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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럴리스트가 바라본 ‘인간희극’
마르셀 에메의 고양이 우화
[155호] 2009년 06월 01일 (월) 이용석 문학평론가
   
 
   
 

저녁 6시. 기계적으로 시계를 바라본다. 하루의 일과가 끝났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잠시 닫힌 유리창 너머를 바라본다. 그것은 태양이다. 구름이다. 노을이다. 차에서 내려, 높이 솟은 건물을 무심히 올려본다. 벌집마냥 밀집된 공간으로 몸을 쑤셔 넣는다. 문 앞 복도에 이르러 잠시 한숨을 들인다. 그리고는 눈을 감은 채 짧은 몽상에 잠긴다. 벽을 통과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이웃집 여자와 사랑을 나누리라. 

천상의 은빛 고리. 모든 이들이 찬탄해마지 않던 신적인 경건함과 세속적인 정의로움. 가끔은 그 화려한 광채와 머리 위를 짓누르는 무게가 부담스럽다. 주위의 존경어린 시선은 메두사의 서슬 퍼런 눈길마냥 온몸을 마비시킨다. 결국 고심 끝에 결심을 한다. 신성한 은빛 고리를 떼어내기 위해 온갖 타락을 일삼기로. 교만, 분노, 시기, 나태, 육욕. 그러나 영광의 둥근테는 그대로이다. 이젠 신의 무한한 자비로움에 감사의 기도를 올리며 타락의 포도주를 들이키리라.

‘20세기의 라블레’, ‘페로의 후계자’로 불리는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에메(1902~1967)는 우리에게 아직 낯설다. 그는 특히 자신의 대표작인 단편집 『착한 고양이 알퐁소 Les Contes du chat perche』와 장편소설 『초록암말 La jument verte』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동물을 작품의 주인공으로 등장시킴으로써, 우화작가로서 보다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가 작품 속에 동물을 등장시킨다고 하여, 그의 작품들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그는 마치 흙을 빚어 영(靈)의 불꽃을 유폐시킨 창조주와 마찬가지로, 동물의 거죽에 상상의 불씨를 심어놓음으로써 또 다른 형태의 인격체를 탄생시킨 ‘작가-신(神)’이다.

마르셀 에메의 상상은 매우 기발하다. 그러나 그 상상은 현실을 토대로 하고 있기에 매우 신랄하며, 쓰디 쓴 뒷맛을 간직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 사내는 벽을 통과하는 능력을 발휘하다가 벽 속에 갇히고 만다. 다른 사내는 인간적 욕망에서 비롯된 타락을 신의 자비로움으로 합리화한다. 총 17편으로 이루어진 『착한 고양이 알퐁소』에서는 그의 상상이 더욱 빛을 발한다. 공작의 우아한 자태와 아름다운 깃털을 부러워한 나머지, 뚱뚱한 돼지가 사과 씨 다이어트에 돌입한다.

그러나 돼지는 거만한 행위에 있어서는 공작을 닮게 되지만, 축 늘어진 피부에 휘청거리는 다리를 끌고 다니면서도 나르시스의 욕망에 사로잡혀 자신의 처참한 몰골을 깨닫지 못한다. 창문을 통해 두 소녀 델핀느와 마리네트를 훔쳐보던 늑대는 페로의 우화에 나오는 ‘빨간 두건’의 늑대와 달리, 천진난만한 소녀들을 바라보며 자신 안에 내재돼 있던 착한 심성을 발견하고는 스스로 놀란다.

그러나 그도 어쩔 수 없는 늑대인지라, 불현듯 솟아오른 욕망에 사로잡혀서는 소녀들을 뱃속으로 집어삼킨다. 거만하게도 자신의 용기를 뽐내던 허풍쟁이 까만 수탉은 소녀들에게 여우를 잡으러간다며 큰소리를 친다. 그러나 여우의 뜻밖의 호의와 말재주에 넘어간 나머지, 농장의 모든 가금들에게 숲 속에서의 자유로운 삶이 아닌 죽음의 두려움을 안긴다.

그 외에도 『착한 고양이 알퐁소』에서는 화장을 하여 비를 내리게 하는 고양이 알퐁소를 볼 수 있고, ‘노아의 방주’ 안에서 코끼리로 변신하는 하얀 암탉을 만날 수도 있다. 또한 온순하고 인내심 있는 당나귀와 달리 다혈질적이면서 가부장적인 거위를 볼 수 있고, 육식을 삼가며 농장의 동물들과 친분을 쌓지만 결국 스스로가 만든 금기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표범을 만날 수도 있다.

이와 같이 그의 우화 속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존재이다. 그들은 욕망에 사로잡힌 채 운명의 심판대 앞에 선 바로 우리의 모습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무리한 다이어트로 신경증까지 보이는 돼지를 보며 마음껏 웃을 수 없고, 비록 순간의 충동으로 소녀들을 삼켰으나 천성적인 선함으로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늑대를 호되게 야단칠 수 없다. 그것은 베르그송(Henri Bergson)이 지적했듯이, 동물의 모습 속에서 인간과의 유사함, 더욱 정확히 말해서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에 이르는 일종의 ‘인간희극’이기 때문이다.

비평가 폴 방드롬(Pol Vandromme)은 마르셀 에메를 ‘진정한 모럴리스트’로 간주하였다. 다시 말해 마르셀 에메는 인간 삶의 모습을 어떠한 작위로 꾸미지 않은 채 특유의 자연스러움으로 묘사했던 것이다. 비록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이 욕망과 운명의 굴레 속에서 처참하게 무너진다고 해서, 그를 염세주의자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동시대가 실존주의의 광풍에 휩싸인 시기라 하여, 작품에 나타나는 ‘부담스러운 자유’를 실존주의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그는 신문기자로 활동하던 당시 사형수의 최후를 목격하며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였고, 문인으로서의 명성을 얻은 후에는 2차 대전의 나치 협력자들에 대한 무자비한 숙청을 반대하기도 하였다. 그가 그와 같은 행동에 선뜻 나설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존재적 한계를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의 우화 속에서 관용의 미덕과 함께 우애를 통한 희망의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다. 농장 주인의 칼날과 소금 그릇에 무기력할 수밖에 없던 돼지가 동료들의 도움으로 새의 깃털을 단 채 하늘로 날아오른다니,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감동적인 희망의 찬가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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