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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시간의 경계에 서 있습니다
『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 마지 피어시, 변용관 옮김, 민음사, 2010
[163호] 2010년 11월 15일 (월) 복도훈 문학평론가

“당신들은 정말로 위험에 처해 있나요?”
“그래요. 당신이 우릴 저버릴지도 몰라요.”
“내가요? 어떻게요?”
“당신 시대의 당신 말이에요. 한 개인으로서 당신이 우릴 이해하는 데 실패할 수도 있고, 당신 자신의 인생과 시간 속에서 투쟁하는 데 실패할 수도 있겠죠. 당신 시대의 당신이 우리와 함께 투쟁하는 데 실패할지도 몰라요. 존재하기 위해서, 존재 속에 계속 남기 위해서 우리는 싸워야 하고 장차 다가올 미래를 얻어야 합니다. 우리가 당신과 접속한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미국의 페미니즘작가이자 행동하는 지식인인 마지 피어시의『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는 1976년에 발표된 이후로 지금까지 미국 페미니즘 SF의 손꼽히는 걸작으로 평가되는 작품입니다. 주인공 코니는 멕시코 계 이주혼혈인으로 남편과 이혼하고 아이마저 빼앗긴데다가 돈도 변변한 직장도 없는 불행한 여자입니다.

그녀는 오빠와 조카딸 등의 계략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했으며, 의사와 간호사로부터 무자비한 실험용 생체인간 취급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코니는 어느 날부터인가 누군가가 자신에게 정체불명의 신호를 보내고 있음을 알게 되며, 단순히 환각과 환청만은 아니었던 그 신호의 정체가 2137년이라는 먼 미래로부터 온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때부터『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는 SF의 면모를 띠게 됩니다.

매터포이세트라는 미래의 한 도시에서 고도의 통신수단으로 코니에게 ‘접속’하면서 접근한 사람은 루시엔테라는 미래인이었습니다. <터미네이터> 같은 영화를 생각해보셔도 좋습니다. 루시엔테의 인도로 코니는 미래를 방문해 루시엔테와 동료들이 사는 매터포이세트가 평등한 유토피아임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루시엔테와 동료들은 코니, 그 누구도 돌보지 않을, 세상이 완전히 등을 돌린 코니에게 접속을 시도했을까요? 제가 인용한 소설의 대목은 바로 이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사실 코니가 본 매터포이세트는 미래의 한쪽 면이었습니다. 미래의 또다른 면에는 노골적인 착취와 계급차별이 횡횡하는 전체주의사회가 있었던 것이고 이 둘은 전쟁중이었죠. 만일 코니가 있는 현재에서 코니를 포함한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 부당한 권력과 투쟁하지 않는다면, 매터포이세트의 미래는 사라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매터포이세트는 놔둔다고 저절로 올 미래가 아니라, 코니와 같은 억압받는 약자들이 함께 싸워서 쟁취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미래인 것입니다. 아마 루시엔테와 그녀의 동료들은 코니가 생전에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을 먼 미래의 후손이었을 것입니다. 지금 당장 일어나는 착취와 권력의 횡포와 맞서 싸우지 않고 그저 한탄하거나 체념하거나 냉소한다면, 이 소설은 다가올 미래가 매터포이세트가 아닌, 그 미래를 위협하는 전체주의 사회임을 심오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미래는 앞으로 올 시간이 아니라,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 현재입니다. 만일의 경우 실패하더라도 최선을 다해 싸운다면 우리들이 가졌던 용기, 인내심, 서로를 위하는 마음은 우리 후손의 심장과 뇌, 손과 발에 본능으로, 감각으로 전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겨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후손을 존재하도록 할 수 있을 테니까요. 문득, 파헤쳐지는 강을 떠올렸습니다.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그리고 세계문학과 한국문학에서 강은 메마른 적이 한 번도 없는 시간에 대한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강은 놔둔다고 저절로 흐르는 자연이 더이상 아닌 것 같습니다. 강을 파괴하고 강을 파괴하는 사람도 파괴되고 마는 이 지옥마저 돈벌이수단으로 기꺼워하는 불한당들은 메터포이세트의 미래와 그 미래의 후손마저 모조리 사라지도록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제 강을 흐르게 하는 것은 저들 몫이 아니라, 우리의 몫이어야 합니다. 강을 보면서 시간을 생각합니다. 강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시간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지금, 모두, 철저히 파괴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래의 후손들이 존재하기 위해서, 그 후손들이 우리를 찾아올 수고를 덜 수 있도록 지금, 이곳에서, 싸워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시간의 경계에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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