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3.3.20 월 14:19
인기검색어 : 등록금 반환, 코로나19, 조교 문제
신문사소개 | 호수별 기사보기
> 뉴스 > 학술 서평 > 학술in동악
     
<동의보감>의 과학성은 어떻게 담보되는가
[156호] 2009년 09월 07일 (월) 박석준 @

 

<동의보감>의 과학성은 어떻게 담보되는가

 

 최근 유네스코에 <동의보감>이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의학서적으로는 세계 최초라는 명예도 얻었다. 그러나 이 소식이 전해지자 <동의보감>의 유네스코 등재에 대한 반응은 너무도 상이하게 벌어졌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한쪽에서는 우리 민족의 경사로 반겼고 다른 한쪽에서는 미신에 불과한 것, 그것도 과거의 일일 뿐이라고 폄하하였다. 이번 등재를 반기는 쪽에서도 한편에서는 <동의보감>을 과학화하자고 하였고 한편에서는 <동의보감>에서 한 치도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여기에는 어떤 문제가 들어 있는 것일까. 아니 <동의보감>이 대체 무엇이기에 이토록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일까.

 

 우리 주변에는 ‘동의보감’이 너무도 많다. 한의사들은 항상 <동의보감>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한마디에 그 사람이 말하는 내용은 더 이상의 검증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고 믿는다. 식당에 가면 어떤 음식이 어디에 좋다는 말을 하면서 ‘동의보감’에 그렇게 나와 있다고 한다(그렇지만, 많은 경우 실제 <동의보감>에 근거하지 않고 있거나 근거했다고 해도 부정확하게 인용하고 있다). 심지어는 최첨단이라고 하는 컴퓨터 관련 서적의 제목에도 ‘동의보감’이 들어 있다. 한 마디로 <동의보감>은 우리 민족의 많은 사람들에게, 적어도 감성적으로는 기독교의 바이블이나 불교의 불경과 같은 권위와 진리체계로 받아들여진 것 같다.

<동의보감>이 말하는 것

 이런 사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알다시피 <동의보감>은 이미 400년 전의 의서다. 거기에는 <동의보감>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이 지적하듯 미신에 불과한 이야기도 들어 있다. 물론 이런 부분은 극히 일부일 뿐이며 대부분은 오늘날에도 아무런 가감 없이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이론과 치료 방법이다. 더군다나 <동의보감>은 그 편찬 동기부터 민중성을 지향하고 있어서 누구나 자신의 병을 이해하고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재로 자신의 병을 스스로 치료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그래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지만, 출판계에는 바이블보다 더 많이 팔린 책이 <동의보감>이라는 말도 있다. 그만큼 <동의보감>은 대중성을 확보하고 있으며 오랜 세월 동안 민중들에 의해 검증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동의보감>이 갖는 대중적 친화성과 믿음에는 그만한 현실적인 근거가 있는 것이다.

 <동의보감>이 의학 지식의 보고라는 점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설혹 <동의보감>에 비판적인 사람일지라도 <동의보감>이 2000년을 넘게 이어온 한의학의 이론과 임상 경험을 압축한 책이라는 점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동의보감>에 실려 있는 일부 미신으로 치부되는 부분을 강조하는 사람조차도 <동의보감>에 의해 우리 민족이 살아왔다는 명백한 사실까지 부정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동의보감>이 단순한 경험의 산물이라면 굳이 유네스코에 등록될 이유가 없다. 그런 책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중국과 일본 등 한의계에는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동의보감>이 등재될 정도로 가치가 있는 부분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른 의서에는 없는 <동의보감>만의 독자성이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동의보감>의 번역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동의보감>은 수많은 의서 중의 하나, 다만 우리의 것이고 정리가 잘 된 의서, 임상에 활용하기에 편리한 의서 정도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1993년부터 <동의보감>의 번역에 들어가고 출판을 위해 교정을 보게 되면서 <동의보감>을 수 십 번 집중적으로 정독하고 난 뒤에야 󰡔동의보감󰡕은 다른 의서와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동의보감>의 번역을 시작하고 나서 10년이 더 지나서의 일이었다.

