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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의 고독
블라디미르 레닌(Vladimir Il'ich Lenin)에 관하여
[159호] 2010년 03월 01일 (월) 복도훈 문학평론가
 슬라보예 지젝 외,『레닌 재장전』, 이현우 외 옮김,  마티, 2010 

최근에 감명 깊게 읽었던 어떤 책의 한두 문장을 인용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해보겠다. “혁명은 사랑을 만드는 기술이다. 그것은 레닌이 아니라 트로츠키의 혁명, 로자 룩셈부르크의 혁명, 그리고 벤야민의 혁명이다.”(김홍중,『마음의 사회학』) 이 문장에서 내가 주목하고 싶었던 것은 단지 레닌이 아니라는 구절뿐이다.

『마음의 사회학』전체를 뒤져봤지만 왜 레닌이 아니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찾을 길이 없었다. 트로츠키, 로자, 벤야민의 혁명은 허용되지만, 레닌의 혁명은 안 된다. 레닌의 혁명이 안 된다면 레닌을 언급하지 않으면 될 텐데, 굳이 레닌이 아니라고 말했을까? 그냥? 그게 아니라면, 대체 왜? 그런데 앞의 문장을 이렇게 바꿔써보면 어떨까. “혁명은 사랑을 만드는 기술이다. 그것은 트로츠키의 혁명, 로자 룩셈부르크의 혁명, 그리고 벤야민의 혁명이 아니라 레닌의 혁명이다.” 오늘날 누가 이렇게 쓸 수 있을까. 이 문장이야말로 우리시대에 쓰기 불가능한 것은 아닐까.

『마음의 사회학』에서 인용한 글의 화법은 가령 어젯밤 꿈속에서 잔 여자가 확실히 엄마는 아니라는 프로이트 환자의 어법과 어딘지 모르게 닮아있다. 프로이트가 알려준 진실은 환자가 꿈속에서 잔 여자는 바로 엄마였다는 것이다. 부인(否認)된 내용이 내용을 부인하는 바로 그 일그러진 형태로 긍정됐던 것. 우리시대의 레닌이란 그런 부인된/전치된/금지된 ‘엄마’와 비슷하지 않을까. 레닌과 엄마라니!

 어찌 앞서 인용한 책의 저자 홀로 레닌에 대해 그런 혐의를 지니고 있겠는가. 우리시대에 레닌을 언급하는 대다수 좌파들조차 한사코 레닌을 부인하기 위해 그를 호명한 이력이 있지 않았던가. 레닌은 우파에서 좌파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합의를 통해 마침내 금지된 기표가 됐다. 대다수 우파들에게 레닌은 무자비한 테러와 숙청의 길을 터놓은 스탈린주의의 전신(前身), 공산주의라는 허망하고도 불가능한 꿈을 실현시키려고 했던 강철독재자이다.

반면 좌파들에게 레닌은 다중들의 자발적인 봉기를 억압했던 의식화된 당절대주의의 교조, 서구의 과학기술+공산주의=러시아소비에트라는 순진한 발상의 신봉자기도 하다. 결국 레닌은 한물갔다는 것이며, 그의 유산은 먼지에 쌓인 채 도서관에 잠들어 있다. 그러나 슬라보예 지젝, 알랭 바디우, 테리 이글턴 등 세계의 내로라하는 좌파이론가들이 레닌이라는 사유금지(Denkverbot)된 기표 아래에 모여 붉은 깃발을 꽂았다.『레닌 재장전』을 읽으면서 나는 레닌의 고독, 완전무결한 고립의 한가운데서 기정사실화된 혁명의 불가능성을, 불가능한 혁명을 실제로 일어나는 것으로 뒤집어 꿈꿨던 고독한 레닌을 생각했다.

 그렇다면 무소불위로 시장과 국가에서 활개를 치는 집권정당과 극우파세력의 등장, 그리고 반(反)이명박이라는 구호아래 타협과 연합을 모색하고 오직 선거에만 희망을 거는 한국의 자유주의자들, 개량주의 좌파의 실상을, 레닌을 경유하여 독해해보면 어떨까.

1914년의 유럽이 전쟁으로 화염에 휩싸였을 때, 사회주의혁명이 불가능함을 기정사실화하고 조건부로 전쟁을 찬성했던 사민주의 좌파들의 점진적 타협주의와 우파들의 노골적인 백색테러를 생각해보라. 그들은 결국 서로를 보완했다. 이 상황은 오늘날 선거라는 민주적 합의 속에서만 정치적 대안을 찾으려는 우리의 실상과 어딘가 닮아있지 않은가. 레닌은 점진적 타협주의를 거부하고 진리의 정치를 천명했다.

혁명의 불가능성이 명약관화해지던 그때, 행동에의 유혹도, 의회주의적 타협주의도, 냉소와 우울 모두를 거부하고 스위스 도서관에서 헤겔의『논리학』을 연구하던 그때의, 레닌의 고독을 나는 지금, 여기서 상상해본다. 그렇다고 지금, 여기서 레닌의 고독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색다른 것은 아니다. 

 작지만 유행처럼 번지는 레닌 붐은 슬라보예 지젝이라는 저자 덕택에 가능해진 면이 없지 않다. 이것은 또다른 유행의 서곡일까. ‘지젝이 만난 레닌’에는 열광하면서도 정작 레닌의 글은 제쳐두고 마는 게 레닌 붐의 이면은 아닐까.

‘레닌을 말하는 지젝은 좋아요, 하지만 레닌은 됐네요.’『레닌 재장전』조차 어떤 필자들은 레닌을 한번도 인용하지 않으면서 레닌을 말하고 있다. 레닌이라는 기표는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소박하지만 확실한 방법으로, 80년대에 번역되어 읽히다가 지금은 헌책방에 처박혀 골동품이 되어버린 레닌의 책들에서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처음부터 한권씩, 가령 레닌의『국가와 혁명』을 읽는 일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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