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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피해도 괜찮다고 우리를 다독이는 작가, 장 자크 상페
갸냘픈 선과 희미한 색채로 독자의 마음을 두드리는 작가
[165호] 2011년 05월 02일 (월) 유계영 시인

 

똑똑한 사람이 참 많은 환경 속에 살다보니 나 같은 멍청이가 어디 또 있나 싶은 날만 많다. 어물어물 말하고 자신 없이 말꼬리를 흐리는 내게 이제는 좀 어른스런 화법도 익혀야 하지 않겠냐고 충고해 준 사람도 한 둘 아닌데. 나는 빅풋 쯤 되어 날렵한 발을 가진 사람들의 감시를 피해 산 속으로, 산 속으로 도망이나 다녀야 할 것 같다. 아둔하게 큰 발도 부끄러우니 발 보이지 않을 만큼 빨리 달려서.

소심한 사람과 가까이 지내는 일이 위로가 된다. 상사가 한마디 건넬 때마다 겨드랑이가 땀으로 흠뻑 젖는다고 쩔쩔매는 회사원, 아까 했던 농담 제발 마음에 담아 두지 말아달라고 울면서 문자 메시지를 보내오는 소꿉친구, 당사자는 눈치 채지도 못했는데 말이 심했나 걱정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불안정한 내부를 가진 사람들의 부끄러운 표정 같은 것이 긴장한 수족을 따뜻하게 데워줄 때도 있지 않나. 오래오래 글 적으며 살고 싶은 나는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는 눈을 가지지 못해서 자주 불안하고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 때, 그들의 심약함이 스스로 머릴 쥐어박는 내 손을 잡는다. 너만 얻어맞고 있는 게 아니야, 또 빨개진 내 얼굴 좀 봐!

말하자면 삽화가로 분류할 수 있는 장자크 상페를 이곳에 다루려는 건 그가 삽화 뿐 아니라 글까지 함께 써낸 사람이기 때문은 아니다. 그의 또렷하지 않은 선과 색 속에 담긴 이야기가 한 편의 시보다 사소하지만은 않아서다. 장자크 상페의 글과 삽화 속에는 잘지만 오래 따라붙는 울림이, 자극적이지 않아도 자꾸만 곁눈질 하게 되는 이야기가 있다.

   
   △ 『꼬마 니콜라』의 삽화
 
장자크 상페의 이야기 속 몇몇 주인공들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이렇다. 이유 없이 얼굴이 빨개지는 홍당무 병에 걸린 마르슬랭, 바이올린만 켜면 재채기가 터지는 바이올린 연주가 르네 (『얼굴 빨개지는 아이』), 자전거에 정통해 자전거포를 운영하고 있지만 정작 탈 줄은 모르는 따뷔랭, 결정적인 순간은 늘 놓치고 마는 사진사 피구뉴(『라울 따뷔랭』). 얼굴이 빨개지고 재채기를 하는 천성 때문에, 혹은 자전거를 타지 못하고 절정을 포착하지 못하는 무능 때문에 그들은 대단한 좌절감이나 절망적 사건 없이도 늘 상처 받는다. 갑자기 의기소침해져 고개를 뚝 떨어뜨려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인물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이 불행하다는 인식도 특별히 가져 본 적 없다. 특이나 비밀을 가졌다는 것이 다소 불편할 뿐. 엄지발가락이 남들보다 조금 더 긴 사람이나, 하품 할 때 왼쪽 눈에서만 눈물이 나오는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빨개진 얼굴을 고치려 성격 개조에 발 벗고 나서지도, 재채기를 참고 재능을 유감없이 펼치려 코를 틀어막지도 않는다. 멀리서도 서로를 알아볼 수 있으니 때로는 좋을 때도 있다고 생각하는 경지까지 이른다. 낙천주의자들이 아니다. 좀처럼 티나게 불퉁거리는 일 없이 오래 참아왔기 때문이다. 근엄하고 냉정한 타자의 기준 앞에 언제나 부끄러워질 수밖에 없는 무방비 상태로 살아왔기 때문일 거다. 태생부터 부끄럼과 한 몸, 그게 뭐 어제 오늘 일만은 아니니까.

재즈처럼 변주되는 선과 색의 흔들림

장자크 상페는 재즈 음악가들의 탈형식적 리듬에 푹 빠져 유년시절을 보냈다. 악단의 재즈 연주가들을 자유로운 선으로 옮겨 놓는 것으로 데생을 처음 배운 거다. 이러한 이력 탓인지 그의 그림에는 재즈적인 설득력이 있다. 선이나 색채 같은 가시적 요소들이 과감하게 생략되고 변주되고 흔들리지만, 그것이 오히려 더 많은 정서를 압축한다. 글은 또 어떤가. 전문적인 지식, 하물며 교양을 지운 상태로도 이해할 수 있는 생래적인 리듬을 품고 있다. 논법에 기댄 전개가 아니며 일정한 구조를 바탕에 깔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읽는 이들은 학습된 것이 아닌 자기 본연의 정서를 얻어 간다. 나도 이들처럼 매력적인 시절이 있었고 지금도 그러한 중이라고, 총천연의 소심증을 자랑스레 드러낼 수 있는 거다.

