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2.5.10 화 11:47
인기검색어 : 등록금 반환, 코로나19, 조교 문제
신문사소개 | 호수별 기사보기
> 뉴스 > 학술 서평 > 서평
     
관용과 폭력의 역설적 공모
[160호] 2010년 04월 12일 (월) 박대진 서울산업대 기초교양학부 강사

    

웬디 브라운, 이승철 옮김,『관용』, 갈무리, 2010

 

소수자와 이주자의 문제를 비롯해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의견 표출의 요구들과 소비문화 속에서의 개성과 다양성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우리들에게 차이에 대한 감수성을 요구하는 사회적 조건들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차이와 타자에 대한 강조는 더 이상 낯선 것이 아니며, 타자와 차이를 존중하고 관용하라는 요구는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윤리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시대적 윤리 속에서 감지되는 모종의 불편함 역시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해방의 관념 속에서 제기되었던 많은 사회적 문제들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으며, 그것들이 관용의 윤리 속에서 제대로 표상조차 되지 않는다는 직관에서, 또한 그런 문제들이 차이와 특수성이라는 관용의 언어로 옮겨질 수 있느냐는 의문에서 비롯된다.

웬디 브라운의 『관용: 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전략』은 오늘날 관용과 그 대상이 되는 차이가 작용하는 방식을 구체적이고 정밀하게 분석함으로써 이런 불편함의 근원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준다. 여기서 핵심적인 건 관용과 차이가 어떻게 권력과 관계를 맺으며 그 효과는 무엇인가에 대한 푸코적 문제의식이다.

관용의 대상이 되는 차이는 관용 이전에 존재하지 않으며, 관용의 공간 속에서 특정한 방식으로 구성되고 생산된다. 관용이 관용할 대상을 스스로 만들어낸다는 이런 인식은 차이가 관용을 통해 작용하는 권력의 통치성 속에 놓여 있음을, 따라서 관용이 가장하는 중립성과 보편성이 허구적임을 가리킨다. 브라운이 『관용』을 통해 해명하려는 건 바로 이 허구성의 논리적 구조다.

이를 위해 브라운은 오늘날 관용이 중립적이고 보편적인 공간으로 기능하는 방식에 특수한 조건이 개입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관용의 범위와 대상의 문제와 관련되는 이 조건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관용을 정치적인 영역과 분리함으로써 문화적 차이와 갈등이 조정되는 장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이는 사회적 적대와 갈등이 정체성과 문화적 본질 속에 정박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 재의미화 속에서 정치의 역할은 사라진다. 역사와 권력의 맥락 속에 놓여 있는 갈등은 문화적 본질과 개인적 태도의 문제가 되며, 이 때 관용은 단지 주어진 차이를 ‘참고 버티는’ 유사 해결책으로 등장한다.

오늘날의 관용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조건은 개인과 문화가 융합되어 있는 또는 개인이 문화에 의해 ‘지배되는’ 비자유주의 체제를 배제하는 것이다. ‘도덕적 자율성’의 명목 속에서 관용은 개인의 정체성과 집단의 문화가 구분되지 않는 비서구 세계의 문화적 권리를 인정하지 않으며, 오직 집단의 문화로부터 뿌리가 뽑힌, 따라서 문화를 선택과 향유의 대상으로 지각하는 자유주의적 개인만을 관용의 대상으로 구성한다. 이것은 동시에 관용이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 등과 결합하여 문화들 사이의 위계를 확립하는 표준으로, 문명과 야만을 나누는 새로운 문명담론으로 등장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탈정치화와 자율적 개인의 이념은 관용이 사회의 안과 밖을 가로지르며 이식하는 통치의 기반이다.

관용의 조건을 이루는 이런 구성적 원리로 인해 관용은 부드러운 공식적 외양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중립적이거나 보편적이지 않다. 오히려 관용의 중립적 공간은 분리와 배제를 통한 선택적 포섭이라는 비관용적 몸짓으로 얼룩져 있다. 정치와 비자유주의적 문화는 관용의 외부이자 한계로서 기능하며, 관용은 이 요소들을 걸러내는 제어장치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리고 관용이 중립적이고 보편적인 공간으로 출현하기 위해 이런 배제의 폭력이 수반되어야 한다면, 그 귀결로서 관용의 대상으로서의 차이는 탈정치화와 자유주의적 개인의 범주를 수용하는 한에서만 관용의 공간에 진입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관용이 현실의 지배와 맺는 관계는 분명해진다. 불평등과 지배의 수직적 관계는 수평적 차이의 계열 속에서 은폐되며, 차이가 가질 수 있는 잠재적 급진성과 영향력은 통제된다. 관용을 세계화된 시대의 이데올로기라 부를 수 있다면, 그것은 오늘날 관용이 이처럼 ‘억압의 피난처’로 기능한다는 사실에 놓여 있다.

브라운의 분석이 갖는 미덕은 우리가 즐기는 친숙한 어떤 것을 낯선 것으로 만든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차이를 존중하라’는 주문이 아무리 매혹적이라 하더라도 차이가 단지 개인이 가진 특수한 문화적 본질처럼 인식되고 실천될 때, 그것은 변형된 지배의 형태에 불과하다는 메시지를 브라운은 분명하게 던지고 있다.

관용이 표방하는 이웃 사랑의 윤리가 불가능하다면, 윤리는 관용이 배제하는 정치와의 관계 속에서 새롭게 모색되어야 한다. 『관용』은 생각하기에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 동국대학원신문(http://www.dgugspres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페이스북 방문해 주세요!
더 많은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교육방송국 동국대학원신문 동대신문 동국포스트
동국대홈동국미디어컨텐츠 센터동대신문교육방송국동국포스트개인정보처리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4620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로 1길 30 동국대학교 학술관 3층 대학원신문 | 전화 : 02-2260-8762 | 팩스 : 02-2260-8762
발행인 : 윤성이 | 편집인 : 조성환 | 편집장 : 이지현 | 발행처 : 동국대학교 대학미디어센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오솔미
Copyright DGUGSPRESS.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gugspress@dongguk.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