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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 이글턴
신을 옹호하는 맑스주의 비평가
[162호] 2010년 10월 04일 (월) 복도훈 문학평론가

지난 9월 6일에서 10일까지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맑스주의 비평가인 테리 이글턴(Terry Eagleton, 1943 ~)이 방한해서 다섯 차례 강연을 했다. 거의 두 세 달사이로 이글턴의 책들인『시를 어떻게 읽을까』『신을 옹호하다』『반대자의 초상』이 연달아 번역되었고 평소 그의 책들을 빼놓지 않고 읽어왔기에 부러 시간을 내서 이글턴의 강연에 참석했다. 테리 이글턴은 포복절도할 만한 유머감각을 갖춘 채 신랄하고도 명석하게 글 잘 쓰는 맑스주의 문학비평가로 알려져 있다. 초기의 이글턴이 루이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비판을 문학비평에 도입하면서 지배체제에 복무하거나 그것을 은폐하는 문학을 탈신비화하는 작업에 주력했다면, 최근의 그의 비평은 전지구적 불평등이나 권력구조를 탈신비화하는 문학의 특별한 위상을 강조하는 느낌이다. 물론 이글턴의 작업은 문학비평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그리스신화의 디오니소스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데리다에 이르는 테러에 관한 사유, 아우구스티누스에서 알카에다로 종횡 무진하는 신앙과 근본주의라는 골치 아픈 문제, 예수의 부활에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 이르는 해묵은 무신론 논쟁 등 이글턴의 관심사는 방대하고 깊이 있으니, 일개 문학비평가 처지에서 그의 작업은 열렬한 질시와 서투른 모방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라는 타이틀로 교육과학기술부에서 후원하고 한국연구재단에서 주최한 이글턴의 강연들 중 나는 6일과 7일, 각각 고려대와 교보문고에서 개최된 강연에 참석했다. 영국의 찰스 황태자가 ‘저 끔찍한 테리 이글턴’이라고 했을 정도로 그의 글(특히『반대자의 초상』과 같은 서평 모음집)에서 강하게 환기되는 명석한 신랄함을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처음 대면한 이글턴은 그러나 청중의 질문에 친절하게 답하려고 애쓰거나 점잖고 기지 있는 유머를 섞어가면서 시를 낭독하듯 부드럽게 원고를 읽는 노교수에 더 가까웠다. 6일 강연이었던「신념과 근본주의」에서 이글턴은『신을 옹호하다』에서 기왕에 펼친 논의의 일부를 정리해 보여줬다. 그는 리처드 도킨스와 크리스토퍼 히친스(‘디치킨스’) 덕분에 유행을 탄 기독교비판의 허술함을 유신론자의 입장에서 날카롭게 논박하는 한편, 기독교 및 이슬람근본주의의 문제를 믿음과 지식이라는 문제 틀로 새롭게 해석했다. 결론에서 그는 아무것도 잃을 것 없는 박탈된 자들이 유일하게 가진 자기포기라는 신념의 한 유형이 불평등한 세상을 변화시킬 기반이라고 조금 애매하게 낙관했다.

 

한편 7일 강연이었던「문학의 내면」에서 이글턴은『시를 어떻게 읽을까』와 같은 문학이론 저작에서 시도한 것과 비슷하게 다소 뻔한 결론이었지만 결론에 이르는 논법만큼은 흥미롭게 문학의 위상을 재정립하려 했다. 왜 다섯 개인지는 손가락 수만큼은 명확하지 않았지만 이글턴은 문학성을 이루는 다섯 요소로 허구성, 도덕적 통찰, 창의적 언어, 비실용성, 규범성(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것)을 들었다. 문학에 대한 이러한 정의를 도출하기 위해 이글턴은 중세의 유명론(경험론, 비본질주의, 역사주의, 우연성)과 실재론(관념론, 본질주의, 비역사주의, 필연성)이라는 사례를 들었다. 문학은 다른 어떤 글쓰기와도 구별되는 ‘본질’을 면면히 갖추고 내려왔다는 것이 (문학적) 실재론이라면, 어떤 글쓰기가 문학이 ‘된’ 구체적 사례, 곧 문학은 만들어지고 구성된 것이라는 생각이 (문학적) 유명론이다. 그럼 문학이란 무엇인가. 그 둘을 섞은 비빔밥 같은 것이다!

이글턴의 강연이 끝날 무렵, 내가 새삼스럽게 느낀 것은 이글턴의 묘한 절충주의, 아리스토텔레스 식 중용이었다. 지식으로 믿음을 조롱하거나 믿음으로 지식을 무시하는 회의주의와 신념의 불화, 모든 것은 우연적이라거나 모든 것은 필연적이라는 유명론과 실재론의 양극단을 피하려는 이 노회(老獪)한 맑스주의 비평가에게 동의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세계도처에서 일어나는 비극적인 사건들이 바로 이런 극단의 충돌에서 비롯된다는 이글턴의 심오한 경고에 동의한다면 그의 중용을 수긍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강연장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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