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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후반기 한국문학- 문화를 말하는 자리
『전쟁하는 신민, 식민지의 국민문화 : 식민지 말 조선의 담론과 표상』
[163호] 2010년 11월 15일 (월) 오태영 국어국문학과 강사

식민지 후반기(1937~1945) 조선문학과 조선문화를 ‘말’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그것들을 이해 가능한 대상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요원한 일이다. 과거 민족주의의 그늘 아래 식민지 후반기는 ‘암흑기’로 봉인되었고, 그 시기의 문학과 문화는 망각되어야 마땅할 대상인 것처럼 여겨졌다. 이후 친일/반일의 경직된 이분법적 도식 아래 식민지 후반기 문학과 문화에 대한 학문적 접근이 이루어지다가 1990년대 이후 소위 ‘저항’과 ‘협력’이라는 보다 유연하지만, 결국 친일/반일의 변종에 다르지 않는 인식틀―친일과 반일은 어떤 수식어도 용납하지 않는 반면, 저항과 협력은 ‘협력을 위장한 저항’, ‘저항 속의 협력’ 등 보다 유연한 관점과 태도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을 통해 이 시기 문학과 문화에 대한 탐색이 이루어져왔다. 2000년대 이후 저항과 협력이라는 인식틀을 넘어 식민지 후반기 문학과 문화를 이해하려는 다양한 관점과 방법론이 제기되어왔고, 그 연구 성과 역시 학계에 활발하게 제출되고 있다. 여기에서 소개하는 『전쟁하는 신민, 식민지의 국민문화』 역시 그러한 연구 성과 중 하나이다.

  편자에 의하면, 이 책은 “한국학 또는 동아시아학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배경의 연구자들”―한국, 일본, 미국, 캐나다 등 학문적 영토를 달리하는 연구자들―의 연구 성과를 집적하고 있다. 따라서 “식민지 말이라는 시간, 식민지 조선의 작가들이 택한 길과 앎에 대해 각 연구자가 취하는 태도나 평가가 한결 같을 수 없”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뿐만 아니라 논의의 수준 및 문제의식, 방법론 등의 측면에서 그 편폭이 매우 클 뿐만 아니라, 논의의 주제 및 대상 역시 다채롭다. 이런 이유로 이 책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이 책의 구성을 통해 그 대강을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제1부 ‘전시(戰時) 지적 협력의 논리 구조’에서는 식민지 후반기 제국-식민지 체제의 변동 속에서 조선인 작가나 비평가들의 조선문학(문화)을 새롭게 재정립하려는 움직임과 그러한 과정 속에 나타난 정치적 (무)의식을 고구하였고, 제2부 ‘세계·제국·로컬―문화의 위계와 고통의 네트워크’에서는 식민지 조선(로컬)-제국 일본-세계의 역학적 관계 속에서 ‘번역’과 ‘재현’의 문제를 중심으로 당시 조선문학의 위상(topology)에 대해 논의하였다. 한편, 제3부 ‘시학, 정치, 자본―국민문학의 이념과 시장’에서는 국민문학으로 재편되어가는 조선문학의 자장 안에서 ‘일본어 시(詩)’, ‘전향(轉向)’, ‘조선문단’의 사정을 세밀하게 탐색하였고, 제4부 ‘미디어, 표상, 국민문화’에서는 영화와 연극 미디어에 표상된 국민문화의 의미를 되물었다.

  물론, 어떤 측면에서 이 책이 보여주고 있는 식민지 후반기 한국문학과 문화에 대한 연구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 책의 집필진들과 연구 성과를 공유하고 있는 국내외 학계의 연구자들, 그리고 그 후속 세대 연구자들에 의해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는 기왕의 논의들은 보완되거나 심화되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이 책의 문제의식을 분유(分有)하는 한편, 동아시아적 관점에서 중국이나 타이완 연구자들과의 학문적 교류를 통해 식민지시기 문학이나 문화에 대한 다각적인 연구가 시도되고 있다. 이 책의 편자들이 밝힌 바, “제도(帝都)이자 적도(敵都)인 도쿄를 통과해 또 다른 세계의 수도들에 진입하려 했던 한 시기의 열망과 고통”으로 인해 식민지 후반기에 대한 연구가 ‘위태’로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 위태로움은 여전히 중심에 대한 동경(憧憬)의 회로를 내면화한 자의 그것일 수 있다. 따라서 ‘주변부’의 동아시아적 관점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식민지 후반기의 문학과 문화를 바라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식민지 후반기’는 근대 한국에서 심대한 변화를 낳았던 사건들의 시․공간이었다. 세계 질서의 재편, 동아시아 지역질서의 재구축, 제국-식민지 체제의 변동 속에서 조선인, 조선문화, 조선문학, 조선어 등은 그 위상을 새롭게 재정립할 것을 요청받았다. 서양의 몰락과 동양의 부상, 제국의 팽창과 침략 전쟁의 확전 속에서 제국의 지방(local)이자 대동아공영권의 한 지역(region)이었던 ‘조선(朝鮮)’, 그리고 그러한 조선이라는 영토 위에 서 있었던 조선인, 조선문화, 조선문학, 조선어 등은 끊임없이 유동하는 자신의 위상을 재구축하고 재정립하기 위해 분투했다. 『전쟁하는 신민, 식민지의 국민문화』에 묶인 연구 성과들은 그러한 분투의 과정을 핍진하게 추적한 결과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집필진들은 그 추적의 지난함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식민지 후반기 한국문학/문화를 말하는 ‘자리’는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해방과 탈식민, 냉전과 분단의 시공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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