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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lassic]관계의 미학 군주론, 권력과 정치를 말하다
[156호] 2009년 09월 07일 (월) 김경희 @

 

 

  『군주론』의 전체 주제는 어떻게 권력을 획득하고 그것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에 맞추어져 있다. 그것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비르투(virtù)이다. 그런데 정치공동체에는 군주 혼자만 사는 것이 아니라 인민과 귀족들이 서로 반목하고 갈등하며 사는 곳이다. 다시 말해『군주론』의 주요 등장인물은 군주 일인이 아니라, 인민, 귀족 그리고 군주이다. 이들의 관계가 곧 권력관계이고, 그 권력관계를 잘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정치적 역량(virtù)이다. 

  그런데 귀족은 수많은 자원을 가지고 있기에 지배하려 들고, 인민들을 수탈하려 한다. 반면 인민들은 귀족들의 억압적 지배로부터 자유롭고 싶어 한다. 여기에 호시탐탐 자국을 노리는 외국의 힘에 대한 견제도 필요하다. 국내정치에서는 귀족과 인민들 간의 대립을 잘 조정하고, 국외적으로는 강대국의 야욕을 제어해야 하는 과제가 군주에게 주어진다. 이것을 위해 군주는 자신의 굳건한 힘에 의지해야 한다. 이것은 바로 자국군과 인민의 지지로부터 나온다.

  한 정치공동체에서 다수를 점하며, 야망이나 오만보다는 자유롭게 사는 것에 만족하는 인민들(『군주론』9장)은 자국군의 구성원이자 군주의 지지층이 되어야 한다. 이에 반해 소수이면서 많은 자원을 독점한 채 오만과 지배욕에 휩싸여 있는 귀족들은 군주의 잠재적 경쟁자이자 적으로 부각된다.

  귀족을 제어하고 인민의 지지를 얻어내야만 하는 군주의 과제는 『군주론』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체자레 보르지아(Cesare Borgia)의 행적에 대한 설명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바로 시니갈리아(Sinigaglia) 사건과 레미로 데 오르코(Remirro de Orco) 사건이다. 시니갈리아 사건은 로마의 강력한 군벌(軍閥)로서 보르지아에게 충성을 바치지 않고 있던 오르시니(Orsini)가를 속여서 시니갈리아로 불러들인 다음 미리 매복시킨 부하들로 하여금 단번에 제거하도록 한 사건이다. 이것을 계기로 보르지아는 자국군을 확충하고 확실한 기반을 닦을 수 있었다. 또한 보르지아는 그의 충복 레미로 데 오르코를 로마냐 지역에 파견한다. 로마냐 지역은 특히 귀족들의 전횡이 심했던 지역으로 인민들의 원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비정하고 잔인했던 데 오르코는 귀족들을 단시간에 제어하고 질서를 수립하였다. 그러나 비록 자신들을 위하고 귀족들을 제어하기 위한 잔인함이었지만 인민들이 이에 대해 불만을 품고 미움을 가지게 되자 보르지아는 데 오르코를 단숨에 참수하게 된다. 이러한 과감한 조치들을 통해 보르지아는 단숨에 혼란 극복과 함께 인민의 신망을 얻게 된다. 이 두 사건을 통해 보르지아는 전횡을 일삼는 귀족 및 군벌을 제어 하고 인민의 지지를 획득하여 자국군을 강화한다.

  마키아벨리가 보르지아를 통해 포착한 정치적 지혜는 역관계 속에서 그 상황과 역동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에 냉정히 대처하는 능력이다. 귀족과 인민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 경쟁하고 대립하는 상황은 도덕이 통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다시 말해 법질서가 부재하는 상황인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의 세 번째 부분에서 기존의 도덕정치가 현실정치에서는 통용될 수 없음을 지적하는 배경이 바로 여기에 있다.

  마키아벨리는 정치를 관계 속에서 이해했다. 인민, 귀족 그리고 군주간의 권력관계가 그것이다. 무질서에서 질서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전횡을 일삼는 강력한 귀족세력을 제어해야 했고, 인민의 지지를 등에 업어야 했다. 강력한 귀족들을 제어하기 위해 때로는 비윤리적인 수단을 사용해야 했기에 잔인한 군주를 옹호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이러한 군주가 폭군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사익만을 추구하는 군주를 그리지는 않았던 것이다. 반인반수(半人半獸)의 행위를 해서라도 군주가 추구해야 하는 목표는 공익의 실현과 국가의 생존을 보전하는 것이었다.『군주론』의 마지막 장에서 언급되듯이 이탈리아의 통일과 그것을 통한 외세로부터의 해방은 그 한 예인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는 뚜렷한 한계를 지니고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인간의 역량은 그 소유자의 수명과 같이 하기 때문이다. 『군주론』25장에서 마키아벨리는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예를 통해 그것을 명확히 하고 있다. 율리우스 2세에게 성공과 명성을 가져다준 그의 결단력과 과감성은 그가 조금 더 오래 살았더라면 실패를 맛보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상황이 변하여 과단성이 통하지 않는 때가 오면 그는 실패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한 사람이 가진 능력의 한계는 명확한 것이기에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그것에 크게 의존하는 군주제는 그만큼 불안정한 것이다.

   흔히 이야기되듯이『군주론』은 성공을 위한 지침서도 권모술수를 설파하는 저서도 아니다. 그것은 정치, 나아가 인간들 간의 관계가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인간역량의 위대함과 동시에 그것의 한계성, 둘 다를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인간은 선하지도 그렇다고 악하지도 않음을 또한 보여준다. 인간과 그들이 사는 정치세계의 양면성과 아이러니를 보여주기에 그것은 인간세계와 정치에 대해 끊임없이 숙고하게 만드는 저서이다. 이것이 현대인인 우리가 『군주론』을 아직도 읽는 이유일 것이다.


 

김경희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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