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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LASSIC - 암흑의 심장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
조셉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 Heart of Darkness』
[136호] 2006년 10월 09일 (월) 서희원 본교 국문과 강사

신의 분노, 묵시록, 암흑의 핵심

1899년 출간된 좬암흑의 핵심좭은 근대와 제국, 계몽의 어두운 이면에 대한 가장 깊은 고찰이며,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과 공포의 이미지를 반복적인 진술을 통해 형상화한 소설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학적인 평가 이상으로 이 소설을 대중에게 알린 것은 좬암흑의 핵심좭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두 편의 영화이다.

베르너 헤르조그의 1972년 작인 〈아귀레, 신의 분노(Apuirre, Der Zorn Gottes)〉와 프란시드 포드 코폴라의 1979년 작인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이 그것이다. 물론 최근에 기록적인 흥행을 하였던 〈킹콩〉에서 감독인 피터 잭슨은 해골섬으로 항해하는 배의 어린 선원의 손에 좬암흑의 핵심좭이라는 소설을 들게 함으로써 자신의 영화를 해석하는 독법과 조셉 콘래드에 대한 존경을 노골적으로 표시한 바 있다. 하지만 〈킹콩〉은 암흑의 핵심으로 다가가는 인간의 광기에 대한 성찰이라기보다는 ‘동물원의 기원’이나 ‘사파리의 탄생’에 가깝다. 아쉽지만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한정된 지면을 생각하며 여기에서 마치고 좬암흑의 핵심좭으로 들어가자.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향해가는 여행

소설의 화자인 말로는 친척의 주선으로 아프리카 콩고의 식민지 회사에서 일자리를 구하게 된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말로에게 맡겨 진 일은 회사로 귀환하지 않고 밀림으로 사라진 커츠를 직접 소환하라는 것이다. 말로는 이 일을 수행하기 위해 커츠의 주재소가 위치한 콩고강의 상류로 어두운 여행을 떠난다. 그가 그곳에서 목도하게 되는 것은 “이 세상이 처음 시작되던 시대”와 같은 두려운 광경이며, 문명화되지 못한 인간의 야만과 문명화된 인간의 야만적 행위이다.

 말로는 상류로, 암흑의 핵심으로 다가갈수록 커츠를 소환한다는 처음의 목적을 상실하고 밀림에 가득 찬 광기 속에서 그것에 “매혹”된다. 마침내 말로는 커츠의 주재소에 도착하게 되고, 풍토병에 걸린 커츠를 데리고 회사가 위치한 하류로 돌아온다. 하지만 커츠는 배 위에서 그가 경험한 지극한 공포에 대한 두려움을 외치고 죽음을 맞는다. 말로가 유럽으로 돌아가 커츠의 마지막 말을 묻는 그의 약혼녀에게 마지막으로 외친 것은 그녀의 이름이었다는 거짓말을 하였다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친다.

정복의 대속(代贖), 이념

처음 이야기를 시작하며 말로는 “천구백 전에” “추위, 안개, 폭풍우, 질병, 유배, 죽음 밖에 없”었던 영국으로 항해해 온 정복자 로마인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말로는 이 이야기를 통해 과거 영국에서 행해진 로마인의 정복과 아프리카에 대한 유럽의 정복을 하나의 거대한 역사적 알레고리로 형상화한다. 콩고강의 상류로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크게 들려오는 밀림의 북소리를 “기독교 지역의 종소리에 비교할 만큼 심오한 의미를 지닌 소리”로 설명하는 말로의 진술은 이 참담한 알레고리를 보조적으로 설명해주는 장치이다.

말로는 정복자가 가진 것은 “포악한 힘”이고,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약하다고 하는 사실에서 생기게 된 우연한 결과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불미로운 행위(정복)를 대속해 주는 것은 이념밖에 없어요. 그 행위 이면에 숨은 이념이지. 감상적인 구실이 아니라 이념이라야 해. 그리고 그 이념에 대한 사심없는 믿음이 있어야지. 이 이념이야말로 우리가 설정해 놓고 그 앞에서 절을 하며 제물을 바칠 수 있는 무엇이거든…….”

