 학문보다 위험하지만, 의학이 지니는 고귀함(인간의 생명을 다룬다는 점에서 비롯하는)이 양날의 검처럼 그 반대편을 지탱해주고 있기에, 다른 어떤 학문보다 위험성에서 관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고귀함의 정체를 총제적으로 ‘선의’라고 칭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의학의 모든 세부분야 중에서도 과학적 실증 수준이 가장 낮은 정신의학 부분에 있어서 앞서 말한 ‘선의‘는 매우 교묘한 합리화 수단으로 작용한다. 인간의 정신을 단순화 할 수 없다는 전제에도 불구하고, 보다 빠르고 효과적으로 환자를 치료하겠다는 미국적 효율성과 합리성‘으로 무장된 선의가, 하나로 통합될 수 없는 정신질환 환자의 증세를 규격화하고 세분화해서 하나의 거대한 표를 만들고, 뇌의 화학작용을 통해 인간의 모든 감정까지 과학적으로 규명하려 한다. 그리고 이에 따른-상담혹은 약물을 통한-치료법은 그 실효성 논란 속에서도 또다시 ’선의‘라는 미명하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계 전체로 퍼져나가고 있다.

저자는 네 가지 사례를 통해 이런 폭력적인 서양식 정신의학의 전파가 가져올 수 있는 위험을 지적한다. 홍콩의 거식증, 쓰나미 이후 외상후스트레스장애, 탄자니아 잔지바르의 정신분열병, 일본에서 다국적 제약회사가 벌인 우울증 메가마케팅이 그것이다.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서양식 정신의학을 대하는, 개발도상국 혹은 정신의학 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문화 내부의 수용자들이 가지는 태도다.

세계의 모든 문화는 정신적 안전장치가 존재한다. 그리고 문화적 안전장치는 외부문화의 침입과 그에 따른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직면한 한 문화의 구성원들에게 일종의 ‘쿠션’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일단 자본주의와 함께, 서구식 생활 방식이 정착되어 삶의 형태 자체가 변하기 시작하면, 수용자들은 그 쿠션을 제 발로 걷어차기 시작한다. 다시 말해 ‘선의’라는 고귀한 가치 아래 서양식 정신의료체계가 한 문화 위를 불도저를 매단 폭주기관차처럼 내달릴 때, 그 폭주기관차의 연료를 공급하는 것은 다국적 제약회사와 그와 손잡은 학자들뿐만 아니라, 놀랍게도 수용자들 자신이라는 것이다.

수용자들은 정신의학을 마치 다른 과학 기술처럼, 자신들이 모르는 복잡하고 어려운 원리로 이루어진, 그래서 훨씬 더 합리적이고 발달된 기술의 총체로 여긴다. 게다가 대가를 바라지 않는 그들의 ‘선의’에 감동받는다. 그들은 친절하고 자상하다. 마치 ‘착한 선교사’들처럼 수용자들 깊숙하게 들어와 미신, 인습 타파 등을 이유로 ‘쿠션’을 빼내도록 종용한다. 그리고 쿠션을 대신하는 건 약과 철저히 형식적인 상담이다.

오늘날 서구화된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는 중독자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크게는 돈에, 소소하게는 그들의 취미에 혹은 불법적인 무언가에 우리는 중독되어 있다. 그리고 그런 중독을 부추기는 건 시스템 자체다. 우리는 시스템을 붕괴시킬 의지도 이유도 없다. 다만 시스템이 제공하는 편리에 만족하며, 중독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눈이 멀어 있다. ‘선의’ 뒤에 감춰진 위험성 혹은 무엇이 진정한 ‘선’인지 알지 못한다. 권선징악, 그 흔한 말이, ‘선’이 ‘악’을 이기는 세상이 진정 두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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