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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읽기] 회상, 꿈 그리고 사상
무의식으로 삶의 역사를 보다
[157호] 2009년 10월 12일 (월) 이유경 정신분석가

『회상, 꿈 그리고 사상』은 스위스정신의학자 C.G.융(1876-1961)이 생의 마지막 시기에 완성한 자서전이다. 융의 저작은 삶의 경험이 많을수록, 혹은 정신현상에 대한 이해가 클수록, 읽을 때 더 풍성한 이해가 가능하다. 융의 저술이 모두 실제적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여러 정신 현상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융은 한 개인의 삶을 무의식의 역사로 보고 있다.

말하자면 우리가 겪는 사건들은 모두 무의식에 있는 것이 외화되어 드러난 현상이며, 인격도 무의식의 의식적 실현에 의한 것이다. 융이 자서전에서 내적 체험만을 다루고자 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아동기의 환상이나 꿈은 융의 삶을 총체적으로 특징짓는 원형적 심상이며 이 시기부터 자신의 자서전을 서술한다. 융의 인상적인 꿈 중 제일 첫 번째는 지하 사원에 모셔져 있는 남근신이었다.

인간의 피부를 가진 지하세계의 남근신은 다름이 아니라 의식의 배후에 있으면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세하는 생명력, 즉 무의식의 실존적 모습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융은 일생을 지하세계에 해당하는 무의식의 영역에 대한 탐구를 하게 되었다. 그래서 집단무의식의 원형이야말로 정신의 삶을 이끌어가는 진정한 주체임을 밝히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집단무의식이 의식의 빛을 끌어들이기 위해 융과 같은 한 개인을 선택했던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융은 집단무의식에 뿌리내린 인격의 부분을 일찍부터 인식하고 있었다. 이런 사실은 그의 내부에 마치 두 개의 인물, 즉 17세기에 속하는 듯 나이든 인물과 성장하고 있는 어린 인물을 나란히 느끼고 있었다는 점을 말한다. 융은 고태적 영혼과 연결된 노인의 인물상을 억압하지 않고, 의식의 삶에 반영하려 노력했다. 융은 그 인물상과 작업한 정신의 내용을 그의 분석심리학의 기초로 삼았다.

융은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프로이트에 의하여 심층심리학에 입문하게 되었지만, 무의식에 대한 이해가 서로 달라 독자적인 길을 개척하였다. 프로이트의 편견 없는 연구는 우리가 완전히 잊고 있었던 세계, 즉 무의식을 탐구하게 하고 꿈을 주목하게 하였다. 프로이트가 다루었던 성(性)은 생물학적 의미를 넘어서 심혼의 다른 측면, 즉 신의 어두운 측면, 정신의 하부에 해당하는 것으로 어느 면에서 지하세계를 탐색하고 있는 융과 같은 맥락에 있었다.

그러나 융은 무의식이 무엇이냐는 연구보다 연구 초기부터 자아의식과 무의식과의 관계에 관해 다루고자 하였다.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자아의식의 태도 변화는 무의식의 관계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융의 이러한 작업은 무의식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자아의식의 변화가 정신치료 과정에서 일어나는 치유적 통찰을 넘어서, 한 개인이 일생을 통하여 일어나는 인격의 변화, 즉 전(全)인격적 실현에 이르는 내용이 된다는 사실을 밝히게 된다.

 융은 정신의 변환에 관한 내용을 다루며 기독교가 삼위일체의 정신을 표방하며 제외시킨 제4의 요소, 즉 변환의 신비의 주체인 여성적 요소를 무의식의 내용에 포함시킨다. 융은 자신의 심리학을 정립하면서 그것에 대한 객관적 전거를 역사성 속에서 제시하려 했다. 정신 변환은 각 개인에게 일어나는 것이지만, 인간의 역사 속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다루어지고 실현되고 있음을 보여줘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중세 연금술 연구는 정신의 변환을 다루고 있었던 역사적 객관적 자료를 위한 연구가 되었다. 연금술사들은 물질의 변화를 탐구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상 정신 변환의 내용을 다루고 있던 것이다.

연금술사들이 물질의 결합으로 보았던 ‘화학적 결혼’은 심리학적으로 의식과 무의식의 결합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다. 같은 맥락에서 융은 여러 종교에서 다루는 신성혼 주제도 다루었는데, 이는 프로이트에서 비롯된 근친상간적 주제에 대한 분석심리학적 이해에 해당한다. 융은 인간이 현실에서 삶을 초극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의 의식화를 위하여 기꺼이 인간으로서, 개인으로서 겪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자아와 무의식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인격의 변화. 인격의 통합은 완전함을 추구하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 삶을 존재론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을 강조하였다. 한 개인의 전(全)인격적 실현 혹은 자기실현은 언제나 현존적 실천 과정이다. 바로 한 개인이 그러한 전인격적 실현 과정에 동참하는 것, 그것이 인간 정신의 영원성을 보증하는 것이다

이유경

(융 학파 정신분석가, 분석심리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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