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19.11.12 화 15:32
인기검색어 : 등록금 인상, 총장선출,
신문사소개 | 호수별 기사보기
> 뉴스 > 학술 서평 > 서평
     
폴 윌리스(Paul Willis)의 교육비극론
세상과 불화하는 삶의 방식은 좌절만을 가져오는가
[157호] 2009년 10월 12일 (월) 조상식 교육학과 교수

1990년대 중반 록그룹 너바나(Nirvana)의 리드싱어 커트 코베인(Kurt D. Cobain)의 자살은 충격이었다. 당시 필자에게 그의 죽음은 일종의 비극적인 역사철학을 확인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은 약물중독으로 말미암은 권총자살이었지만, 그의 음악적 이상은 단지 병리적 해석으로 묻힐 수 없었다. 20대 중반도 못 채운 이 젊은이의 생애를 치밀하게 추적 기록한 찰스 크로스(Charles R. Cross)의 평전은 이를 잘 보여준다. 코베인은 언더그라운드에서 부상하여 대중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지만, 록의 진정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일설에 의하면, 그는 자살 직전 자신의 속마음을 R.E.M의 리드보컬 마이클 스타이프(Micheal Stipe)에게 털어놓았다고 한다. 그 내용에 대해 스타이프는 여전히 입을 열지 않고 있지만, 다음의 인터뷰는 그 맥락을 약간 드러내 준다.

“우리는 뱃속의 촌충이 되어야 해! 결국, 온통 잘게 쪼개져 배설되어 나오더라도."

코베인과 스타이프의 록음악의 특징은 여러모로 대비된다. 스타이프는 다소 대중의 귀에 익숙한 선율에 의존하면서 대중적인 록음악 보급에 적극적이지만, 코베인은 여전히 언더그라운드적 은둔을 그리워하면서 대중성 자체를 록 순수성의 파괴로 생각했다. 록음악계의 자살사건이 던진 시사점은, 사회구조적 모순을 직시하고 이에 의연히 맞서려는 사람은 결국 구조의 벽에 가로막혀 좌절된다는 비극이다.

너바나의 리트싱어 커트 코베인(Kurt D. Cobain)

이러한 부조리한 개인 및 역사의 운명은 교육학 방면의 고전인 폴 윌리스(Paul Willis)의 『노동학습 Learning to Labor』(1977)에도 나타난다. 이는 영국 노동계급 출신 아이들의 학교생활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다. 윌리스는 책 서두에 “노동자 계층 아이들은 왜 노동자가 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흔히 학교교육을 통한 계급재생산은 계층 및 계급에 따른 사회‧문화‧경제적 차이의 결과로 간주되어 왔다. 하지만, 윌리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노동계층 아이들이 학교에서 형성한 반(反)학교문화의 경험은 그들을 ‘자발적으로’(!) 육체노동직을 선택하도록 이끈다는 사실이다.

“노동계급 학생들이 노동계급을 택하는 과정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점은 왜 그들 스스로 이를 원하는가 하는 점이다.”

노동계층 아이들은 주로 육체노동을 하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남성다움(싸나이 “lads”)을 선호하는 반면, 뛰어난 학업성적을 보이는 중산층 아이들의 수동적인 여성성(귀구멍 “ear'oles”)을 혐오한다. 이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인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이분법을 이미 꿰뚫어본 셈이다. 그러한 구조적 모순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간파”(penetration)라고 한다. 하지만, 그들의 간파능력은 완벽하지 않고 불완전할 뿐이다. 그래서 이들이 자본주의의 비밀을 폭로하면서 치르는 대가는 너무나도 가혹하다. 그들의 저항문화를 특징짓는 남성다움은 성(性) 이데올로기라는 덫에 다시 갇혀 버린다. 요컨대 그들은 자본주의 구조가 가하는 “제한”(limitation)에 구속된다. 그들이 스스로 선택한 사회 기층(基層)은 아주 ‘자연스럽게’ 재생산되어 간다.

노동계층 아이들이 학교에서 행하는 저항은 현재적 시점에서는 쿨(cool)한 문화적 향연이지만, 미래엔 결국 막대한 손실을 입고 쟁취한 ‘피로스(Pyrrhus)의 승리’에 불과하다. 이렇듯 어느 사회 분야에서든지 간에 ‘반골(反骨)들’은 구조로부터 배제될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그렇다고 사다리의 꼭대기에 도달할 때까지 사회구조에 대한 자신의 비판적 성향을 숨기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그 대답은 최근에 있었던 공직 청문회에서 어렴풋이 찾을 수 있다. ‘친서민’으로 포장한 정권에 ‘투항’(!)한 시골출신 어느 개혁적 성향의 교수는 윌리스의 비극적 인간운명을 이해하고 처세술의 반면교사로 삼은 것은 아닐까?

ⓒ 동국대학원신문(http://www.dgugspres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페이스북 방문해 주세요!
더 많은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교육방송국 동국대학원신문 동대신문 동국포스트
동국대홈동국미디어컨텐츠 센터동대신문교육방송국동국포스트개인정보처리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4620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로 1길 30 동국대학교 학술관 3층 대학원신문 | 전화 : 02-2260-8762 | 팩스 : 02-2260-8762
발행인 : 윤성이 | 편집인 : 김대욱 | 편집장 : 김태환 | 발행처 : 동국대학교 대학미디어센터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우
Copyright DGUGSPRESS.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gupress@dongguk.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