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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인의 비서에서
다니엘 파울 슈레버,『한 신경병자의 회상록』, 김남시 옮김, 자음과모음, 2010
[161호] 2010년 05월 17일 (월) 복도훈 문학평론가

자신이 자서전에서 직접 기술한 바에 따르면, 그는 독일 제국의회 선거에 출마했던 라이프치히 지방 법원장이었고 후에 당시 독일제국의 법관으로서는 거의 최고의 지위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 드레스덴 고등법원 판사회 의장직을 맡았던 능력 있는 법관이었다. 5개 국어에 능통했고 바그너의 오페라를 즐겼으며, 괴테와 바이런의 시, 칸트 철학, 종교학과 신화학, 당대의 자연과학에 대한 이해도 남달랐던 지적인 부르주아였다.

그의 아버지는 오늘날까지 독일의 주말농장으로 유명한 이른바 ‘슈레버 가르텐’의 창시자인 유명한 독일의 계몽주의적 교육학자 다니엘 고틀립 모리츠 슈레버였다. 그러나 어느 모로 뛰어난 아버지를 둔 가문 출신의 아들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의 형은 판사로 발령받자마자 정신병이 발발해 권총으로 자살했다.

형의 죽음으로 슈레버 가문의 대를 이어야 했지만 동생인 그에겐 평생 자식 운이라곤 없었다. 그로 인해 그의 아내는 여섯 번을 유산해야 했다.

또한 형과 마찬가지로 법관으로 출발한 그는 인생의 중반을 넘어선 대부분을 법정이 아닌 정신병원에서 보내야 했다. 그는 법관으로 활동하다가 출마한 선거에서 떨어졌던 1884년에 첫 정신병을 앓았고, 판사회 의장직에 올랐던 1893년에 그 병은 더 심각한 상태로 재발했다.

그러나 다니엘 파울 슈레버(Daniel Paul Schreber, 1842~1911)라는 그 이름을 정작 유명하게 만든 건 훌륭한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전기적 사실 때문이 아니라, 생전에 그가 가문과 지인들의 숱한 반대와 삭제 및 검열을 무릅쓰고 출간한 한 권의 독특한 자서전 때문이었다.

1902년에 출간된 그 자서전의 제목은『한 신경병자의 회상록』이다. 그러나 슈레버의 이름은 그가 죽던 해, 그의 자서전을 분석했던 프로이트에서 벤야민, 카네티, 라캉, 들뢰즈·가타리, 지젝 등에 이르는 지적인 관심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할리우드 영화 <다크 시티>(1998)에 등장하는 슈레버 박사에 이르기까지, 마치『회상록』에 등장하는 ‘방랑하는 유대인’처럼 저주받은 불멸을 획득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오랫동안 위나 장, 허파 없이 찢어진 식도만으로, 방광도 없이, 가루가 된 갈비뼈를 갖고 살았고, 때로는 자신의 목젖 일부를 먹어버리기도 했지만, 신의 기적(‘광선’)이 그렇게 훼손된 부분을 늘 새롭게 창조했기 때문에 자신이 남자로 존재하는 한 결코 죽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슈레버를 치료했던 베버 박사의 법의학 감정서는 슈레버의 정신병적 환각에 대해 이렇게 전하고 있다.

예컨대 슈레버는 자신의 신경이 신이라는 거대한 신경과 연결되어 있고, 과도한 흥분으로 검게 탄 인간들의 신경으로 인해 ‘세계질서’에 위협을 느낀 신이 조만간 세계를 멸망시키고 슈레버를 여자로 변신시켜 신인류를 탄생시킬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병상을 둘러싼 의사와 간병인 등 ‘일시적으로 급조된 인간들’이 자신을 ‘영혼 살해’하려하고 있으며, 신이 변신한 슈레버 양과 ‘씹’하려 든다는 음탕한 목소리들이 끊임없이 들려오면서 자신을 박해한다고 주장한다.

이토록 황당한 박해망상과 음모론으로 가득 찬 슈레버의『회상록』은 그럼에도 지독할 정도로 논리적이며, 그 문장에는 한 톨의 의심조차도 찾아볼 수 없다. 슈레버의 자서전을 읽다보면 저자가 미쳤는지 미친 척 하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으며, 그의 자서전이 정말 자서전인지 저자가 정말 슈레버인지도 알 수 없다. 

본문만 500쪽이 넘는, 세기말의 분위기로 가득한 광인의 자서전인『회상록』은 다양하게 읽을 수 있는 텍스트다.

가령『회상록』은 공부하다가 졸고 있는 아이들의 다리와 머리에 압박 띠를 두르도록 한 규율적인 아버지 밑에서 살아갔던 무기력한 아들의 오이디푸스적 서사다.

한 인간이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 신과 대결하려고 하는 와중에 벌어지는 우주의 몰락과 신생에 관한 망상의 묵시록으로, 독일의 반유대주의와 총통의 등장을 예고하는 암울한 정치 텍스트로, 남자가 여자로 변하는 페미니즘 텍스트로, 숱한 신조어와 목소리의 분절로 가득 찬 다다이즘적 언어학의 보고로도 읽을 수 있다.

프로이트는 일찌감치 슈레버의 박해와 구원의 망상적 광시곡을 세계의 파멸이 아닌 회복의 시도로 읽은 바 있다. 이제 묵시록과 음모론의 시대를 사는 우리 독자들이 한 세기 전, 고통스럽게 절규했던 광인의 말을 듣는 비서가 되어야 할 때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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