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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읽기]지루한 사람과 어울리지 마라
학계가 공정하고 우아하다는 환상을 한방에 깨뜨리다
[156호] 2009년 09월 07일 (월) 주일우 문지문화원 사이 기획실장
 
 
 

 역사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앞서 살았던 수많은 사람이 남긴 자료 속에서 흔적을 찾고 그것들을 정성스레 맞추어 시대상과 정신을 잡아낸다. 쓰는 사람이나 남아있는 사료 모두 어떤 종류의 편견을 담고 있기 마련이지만 가능하면 드러난 흔적 아래 숨겨진 진실을 밝히려고 애쓴다. 이런 역사학자들을 가장 고민하게 하는 사료 중 하나가 자서전이다. 어떤 일이든 현장에서 가장 가까이 있었던 당사자의 기록을 믿어야만 하겠지만, 사람의 기억은 생각보다 허술하고 쉽게 합리화에 동원된다. 사람 사는 것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믿는 편이라 점잖은 자서전에 꾸미거나 숨긴 것이 많을 것이라는 의심이 든다. 

  <지루한 사람과 어울리지 마라>는 점잖지 않다는 점에서 의심을 덜 산다. 이렇게까지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이것저것 재면서 진실을 감추진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하지만 제임스 왓슨이 이전에 썼던 <이중나선>과, 같은 시기에 대해서 증언한 프란시스 크릭의 <열광의 탐구>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부분이 있는 것을 보면 여전히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 모든 것을 감안해도 이 책의 솔직함은 통쾌하다. 왓슨이 크릭과 매일 점심을 먹었던 펍,이 글에서 DNA 구조 발견 50주년을 기념해서 건배하면서 처음 만난 노학자 왓슨은 둥글어진 얼굴과 눈매를 하고 있었다. 세월이 그의 날카로움을 무디게 했으리라는 생각을 보기 좋게 날려버린 것이 이 자서전이다. 맥주 한잔에 불콰해진, 맘씨 좋은 할아버지라는 인상을 여지없이 뭉개버린다. 트위터에 계정을 만들고 하루하루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단상을 써가겠다는 야무진 계획을 스스로의 소심함으로 무산시켜버린 나 같은 종자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경지.

 주변 사람들에 대한 솔직한 감정과 평가를 바탕으로 인생을 반추한 이 책에서 왓슨은 실험실은 엄숙하고 진리에 대한 열정으로 무장한 진지한 사람들만 득실댈 것이라는 상상을 여지없이 날려버린다.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과학에 대한 편견, 혹은 선입견을 버리도록 만드는 일이다. 과학에 대한 메타연구의 성과들이 논리적으로 진리만을 추구하는 과학, 인간이나 사회적 편견에서는 한걸음 떨어져 있는 과학의 이미지가 틀렸다는 것을 이야기한 지 제법 시간이 지났지만, 과학자자신의 목소리로 그 현장을 이렇게 생생하게 보고하는 글은 드물다. 과학의 세계 안에서도 정치 논리와 경제 경영의 논리로 가치가 평가되고 패러다임과 패권의 향배도 그 결과에 따른다는 것이 왓슨의 생각이다. 그래서 ‘연구실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 되지 마라’, ‘노벨상 상금은 집 장만에 써라 ’, ‘운동은 지적 우울을 몰아내는 특효약이다’, ‘신설학술지의 편집진으로 참여해라’와 같은 실질적인 조언들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이 책에서 밝힌 ‘솔직한’ 견해는 DNA구조 발견에서 인간게놈프로젝트까지 생명과 관련된 연구의 중심에 반세기 이상 서 있었던 왓슨을 연구 현장에서 떠나도록 만들었다. 이 책에서 왓슨은 과학 잠재력의 성차를 언급해 하버드 대학 총장직을 떠난 래리 서머스의 발언을 지지한다고 선언한다. 직관적으로 볼 때 지리적으로 떨어져 진화해 온 인종들이 똑같은 지적 능력을 키웠으리라고 믿을 확실한 근거는 없다고 주장한다. 앞으로 15년 안에 지적 능력과 유전적 요인 사이가 모두 밝혀져 이를 둘러싼 논란이 종식될 것으로 예측한다. 왓슨은 스스로 ‘논란이 될 듯한 권고를 하려면 정치적 후원을 등에 업어야 한다’는 조언을 해 놓고 그것을 무시했다. 영국 신문 <선데이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한술 더 떠서 ‘흑인을 고용해 본 사람들은 내 말 뜻을 알 것이다’라고 했다. 결과는 40년간 재직한 콜드스프링하버 연구소 소장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었다. 왓슨을 불명예 퇴진으로 이끈 이 책의 결론이 과학적 진실과 어떻게 조우할지는 15년을 기다려 보아야 판가름이 날 것이다.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은, 그의 독설에 끌려 그 사이사이에 있는 인간 지적 성장의 이력을 놓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주일우 (문지문화원 사이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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