정복에 대한 대속인 이념과 그 이념에 대한 “사심없는 믿음”이 제국의 정신건강법이라는 것을 지적하는 말로의 진술은 커츠가 “국제야만풍습억제협회”의 위촉을 받아 작성한 보고서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이다. 자신이 가진 “이념을 펼치기 위해” 작성된 보고서에서 커츠는 “위엄 있는 선의(善意)를 가지고 그 거대한 이국적 세계를 통치해야 한다는 생각”을 펼친다. 말로는 커츠의 이념에 대해 “열광”하며, “무한한 달변의 힘”, “불타고 있는 고귀한 말의 힘”을 느낀다. 하지만 곧 그는 보고서의 마지막 부분에 커츠가 “떨리는 손으로 갈겨”쓴 메모를 보고 온몸을 전율케 하는 두려움을 느낀다. 거기에는 커츠의 어두운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암흑의 고백이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모든 야만인들을 말살하라!”

피로 점철된 정복에 대한 진정한 대속은 이념 밖에 없다는 말로의 진술과 거대한 이국적 세계를 통치하는 선의의 어두운 내면에 대한 커츠의 고백은 휴머니즘과 합리성, 계몽의 의지로 설명되었던 근대의 사상이 단지 “결백의 수사학”에 불과하다는 프랑코 모레티의 지적과 아우슈비츠의 경험을 통해 근대적 사상의 파산을 선고한 아도르노를 상기시킨다.

“그 목소리! 목소리!”

좬암흑의 핵심좭에서 흥미로운 것은 소설 전반에서 커츠는 하나의 육체를 가진 고유한 대상으로 형상화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커츠는 사람들의 평판과 존경의 이야기를 통해 설명된다. 심지어 그를 상류에서 식민지 회사로 소환하였던 말로마저 커츠를 “유령”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하나의 목소리에 불과한 존재였어”라는 말로의 지적처럼 커츠는 아프리카를 이야기하는 유일한 주체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흑인은 스피박이 말한 “하위주체”도 아닌 철저한 타자이며, 암흑 그 자체이다. 이에 비해 커츠는 제국의 언어인 영어로 암흑의 심장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발성하는 유일한 주체-“커츠라는 사람을 만들어내는 데에 온 유럽이 기여”했다는 말로의 설명처럼 그는 유럽이며, 유럽의 정신 그 자체이다. 당연하게 커츠에 의해 이야기되는 아프리카는 유럽의 아프리카이며, 아프리카로 표상되는 유럽의 어두운 심연이다-이다.) 하지만 커츠는 타자없이 홀로 존재하는 결여된 주체에 불과하다. “말을 할 줄 모르고 아마 귀까지 먹었음에 틀림없”을 아프리카의 밀림에서 들려오는 “인간의 말을 전혀 닮지 않은” “군중의 심오한 중얼거림” 속에서 말로는 커츠에게 묻는다.

“당신은 저 소리의 뜻을 아십니까?” “내가 그 뜻을 모를 리 있겠어요?” 유예된 커츠의 대답은 그가 바라본 아프리카와 유럽인의 내면, 그 깊숙한 암흑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알려준다. 그것은 진정한 “공포! 공포!”이다.

결백의 수사학

유럽으로 돌아온 말로는 커츠를 과거의 기억으로 넘기기 위해 그의 약혼녀를 찾아간다. 말로는 “온 지구와 모든 인간을 삼키려는” 커츠의 광기에 찬 환영을 느끼며 약혼녀와 이야기를 나눈다. 약혼녀는 말로에게 커츠의 마지막 말이 무엇인지 묻는다. 말로는 자신과 그녀의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어둠의 끈질긴 속삭임-“공포! 공포!”-을 들으며, 그녀에게 거짓말을 한다. “그분의 마지막 한마디는 당신의 이름이었습니다.” 이렇게 “모든 야만인을 말살하라!”는 커츠의 광기는 말로의 거짓말을 통해 그녀(혹은 유럽인)가 “일생 동안 살아가면서 의지할 수 있는” 사심없는 믿음, 즉 거대한 선의(善意)로 전도된다.

소설의 말미는 모든 야만을 말살하려는 커츠의 광기가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과 이에 대한 사심없는 믿음으로 전도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폭력의 고해를 통해 정복은 이념으로 전환되고, 광기는 치유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이 인간에 대한 폭력과 살육의 기억을 가지고도 일상의 삶을 미끈하게 살아가는 ‘제국의 건강법’이며, ‘결백의 수사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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