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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評 - 자기 본위와 교양주의의 의미
[136호] 2006년 10월 09일 (월) CRUE 서평전문편집위원

고모리 요이치, 한일문화연구회 역, <나는 소세키로소이다>, 이매진, 2006.
매슈 아놀드, 윤지관 역, <교양과 무질서>, 한길사, 2006.


새롭게 인사드립니다. 136호부터 ‘새로나온 책’을 맡게 된 서평전문편집위원 크루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이른바 영국과 일본의 문호(文豪)와 관련된, 상당히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지만,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두 권의 신간을 선정하였습니다.

먼저 소개해드릴 신간은 고모리 요이치 도쿄대 문학부 교수가 지난 1995년에 집필한 좬나는 소세키로소이다좭입니다. 좬포스트콜로니얼좭과 좬일본어의 근대좭, 좬1945년 8월 15일 천황 히로히토는 이렇게 말하였다좭 등의 일련의 저서를 통해 근대 국민국가의 신화를 근본적으로 해체하는 작업에 매진하면서 끊임없이 회생하는 근대 일본의 제국주의의 망령을 적극적으로 비판하여 이미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고모리 요이치의 본업이 원래 문학비평가였다는 사실은 다소 낯설게 다가올 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그의 이름은 일본 우경화의 움직임을 반대하는 집회 등에서 더욱 쉽게 발견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좬나는 소세키로소이다좭를 보면, 고모리 요이치가 분명 예리한 감식안을 지닌 비평가라는 사실을 확인하기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는 이 책에서 유년 시절의 양자 입적 및 불가피했던 환적(換籍) 체험에서 나쓰메 소세키의 일생을 지배한 정체성의 분열이 배태되었다고 보고, 그것이 소세키의 생애와 소설 전반에서 관찰되는 어떤 끊임없는 흔들림을 낳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흔들림이 문학과 생계라는 일신의 문제, 더 나아가 자본주의와 국민국가라는 일본 근대 자체에 직면하면서 어떤 경로를 향해 나아갔는지에 대해 규명하고자 합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일본의 근대가 나쓰메 소세키라는 개인에게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세키가 최종적으로 국가주의와 제국주의로부터 거리를 두고, 개인주의 혹은 자기 본위의 입장을 구축하는 데에 이르는 경로를 그의 소설과 에세이, 생애 전체를 통해 탐구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결코 자기를 포기하는 법이 없었던 한 소설가의 내면세계가 기실 내부의 분열과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비롯되었던 경위를 대단히 흥미로운 필치로 재현해 내고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일본에서 일급의 비평가로 입신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몇 명의 작가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나쓰메 소세키는 에토 준과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일급의 비평가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고모리 요이치가 그 뒤를 잇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으로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는 우물과도 같이 끊임없이 새로운 의미를 생성해 내는 나쓰메 소세키와 같은 작가를 보유한 일본이 새삼 개인적으로 부러워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두 번째 책은 윤지관 덕성여대 교수의 번역으로 새롭게 출간된 좬교양과 무질서좭입니다. 이 책은 이미 70년대에 문고판으로 한 차례 번역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의 번역이 으레 그랬듯이 일본어역본을 중역한 것이었으며, 그나마 절판된 지 오래여서 구해 보기도 어려웠습니다. 한국에서 손꼽히는 매슈 아놀드 전공자 가운데 한 사람인 그는 1985년에 이미 아놀드의 여러 논문을 편역하여 좬삶의 비평좭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한 바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정, 무엇보다도 좬교양과 무질서좭가 가지는 고전적 위치를 감안한다면 이 책의 번역은 뜻밖에도 상당히 늦게 이루어진 셈입니다.

문화의 의미와 가치를 선구적으로 중시했다는 점에서 문화연구의 고전과도 같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좬교양과 무질서좭는 1860년대에 매슈 아놀드가 인간의 자아 완성을 위한 교양의 필수불가결성에 주목하여 그러한 주제에 관해 여러 차례 강연을 다니고 논문도 발표한 데에서 비롯합니다. 그것을 1869년에 단행본으로 묶어 출간하는데 이것이 바로 좬교양과 무질서좭입니다. 이 책은 19세기 후반 영국 중산층이 가지고 있던 교양 중심주의를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산업혁명 및 공업화가 급속도로 진전되고 있었던 당시의 영국에서 아놀드 같은 인문주의자가 우려한 것은 물질적 풍요와 기계·산업 등의 물질문명에 대한 숭배가 빚어내는 인간성의 상실이었습니다.

아놀드의 교양과 문화 개념은 이러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방책으로 제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에게 있어서 교양이란 자기완성의 추구 및 탐구이며 인간 정신의 전면적인 진보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비단 개인의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놀드는 교양이 어디까지나 사회적 이념에 해당하며 인류 전체의 완성과 관계된다고 보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말하자면 개인의 문화적 향상이 사회 전반의 진보·개량과 직결된다는 생각입니다. 교양 있는 시민 계층을 대대적으로 육성하여 이것을 당대 영국 사회를 통합하는 기제로 활용하고자 했던 아놀드의 이상은 물론 종래에 비해 현저히 약화된 종교의 위상을 대체할 만한 무엇을 발견하고자 하는 모색 가운데 하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다른 측면에서 보면 그만큼 영국 내부의 계급 갈등을 적절히 봉합하면서 중산 계층의 이익을 최대한 실현하는데 공헌한 이데올로그도 사실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자유주의자들은 좬교양과 무질서좭가 발표되자 개혁을 거부하는 기만에 불과하다며 혹독하게 비판했습니다만.

식민지에 대한 영국의 가혹한 통치에 대해 주저 없이 신랄한 비판을 가하는 양심적 지식인이었던 아놀드의 개인적 선의를 의심할 여지는 없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교양과 무질서란 명제는 문명과 야만이라는 또 다른 이분법으로 변형되어 실제로 서구 제국주의의 확산에 적지 않게 공헌하는 인식론적 기반이 되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인간성의 지적·미적 완성을 통해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자 했던 아놀드의 이상은 이 세계의 모든 순진한 개인주의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올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놀드의 사상이 가지고 있는 무수한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인문학의 위기가 심심치 않게 운위되고 있는 21세기의 한국에서 교양과 문화, 인문주의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던 좬교양과 무질서좭의 주장이 결코 공허하게만 들리지 않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좬교양과 무질서좭를 깊게 새겨 읽어야 하는 이들은 어쩌면 아놀드적 의미에서 무교양의 극치를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는, 소신도 문화적 소양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오로지 눈앞의 이익과 유권자의 표를 쫓아 철새처럼 부유하는 그 어떤 집단에 소속된 개인들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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