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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을 말하다]
하늘의 별이 빛나던 시대, 게오르그 루카치
[156호] 2009년 09월 07일 (월) 오민석 문학평론가, 단국대 교수

1979년, 10‧26 사태가 나기 얼마 전이었다. 나는 세종문화회관 분수대 골목에 있던 한 조그만 책방을 찾아갔다. 게오르그 루카치(G. Lukács)의 『소설의 이론』 영역판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당시에는 조금이라도 진보적 색깔이 있는 책은 거의 모두가 소위 ‘금서’인 시절이었는데, 유독 이 서점에 가면 웬만한 금서는 다 구할 수 있었다. 우리 친구들은 이 책방을 이름 하여 “금서총판”이라 불렀다. 당시 대학 2학년의 청춘이었던 나는 이 서점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는데, 신기한 것은 이 서점의 주인이 자주 바뀐다는 것이었다. 그랬다. 책을 파는 일도 ‘운동’이었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단지 (좋은?!) 책을 팔았다는 이유로 책방주인이 감옥에 가는 세상을 상상해보라. 그런 세상이 있었다. 그런데 책을 판 사람만이 아니라, 그런 책을 사서 소지한 사람들도 체포의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나는 늘 떨리는 마음으로 이 집 문턱을 넘어 들어갔고, 숨을 죽이며 이 집을 나왔다.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을 구하러 가던 날도 마찬가지였다.

오전에 학교에서 교련수업을 마친 나는 누가 보아도 헐랭이 대학생이 분명한 장발에 교련복 차림으로 이 책방을 찾았다. 그리고는 굵고 검은 색의 도수 높은 뿔테 안경을 끼고 있던, 꼭 대학 교수처럼 생긴 주인에게 물었다.

루카치의 씨어리 오브 더 나블(Theory of the Novel) 있어요 책방 주인은 나를 빤히 들여다보았다. 그 눈길에는 알 수 없는 의심과 의혹이 가득 차 있었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소위 “짭새”와 진짜 손님을 구별하는 것도 당시 이 책방 주인의 주된 임무였던 것이다.

그는 대답 대신 내게 물었다.

“자네, 헤겔의 『미학』은 읽었나?”

당시에 풋내기 대학생으로는 나름 꽤 많은 독서량에 은근히 자만스럽기까지 했던 나는 솔직하게 그 책을 아직 읽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헤겔의 『미학』을 다 읽은 후에 다시 오라고 말했다. 헤겔을 모르고 루카치를 읽는다는 것은 순서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논조였다.

 책을 사러갔다가 난데없이 지적 봉변을 당한 나는 자존심을 ‘완죤히’ 구긴 채 쫓겨나고 말았다. 나는 헤겔의 『미학』을 읽지 않는 것이 무슨 큰 수치라도 되는 양, 꽤 두꺼웠던 그 책의 영문판을 구해 빠른 속도로 읽어낸 후 다시 그 책방을 방문하였고, 몇 가지 간단한 퀴즈 테스트(?!)를 거친 후에야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을 손에 겨우 넣을 수 있었다.  불심검문에 걸릴까봐 노심초사하며 골방에 들어온 나는 떨리는 가슴으로 책장을 열었다. 그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하늘의 빛나는 별들을 보고, 갈 수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환히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 시대에는 모든 것이 새롭지만 친숙하였고, 모험에 가득 차 있지만 세상은 우리가 뜻대로 할 수 있는 소유물이었다.

세계는 넓지만 마치 자기 집과 다를 바 없었는데, 이는 우리의 영혼 속에서 타오르는 불이 하늘에 빛나는 별들과 본질적으로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군부독재 하에서 사회뿐만 아니라 자신의 내면까지 포함해 모든 것(!)의 철저한 소외와 분열에 시달리던 청년 대학생이었던 내게 이 문장은 그 자체 큰 압권이었다. 생각해보라. 별빛이 우리가 갈 길을 환히 밝혀주던 시대가 있었다고.

생각해보라 우리의 영혼 속에서 타오르는 불이 하늘에 빛나는 별빛과 다를 바 없던 시절이 있었다고. 그런데 그런 시절은 사라지고 없다고. 그런데 그와 같은 통합과 화평의 본질에 대한 향수를 져버리지 못하는 소수의 “문제적 개인들”이 있다고. 그리고 이 “문제적 개인들”이 바로 소설을 쓰는 자들이라는 루카치의 주장을. 그때까지 문학을 단지 ‘경험’하였지 ‘분석’해보는데 익숙지 않았던 내게 루카치는 이렇게 해서 문학연구 혹은 문학평론에의 길로 나를 이끌었다.

루카치라는 긴 통로를 지나는데 몇 년이 걸렸고, 나는 그 무렵 루시앙 골드만을 위시한 다른 명문장의 이론가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레 문학연구자 혹은 평론가가 되어갔다. 나는 왜 스스로 “문제적 개인”이 되어 문학을 연구하고 평론하는가? 간단히 말해, 루카치처럼 나도 하늘의 빛나는 별이 우리의 갈 길을 밝혀주던 아름다운 시절의 향수를 영원히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민석(문학평론가, 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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