 그것은 <동의보감>은 일반적인 한의서가 아니라 동아시아의 전근대 의학 서적이라는 자각이었다. 동아시아는 서양, 특히 그리스 로마적 전통을 이어온 서양과 다르며 나아가 전근대는 근대와 다르다는 자각이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동의보감>이 다른 전근대의 의서와 달리 한의학의 탄생에서부터 바탕이 되었던 도교의 전통을 재확립하였다는 점(조선 선도仙道의 맥을 이은 부분도 있다), 특히 정기신(精氣神)이라는 관점에서 기존의 혼란스러웠던 의학 이론과 임상을 일관되게 정리한 점,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완성된 성리학 사회였다는 평가를 받는 조선의 중기에 그 사회의 사상과 사회제도, 삶의 방식과 혼연일체가 되어 실현된 의학체계였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동의보감>은 처음부터 끝까지 백성의 건강 주권이라는 관점을 실현하고 있다는 점도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그래서 필자는 2004년부터 󰡔동의보감󰡕의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 복지부와 협의하여 작업을 진행했던 것이다. 그 후 이 사업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진행되었지만 <동의보감>을 유네스코에 등재하려는 최초의 의도는 그런 것이었다.

근대적인, 너무도 근대적인

 오늘날 <동의보감>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은 소위 ‘과학’을 말한다. 이때 그 사람들이 말하는 ‘과학’이란 정확히 말하자면 근대 서양의 과학을 말한다. 그럼에도 그 사람들은 그 ‘과학’이 모든 시대에 적용되어야 하는 보편적인 진리이며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과학사에서는 이런 태도를 과학주의라고 부른다.

 이러한 과학주의의 기원은 멀리는 고대 그리스의 데모크리토스로 올라가는 원자론이다. 원자론 발생의 사회적 배경은 상품의 공정한 교환을 위한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이 원자론은 중세의 오랜 침묵을 거쳐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 부활하면서 <동의보감>이 완성되는 시기인 17세기에 들어 철학에서는 데카르트, 과학에서는 뉴턴에 의해 주요한 이론으로 확립된다. 그리고 이러한 과학주의는 교환가치의 실현을 최고의 목표로 삼는 자본주의와 결합하면서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는 힘이 되었다. 근대는 이러한 교환가치의 전면적 실현을 본질로 한다.

 반면에 데카르트나 뉴턴과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허준은 원자론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그것은 보통 기(氣) 일원론으로 불리는 세계였다. 그것은 원자론이 이성적 인식의 대상으로 삼았던 양적(量的)인 것보다는 질적(質的)인 것, 원자론이 봉사하고자 하는 상품의 교환(사용가치의 실현)보다는 상품 자체의 가치, 곧 사용가치의 실현을 우선으로 하는 세계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고 하는 조선시대의 직업관에서 보이듯이 교환은 동아시아의 전근대 사회에서는 그 사회를 파괴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그러므로 원자론과 같은 이론은 받아들여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반사회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이렇듯 모든 이론에는 항상 그것이 실현되는 역사적, 사회적 배경이 깔려 있는 것이며 이런 의미에서 과학을 포함한 모든 이론은 역사 사회 구속성을 갖는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과학, 정확하게는 서양 근대의 과학만을 유일한 과학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다. 동아시아 전근대 사회의 전통 속에서 살았고 그 전통을 제국주의(자본주의)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당한 식민지인들이 이제는 근대화의 화신이 되어가고 있다. 자신을 자본주의화한 제국주의보다 더욱 더 근대적인 사고와 삶의 방식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건강 주권 실현의 문제

 결국 <동의보감>이 제기하는 문제는 단순한 한양방 이해집단간의 밥그릇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근대화에 따른 전통과의 단절이라고 하는 민족적 감정의 문제만도 아니며 제국주의와 식민지라고 하는 경제적 이해의 문제만도 아니다. 의학과 의약품의 주권을 회복한다는 차원의 문제만도 아니다. 그것은 보다 근본적으로는 동양과 서양, 근대와 전근대의 대립이라는 문제이다. 나아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떤 사회를 만들어가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이 바탕에는 인간의 건강 주권을 어떻게 실현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깔려 있다. 바로 이런 고민의 단초를 제공하고 오늘의 우리를 돌아보는 반성의 거울로서 <동의보감>을 읽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동의보감>의 과학성은 담보될 수 있을 것이다.

박석준(들꽃피는 요양병원장, 동의과학연구소장)

ⓒ 동국대학원신문(http://www.dgugspres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페이스북 방문해 주세요!
더 많은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교육방송국 동국대학원신문 동대신문 동국포스트
동국대홈동국미디어컨텐츠 센터동대신문교육방송국동국포스트개인정보처리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4620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로 1길 30(필동30가 26) 동국대학교 대학본관 V(브이)동 1층
전화 : 02-2260-8762 | 팩스 : 02-2260-8762
발행인 : 윤재웅 | 편집인 : 조성환 | 편집장 : 장미희 | 발행처 : 동국대학교 대학미디어센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오솔미
Copyright DGUGSPRESS.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gugspress@dongguk.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