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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태엽 오렌지
앤서니 버지스, 『시계태엽 오렌지』, 박시영 옮김, 민음사, 2005
[165호] 2011년 05월 02일 (월) 유인혁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스탠리 큐브릭은 원작이 따로 있는 영화를 많이 만들었습니다. 『롤리타』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샤이닝』, 『아이즈 와이드 셧』 등은 모두 소설을 영화로 각색한 작업이었지요. 이는 단순히 스탠리 큐브릭이 독서를 좋아한다거나, 아니면 소설에서 영화적 영감을 많이 얻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스탠리 큐브릭 영화의 특징 중 하나는 원작의 느낌을 심각할 정도로 손상시킨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를테면 스티븐 킹은 『샤이닝』의 각색이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은 나머지, 1997년에 TV 드라마 「샤이닝」에서는 직접 각본 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큐브릭의 독특한 스타일은 저 작업들을 ‘소설의 영화화’가 아니라 그냥 ‘큐브릭의 영화’로 만들어버립니다. 큐브릭은 언제나 원작과는 동떨어진 세계를 만드는, 전복적인 독서를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앤서니 버지스의 『시계태엽 오렌지』(앤서니 버지스, 박시영 옮김, 『시계태엽 오렌지』, 민음사, 2005)를 영화로 번안한 스탠리 큐브릭의 1971년도 작품 『시계태엽 오렌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앤서니 버지스의 『시계태엽 오렌지』는 아이러니 기법을 쓰고 있는 교훈극입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알렉스는 패거리들과 함께 강간, 폭행, 강도 등을 일삼는 불량청소년입니다. 알렉스는 살인을 저지르고 17년 형을 언도받고 복역하던 중, 단 2주 만에 죄인을 교화시켜 사회로 내보내준다는 ‘루도비코 프로그램’에 자원해서 치료받게 됩니다.

버지스의 이야기는 도덕적인 주제에 충실합니다. 그는 두개의 폭력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어요. 우선 알렉스와 같은 악동들이 일으키는 끔찍한 악행들. 또 그것을 통제하는 권력의 폭력입니다. 『시계태엽 오렌지』에서 두 번째 폭력은 오히려 알렉스의 악행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게 할 정도로 압도적인 크기로 다가오게 됩니다. 알렉스의 악행이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폭력이었다면 두 번째 것은 아예 인간을 지워버리는 폭력이기 때문이지요.

“현대 사회의 두 희생자”라는 대사는 버지스가 어떤 주제를 염두에 두고 있었나를 확실히 드러냅니다. 두 폭력 모두 “이 땅의 질서”가 사라져버린 현대 사회의 사생아 같은 존재라는 것인데, 이러한 인식은 어느 순간엔가 우리를 거대한 혼돈 속으로 집어던집니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악을 행하고, 그 악에 대한 규제 또한 악이라면 대체 이 세상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 걸까요? 여기서 버지스는 오래된 신학적인 입장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악 대신 선을 택하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옹호해야한다는 것이죠. 그는 그 믿음을 소설 속에서 구현시키는데, 루드비코 프로그램에서 치유된 알렉스는 어느 순간엔가 자신의 철없음을 깨닫고 건실한 사회의 시민이 될 것을 다짐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큐브릭은 어떨까요? 큐브릭이 묘사하는 세계는 앤서니 버지스의 소설과 미묘하게 다릅니다. 이야기 자체를 가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소설에서 말하지 않은 부분을 과장하거나 또는 생략하는 방식으로 조금씩 『시계태엽 오렌지』를 바꿔가지요. 우선 영화 속의 알렉스는 더 악마에 가깝습니다. 의도적으로 성기를 강조한 가면과 의상은 원작에서 묘사된 알렉스의 모습과 많이 다르지요. 어딘지 모르게 현실과 괴리감이 느껴지는 알렉스의 부모님이나 성적인 테마로 꾸며진 ‘고양이 할머니’의 집, 과장스러운 교도관의 행동, 루도비코 프로그램의 괴기스러운 구속구들은 굉장히 큐브릭적인 소품들입니다.

큐브릭의 「시계태엽 오렌지」는 루드비코 프로그램에서 치유된 알렉스가 사람들의 박수를 받으며 늘씬한 미녀와 섹스를 벌이는 환상을 보여주며 끝을 맺습니다. 어떤 도덕적인 결말도, 전망도 없어요. 알렉스는 풀려났고 다시 악마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때 기이한 어떤 장소에 도착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바로 큐브릭의 세계이지요. 여기서 「시계태엽 오렌지」는 원작이 가지고 있었던 도덕적인 비전에서 해방되어버립니다. 그 결과 남는 것은 두 가지 폭력이 모두 공존하고 있는 이 끔찍하게 무서운 세상 자체이지요. 악마는 풀려났고, 악마를 용서해준 것은 권력입니다. 큐브릭은 원작이 한 발짝 물러섰던 바로 그 지점을 주시합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로 회귀하거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대신, 큐브릭은 그저 이 기괴한 세계를 냉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세계는 버지스와는 전혀 다릅니다. 이는 단순히 영화와 소설이라는 매체의 차이가 불러일으킨 결과가 아니에요. 큐브릭은 원작이 가지고 있지만 눈치 채지 못한, 혹은 일부러 외면한 가능성을 발견해내고 그것을 과장시킵니다. 이렇게 큐브릭은 도덕적이고 보수적인 소설을 거의 무정부주의적인 영화로 다시 만들어낸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누구의 비전이 더 옳은 것이었는지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큐브릭의 이 반항적인 독서가 「시계태엽 오렌지」를, 나아가 그의 필모그래피를 더없이 생산적으로 만들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두 개의 『시계태엽 오렌지』를 함께 보고 있노라면 스탠리 큐브릭이 열심히 주석을 달며 독서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스탠리 큐브릭은, 독서는 일방통행적인 것이 아니며 가끔은 철저한 파괴를 통해서 더없이 생산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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