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19.5.20 월 18:24
인기검색어 : 등록금 인상, 총장선출,
신문사소개 | 호수별 기사보기
> 뉴스 > 문화 > 클로즈업
     
이상 탄생 100주년 기념
비밀과 거짓말
[162호] 2010년 10월 04일 (월) 허병식 동국대 한국문학연구소 전임연구원

 

<사진설명> 이상의 시 '오감도'

“사람이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이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다.”(「실화」)라고 설파했던 이상의 삶과 문학은 실로 온갖 비밀들로 가득차 있다. 이상은 자신의 작품 「오감도」가 신문에 연재되자 쏟아진 독자들의 비난에 절망했다. ‘절망은 기교를 낳고 기교는 다시 절망을 낳아’ 그는 자신의 작품 속에 온갖 기호들과 해독되지 않는 언어들로 가득찬 비밀을 담아 사람들 앞에 내놓았다. 그의 유서와도 같은 작품 「종생기」가 “천하 눈 있는 선비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해 놓기를 애틋이 바라는 일념 아래” 쓰여진 작품이라 밝히고 있는 것은 당대의 독자대중을 향한 그의 ‘비밀’어린 고백이다. 스스로 ‘문학의 빈민굴을 교란시키고저’ 내보인다고 밝혔던 그의 작품들의 무수한 기교들은 이후 한국 근대문학의 독자와 연구자들을 미로탐색가나 암호해독자의 번민 속에 빠지게 만들었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의 품을 떠나 백부의 집에 양자로 들어간 이상의 체험은 가문과 혈통에 뿌리내린 삶의 양식이 잔혹한 거짓말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하여 「종생기」에서 이상은 이렇게 썼다. “난마(亂麻)와 같이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얼마간 비극적인 자기탐구. 이러한 흙발 같은 남루한 주제는 문벌(門閥)이 버젓한 나로서 채택할 신세가 아니거니와 나는 태서(泰西)의 에티켓으로 차 한 잔을 마실 적의 포즈에 대해서도 세심하고 세심한 용의가 필요하다. 휘파람 한 번을 분다 치더라도 내 극비랑(極秘裏)에 정선 은닉된 절차를 온고하여야만 한다.” ‘문벌이 버젓한 나’라는 스스로의 운명에 대한 냉소어린 폭로 뒤에 나타나는 세상을 향한 ‘세심한 용의’라는 것은 그가 근대를 대면하며 위악과 절망 속에 채택한 거짓말로서의 자기구성과 작품제작의 양식을 증언한다. 그의 비밀들이 숨겨진 주머니(극비랑)이 얼마나 깊은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그곳으로부터 조금씩 꺼내보인 「오감도」를 포함한 시편들과 「날개」와 「종생기」를 포함한 소설을 통한 자기 은폐와 자기 폭로의 모더니즘이 이후 한국문학사의 신화로 자리잡았다는 점만을 우리는 기억할 뿐이다.

<사진설명> 여장을 한 이상


그러나 이상이 내보인 ‘비밀과 거짓말’이 고상한 관념들의 성채로 이루어진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한 비밀과 거짓말들은 남녀간 치정세계의 구체적인 사건들과 관련이 있다. 「종생기」와 「실화」 같은 이상 말년의 소설들이 보여주는 것은 연인의 거짓말에 대응하는 작가 이상의 주체구성 기획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이상이 그의 수필 「19세기식」에서 말한 바 있는, ‘내가 남에게 간음한 비밀, 남을 내게 간음시킨 비밀’에 대한 자의식을 담고 있다. 그는 “내가 이 세기에 용납되지 않는 최후의 한꺼풀 막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간음한 아내는 내어쫓으라’는 철칙에서 영원히 헤어나지 못하는 내 곰팡내 나는 도덕성이다”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이십세기를 생활하는데 십구세기의 도덕성 밖에는 없으니 나는 영원한 절늠바리로다.’라는 자기고백은 퇴폐와 광기의 표상으로 각인된 이상이라는 인물의 내면을 다시 돌아볼 것을 요청한다.


너무도 유명한 소설 「날개」에서 이상은 자신을 빼닮은, 아내로부터 배반당한 주인공을 미쓰코시 옥상에 올라가게 해서 경성을 배회하는 모던보이들이 출몰하고 온갖 자본의 욕망이 들끓는 흐느적거리는 도시의 일상을 지켜보도록 만들었다. 그리하여 “온갖 유리와 강철과 대리석과 지폐와 잉크가 부글부글 끓고 수선을 떨고 하는 것 같은 찰나, 그야말로 현란을 극한” 식민지 경성의 정오를 섬뜩하도록 냉철하게 바라보도록 했다. 근대를 닮아가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자본주의 경성의 비밀과 거짓에 환멸을 느낀 이상은 동경으로의 이동을 감행한다.


이상에게 동경은 20세기 근대의 위용을 떨치는 이상적인 장소로 상상되었으나, 막상 그가 당도한 그 장소는 근대의 포즈만 취하고 있는 환멸의 장소로 다가왔을 뿐이다. 김기림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동경이라는 곳에 오직 나를 매질할 빈고가 있을 뿐인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지만 컨디션이 필요하단 말이오”라고 썼던 이상은 그러나 실제로 동경에 도착해서는 “기어코 동경 왔오. 와 보니 실망이오.”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동경이라는 당대의 소비자본주의의 실체를 구가하는 메트로폴리스에서 이상이 목격한 것은 속도와 기계적 운송장치로 이루어진 제국의 실재였으며, 보행자를 숙도의 질서에 종속된 이름없는 병사로 만들어 버린 소비자본주의의 본질이었다. 또 하나의 모조품에 지나지 않는 근대의 허상을 동경의 한복판에서 발견한 이상은 그 환멸과 절망과 병고 속에서 대표작들인 「실화」, 「종생기」, 「권태」를 써냈다. ‘거동수상자’로 제국의 경찰권력에 체포되었다가 폐결핵이 악화된 스물 일곱 살의 이 식민지 청년은 동경제국대학 부속병원에서 조용히 자신의 이해받지 못한 삶과 문학을 마감하였다. 김해경으로 태어나 생의 절반을 살고 이상으로 나머지 절반을 살며 불멸하는 문학의 주인공이 된 인물,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이상이 남긴 비밀과 거짓말들은 오래도록 독자들에게 읽히며 그들의 자기 인식을 심문할 것이다.

 

ⓒ 동국대학원신문(http://www.dgugspres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페이스북 방문해 주세요!
더 많은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교육방송국 동국대학원신문 동대신문 동국포스트
동국대홈동국미디어컨텐츠 센터동대신문교육방송국동국포스트개인정보처리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4620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로 1길 30 동국대학교 학술관 3층 대학원신문 | 전화 : 02-2260-8762 | 팩스 : 02-2260-8762
발행인 : 윤성이 | 편집인 : 김대욱 | 편집장 : 김태환 | 발행처 : 동국대학교 대학미디어센터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우
Copyright DGUGSPRESS.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gupress@dongguk.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