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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미스 사이공〉을 보다
명성을 확인시켜준 것은 음악뿐
[136호] 2006년 10월 09일 (월) 박병성 더뮤지컬 편집장

〈미스 사이공〉과 함께 뮤지컬 빅4로 일컬어지는 〈캣츠〉(1981), 〈레 미제라블〉(1985), 〈오페라의 유령〉(1987)은 모두 80년대에 제작되었다. 80년대는 뮤지컬계에 새로운 흐름이 생겨난 시점이었다. 70년대 록 뮤지컬이 젊은이들의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을 때 뮤지컬 빅4의 프로듀서였던 카메론 매킨토시는 뮤지컬의 양대 시장인 웨스트 엔드와 브로드웨이를 통합하는 아이템을 구상했다. 거대한 제작비를 들여 화려한 의상, 스펙터클한 무대 메커니즘을 갖춘 대형 뮤지컬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뮤지컬만의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글로벌화를 시도했던 작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미스 사이공〉은 그러한 시도의 정점에 놓인 작품이다. 〈미스 사이공〉은 1989년 런던 드루리 레인 극장에서 초연한 후, 2년이 지난 1991년 브로드웨이에서도 막을 올려 10여 년간 공연했다.

뮤지컬 빅4 중 마지막으로 한국에 소개되는 〈미스 사이공〉은 화려한 볼거리와 아름다운 음악으로 정평이 나 있다. 특히 이 작품을 언급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헬기 장면은 〈오페라의 유령〉의 파리 오페라 하우스의 지하 호수를 재현한 장면이나 밀림에 사는 온갖 동물들이 모여드는 〈라이온 킹〉의 첫 장면과 함께 무대 예술의 백미로 일컬어지고 있다. 실물 크기의 헬기가 무대 위로 이착륙하는 모습은 장관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아쉽게도 〈미스 사이공〉 한국 공연에서는 헬기 장면을 볼 수 없었다. 이번 〈미스 사이공〉은 영국 투어용으로 제작된 축소된 버전의 공연이다.

모든 것을 갖춘 〈미스 사이공〉을 공연하기 위해서는 한 공연장에서 장기간 공연을 해야만 수지타산이 맞는다. 장기공연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거대한 몸집을 거느리고 세계 일주를 나서기에는 무리였다. 런던에서는 1999년, 브로드웨이에서는 2000년에 막을 내린 〈미스 사이공〉은 몸집을 줄여 미주 투어나 세계 투어 공연으로 생명력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프로젝트를 이용한 영상은 가장 효과적인 다이어트 방법이었다. 이번 한국 공연의 영상은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제작회사인 Gerald Scarfe사에서 만든 것으로 ‘미군의 베트남 탈출 장면(일명 헬기 장면)’과 엔지니어의 아메리칸 드림 장면을 제작했다.

영상으로 처리한 헬기 장면은 음향과 프로젝트를 이용해 훨씬 정교하게 연출했다. 무대 뒤부터 날아와 한 바퀴 선회한 뒤 착륙하는 헬기 장면은 이착륙만 하던 모형 헬기보다는 훨씬 다이내믹한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아무래도 현실감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엔지니어의 ‘아메리칸 드림’을 판타지로 표현한 영상 역시 마찬가지였다. 초연에서는 엔지니어가 늘씬한 미녀들을 거느리고 카퍼레이드를 벌이는 것으로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번 공연에서는 자유의 여인상과 지폐가 나부끼는 영상으로만 처리해서 미국의 부와 그에 대한 동경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이번 버전에서는 영상을 통해 무대의 규모는 축소했지만, 무대가 작아진 만큼 드라마의 밀도는 높았다. 정극을 주로 맡았던 로렌스 코너가 연출에 투입되면서 캐릭터에 충실한 연기를 주문했다. 대극장에서는 배우들의 시선이나 표정이 관객들에게 잘 보이지 않아 감정이 과잉된 연출을 하곤 한다. 그러나 이번 공연은 디테일한 연출로 작품이 가진 드라마성을 최대한 드러내려고 했다.

〈미스 사이공〉이 세계 4대 뮤지컬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무대 메커니즘의 화려함 때문만은 아니다. 전쟁 중에 피어난 가슴 아픈 러브 스토리와 완벽하게 드라마를 재현하고 있는 미셸 쇤베르그의 음악이 〈미스 사이공〉의 진정한 가치를 대변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서양인들에 한하는 이야기다. 음악의 감동은 공유할 수 있지만 전쟁 상황에서 가해자인 미군과 피해자인 베트남 여인의 사랑을 철저히 서양의 시각에서 그린 설정은 쉽사리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것도 6.25 전쟁과 베트남 참전을 경험했던 우리에게는 이 작품의 시선이 불편하게 느껴진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오리엔탈리즘적인 시각이다. 킴은 미군들을 상대로 하는 드림랜드에 몸을 팔려 나간다. 거기서 미군인 크리스를 만난다. 킴에게는 순종적이면서 순수한 사랑을 간직한 이상적인 여성상을 부여한다. 그러나 킴을 제외하고 작품 속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베트남 여성들은 창부로 캐릭터화 된다. 베트남을 벗어나 보트 피플이 되어 홍콩에 정착한 이후에도 베트남 여성들이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비천한 몸뚱이를 파는 일뿐이라는 듯, 베트남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은 사창가로 전락하고 만다. 특정한 동양 여성에게는 순종적인 여성의 이상형을 부여하면서, 대다수의 동양 여성들을 함부로 대해도 되는 창부로 그린다. 서양인이 가진 이중적인 잣대가 그대로 노출된 것이다.

또 하나는 자기중심적인 역사인식이다. 베트남 전쟁이 베트남 국민들에게 안겨준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역사적인 평가가 따라야 하겠지만 전쟁을 지속시킨 미국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작품 속에서 미국(미군)은 구원자로만 그려진다. 크리스는 킴과 자신의 아들 탐을 구해줄 수 있는 구원자로 그려지고, 크리스의 친구 존은 전쟁이 끝난 뒤 미군이 남기고 간 자식들, 부이두이(Bui Doi 베트남 어로 ‘먼지 같은 인생’이란 뜻, 우리의 ‘라이따이한’과 같은 의미)를 돕기 위한 재단에서 일하며 선행을 베푼다.

동양인이 보기에는 유쾌하지 않은 드라마를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미스 사이공〉은 위대한 작품이다. 〈미스 사이공〉의 위대함은 공연장 안에 헬기가 이착륙을 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진정한 작품의 매력은 미셀 쇤베르그의 음악에 있다. 킴과 크리스의 사랑을 각 노래마다 모티프를 숨겨놓고 확장시키며 드라마적으로 연결시킨 솜씨는 뮤지컬 음악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모범적인 사례이다. 〈미스 사이공〉은 작품 전체를 노래로 풀어가는 송 쓰루 방식이다. ‘I Still Believe You’나 ‘Sun and Moon’ 등 주옥같은 노래들도 뛰어나지만 대사로 풀어간 레치타티보들이 일품이다.

한국 공연에서 킴 역을 맡은 김보경은 탐을 위해 목숨을 바치던 모성을 잘 드러냈고, 크리스 역의 마이클 리는 다소 한국어 발음이 불안정하긴 했지만 정확한 음을 짚어내고 충분한 감성 연기로 호연했다. 크리스의 아내 엘렌을 연기한 김선영 역시 짧은 순간 등장하지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에 부족함이 없는 노래와 연기를 펼쳤다.

박병성 〈더뮤지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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