상상력에 기대 작품에 진실함을 더해

낯선 사람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을 때, 나는 상대가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어느 시절의 이야기를 가장 많이 빌려 오는 지 잘 본다. 가장 잦은 소재가 되는 시절이 자신의 뿌리에 가장 가까우며, 스스로 가장 매혹적이었다고 여기는 시절인 경우가 많다. 내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시절, 지금의 자아를 형성하게 된 시절의 이야기를 꺼내어 자신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 시절은 대개 유년기가 많을 수밖에 없는데, 장자크 상페의 이야기 역시 유년의 아이들을 자주 소재로 삼고 있다. 그도 재즈 연주가들의 날 것 같은 리듬에 매혹됐던 유년의 정서를 붙잡고 있다.

학습 이전의 세계에 끝없는 향수를 품고 있는, 과중한 학습에 지친 이들에게 장자크 상페의 이야기는 정연한 설명이 없기에 더 반갑다. 그는 실제로 상상력에 기대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데, 첼로에 다섯 개의 현을 그린다거나 색소폰의 리드를 거꾸로 그리는 것처럼 배운 것이 아닌, 상상한 것을 더 진실한 것으로 여기는 태도 때문이다. 우리는 그로부터 구름을 노랗게 나무 잎사귀를 빨갛게 색칠했던 매혹적 유년기를 만난다. 엄정한 기준을 들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내 말이 틀렸나? 눈치를 살피며 두리번거리지 않아도 괜찮아진다. 자기논리의 완벽함을 자신할 수 없는 미숙한 외면이 때로는 재미있는 내면을 만든다는 썩 그럴듯한 위로다.

유년의 꼬마를 벗어난 이들도 마찬가지다. 『속 깊은 이성친구』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외롭고, 대인관계에서 불편함이나 괴로움을 겪는다. 성숙한 겉모습을 가지게 되었어도 여전히 타인을 대하는 것이 너무 세심하여 곤혹스러운, 냉정한 세상 평가에 의하면 소심해서 답답하기 짝 없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장자크 상페는 그들의 모습에서 고통스러움을 끄집어 내지 않는다. 무뚝뚝하거나 미소를 희미하게 머금은 표정 속에서, 하지 못하고 있는 이야기만 슬쩍 내밀어 놓는 거다. 사려 깊음으로 생략된 말들인데 소심해서 못한 말이라고 서둘러 생각하지 말자.

   
  △ 작가 장자크 상페
   
장자크 상페는 중학교 시절 퇴학을 당하고 포도주 중개인 사무실에서 심부름꾼으로 일했다. 가난 때문에 징집 연령도 되기 전에 자원입대 했다. 제대 후, 이것저것 해보지 않은 일이 없었고 무일푼으로 노숙에 가까운 생활을 이어 나갔다. 그러나 1960년 『꼬마 니콜라』로 사람들의 주목을 끈 뒤 연이은 성공 속에도 그는 스스로를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말한다. 여전히 갈팡질팡하고 집단적인 삶을 기피하며, 세상과 동떨어진 사람. 너무 쉽게 상처 받기 때문에 혼자서만 일하는 주변인. 하지만 쉽게 상처 받을 줄 아는 사람이 다른 이들의 상처를 이해할 줄 아는 세밀한 심안을 갖는 것 아닌가. 장자크 상페는 91년 한 인터뷰에서 이미 말한 바 있다. “나는 인간관계의 경박함에 종종 놀라곤 한다. 나는 온갖 일로 근심을 하고, 뭔가를 잘못 안 탓에 공연한 걱정을 하기도 일쑤인 그런 부류에 속한다. 나는 사람들의 수줍은 태도를 대할 때마다 아주 깊은 인상을 받는다. 특히 진정으로 고통을 겪어 본 사람들의 수줍음이 인상적이다.” 부끄럼 타는 사람들을 만만하게 보는 것이 아니라 경외심을 갖는 것, 실컷 부끄러워해도 괜찮다는 일종의 허락이 떨어진 셈이다.

타인의 상처 이해하는 세밀한 심안

미리 눈치 챈 사실대로 장자크 상페의 이야기 속에 담긴 사람들은 소심해서 고통 받는 과정 속에 있고, 고통 끝에 부끄러운 과정 속에 있다. 자신을 위한 투쟁을 하지 못하는 성질을 가진, 유약한 이들이다. 부끄러운 ‘지난날’을 회고하는 게 아니라 아직 부끄럼 타는 중인 사람들, 아직 자신의 이야기는 입 밖에 꺼내놓은 적이 없는 사람들. 장자크 상페의 시선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초의 말이다. 스스로 들려주는 것도 아닌, 장자크 상페에 의해 그려지고 보는 이들에 의해 들춰지는 속 이야기. 잔인해질 수밖에 없더라도 우리는 그들을 빌어 위안을 얻을 수 있다.

소심한 사람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좀 치사스러운 이유로 소심분자를 알아보는 재주를 기르게 됐는데, 장자크 상페의 글과 삽화를 알아볼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냘픈 선과 희미한 색채, 분명하진 않지만 조금씩 수줍은 표정들이 오늘도 틀린 말을 뱉을까봐 입을 꾹 다물고 지낼 수밖에 없었던 내게 첫 말을 트게 해 준다. 같은 처지끼리니까 괜찮지 않을까, 어차피 나도 소심한 축에 속하는 인간이라 그들을 알아 본 셈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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