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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미학의 창시자 존 워터스
허위의식에 도전했던 전위적 영화감독
[159호] 2010년 03월 01일 (월) 김경태 중앙대 영상예술학과 박사과정
 우리는 특정 영화의 허접함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흔히 “그 영화 쓰레기야!”라고 딱 잘라 말하곤 한다. 혹자는 감독의 엉성한 연출력과 배우의 형편없는 연기력이 거슬린다는 이유로 혹평하고, 나아가 영화에 대한 깊은 조예를 지닌 사람에게는 컷과 컷의 매치가 생산적인 의미를 도출해내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도 특정 영화를 쓰레기 취급한다. 이러한 기술적 측면뿐만 아니라 영화의 표현 수위나 가치관에 대한 깊은 반감으로도 어떤 영화를 쓰레기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쓰레기 요소’들을 한데 묶어 하나의 미학으로 끌어올린 감독이 있다. 바로 미국 중산층 사회의 보수적 가치를 끊임없이 공격하는 호전적 캠프 미학의 대가 존 워터스(John Waters)이다. 1945년 미국 볼티모어에서 태어난 그는, 억압적인 가톨릭 교리가 지배하는 중상층 사회에서 반항적인 어린 시절을 보냈다. 마약을 하거나 반체제 문화에 심취하던 그는, 자주 드나들던 뉴욕에서 다양한 영화들을 섭렵했다. 특히 케네스 앵거(Kenneth Anger)나 앤디 워홀(Andy Warhol)과 같은 언더그라운드 감독들의 영화들에 영감을 받아 초기 작품들을 선보였다. 그의 장편 데뷔작인 16mm 흑백영화 <몬도 트라쇼(Mondo Trasho)>(1969)는 2천 달러라는 초저예산으로 완성한 작품이다. 이때부터 그는 이단적인 독립영화 감독으로서의 재능을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다. 특히 이 영화 <몬도 트라쇼>는 그의 영원한 페르소나인 여장남자 ‘디바인(Divine)’을 여주인공으로 한 첫 번째 영화이기도 하다.

그 후 존 워터스는 <핑크 플라밍고(Pink Flamingo)>(1972), <디바인 대소동(Female Trouble)>(1974), <간절한 삶(Desperate Living)>(1977), <폴리에스터(Polyester)>(1981) 등 일련의 영화들을 만들며 독립영화계의 거장으로 우뚝 서게 된다. 그의 영화들은 비전문배우들의 과장되고 조악한 연기를 비롯하여 오로지 자극을 목적으로 배치한 컷들, 외설스러운 장면을 더 외설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카메라 워킹으로 점철되어 있다. 성기와 항문을 혐오스러운 이미지로 전시하고, 절단된 신체들의 나열하며, 분변 애호적인 취향을 과시한 그의 영화는, 만인을 위한 쓰레기 영화로 명예의 전당에 오를만한 자격요건을 충분히 지니고도 남는다. 60년대 프랑스 누벨바그의 영화들이 점프 컷이나 열린 결말로 새로운 영화문법에 첨예한 정치적 의심을 담아냈다면, 존 워터스의 영화들은 새로운 영화문법을 비롯한 정치적 고민이 매우 고리타분하다는 듯 그저 지저분한 일탈의 놀이에 몰두한다. 물론 80년대에 이르러 주류 할리우드의 제작 시스템에 편입한 그는 더 많은 대중들에게 호소하기 위해 타협을 시도하지만 그의 반골정신은 변함이 없었다.

일례로, 존 워터스가 캐서린 터너라는 스타 배우를 캐스팅한 <시리얼 맘(Serial Mom)>(1994)은, 할리우드 대중영화의 공식에 충실한 동시에 그가 견지하고 있는 전복적 가치관의 본질을 견지하여 더욱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20년 앞서 제작된 <디바인 대소동>에서 주인공 디바인이 쇼 비즈니스 세계가 조장한 추악한 범죄 미美에 도취되어 자신의 딸마저 아무런 죄책감 없이 교살했다면, <시리얼 맘(Serial Mom)>의 슈트핀 부인은 자기 가족들을 험담하거나 슬프게 하는 예의 없는 것들을 당당하게 연쇄적으로 살해한다. 마침내 사형 선고를 받은 디바인은 사형수로서 유명해 질 수 있게 해준 딸을 비롯한 여러 희생자들에게 감사하며 영광스럽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반면, 슈트핀 부인은 목격자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정숙한 어머니의 이미지와 든든한 수많은 팬클럽(?)의 응원, 그리고 유려한 자기 변론을 무기 삼아 배심원단을 설득해 무죄판결을 받아낸다. 디바인과 슈트핀 부인은 각자의 방식으로 사법부를 농락하지만, 각각 스타덤의 허상과 완벽한 어머니라는 강박관념에 갇혀 사는 그녀들 또한 감독에게 있어 조롱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나아가 그녀들에게 열광하는 미디어와 대중들마저 조롱거리로 전락시켜 버리면서 관객들에게 묻는다. 자, 아직도 무엇을 버려야 할지 모르겠는가?

존 워터스의 영화가 쓰레기로 취급받지 않고 하나의 미학적 가치로 칭송받을 수 있는 이유는 제작 여건이나 규모에 상관없이 무엇을 버려야 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자문하며 쓰레기통의 역할을 기꺼이 자처한 덕분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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