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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캡슐 행사의 역사적 의미와 두 가지 제안
[136호] 2006년 10월 09일 (월) 황진태 대자보 기자

1985년 남산 정상에는 중앙일보가 기획한 타임캡슐이 봉안되었고, 1996 남산한옥마을에는 서울정도 600년을 기념하여 또 하나의 타임캡슐이 봉안되었으며, 올해 들어 남산공원 아래 위치한 용산고가 개교 60주년이라 하여 타임캡슐을 심었다. 의미 있는 행사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아 유감스럽지만, 남산의 입장에서 보자면 ‘수난시대’라 불러도 지나침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남산의 수난이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올해 개교 백주년을 맞이하는 동국대학교에서도 타임캡슐 봉안식을 위해 캡슐에 소장될 각종 물품을 공모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기 때문이다. 지난 2005년 고려대학교에서도 개교 백주년을 맞아 ‘리포트, 답안지, 출석부’ 등을 소장하여 봉안하는 행사를 치룬 바 있다. 이런 차에 동국대학교도 ‘리포트, 답안지’ 등을 봉안한다고 하니 모방의 느낌이 강해 다소 아쉽다. 남산의 생태학적 시선에서 볼 때도, 이미 뿌리박은 여러 개의 타임캡슐이 있다는 것을 감안하여 동국대학의 타임캡슐 행사가 얼마나 빛을 발할지도 솔직히 의문이다.

물론 백주년 행사라고 해서 반드시 다른 학교와 구별되는 특별한 그 무엇이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백주년도 안 끝났는데 벌써부터 이백주년을 걱정하는 학교 당국의 노력 자체를 문제 삼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다. 다만 필자 역시 이번 행사를 유용하게 이용했으면 하여 소장품 목록 몇 가지를 추천하고 싶을 뿐이다.
얼마 전 필자는 동국대학교 홍보실에서 ‘강정구 교수가 조병옥에 대한 친일파 주장으로 기소당했다’고 보도한 조선일보의 토막기사를 학내 게시판에 게재했다고 들었다. 그러나 이미 직위가 해제된 교수, 다시 말해 동국대학교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인사에 대한 이런 지나친 관심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반대로 친일행적이 분명했던 시인 서정주에 대해서는 왜 위의 사례처럼 토막 기사까지 찾아가며 복사하는 부지런함을 떨지 못하는가. 어쨌든 학교 홍보실에서 강정구 교수의 기사를 도장까지 찍으면서 인증한 것으로 보아, 타임캡슐 소장품으로는 안성맞춤이다는 생각이다.

이것으로 2106년 5월 8일 개교 이백주년 행사가 벌어질 바로 그 자리에서 학생들은 강정구 교수를 직위해제한 동국대학교의 행동을 다시금 냉정히 돌이켜보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직위 해제가 옳고 그름을 떠나, 백년이 지난 그 때쯤이면 지금 보다는 훨씬 더 객관적인 잣대가 존재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더불어 작가적 역량과는 별도로, 친일파에서 군사독재정권을 옹호까지 한 시인의 시가 백주년 기념시로 대외에 선전되었다는 소식을 접한다면, 미래의 학생들은 도대체 어떤 판단을 내릴까? 자랑스러워할 수도 있겠지만, 부끄러워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것 외에 한 가지 더 추천하고 싶다. 타임캡슐 소장품으로 학생들은 물론 교수들의 다이어리도 포함시키면 어떠할까. 선배학자의 친일성향을 지적한 논문을 썼다가 괘씸죄로 10여년 가까이 무학점 강의를 하며 고생했던 서울대 김민수 교수처럼 되기 싫어서, 드뤠퓌스를 옹호한 에밀 졸라처럼 ‘나를 고소하라’고 말할 용기가 없었다는 자조적인 고백이 담긴 교수의 다이어리를 봉안하는 것을 어떨까. 물론 교수 개개인의 성향에 차이가 있고, 그 차이를 무시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그런 자조적 독백이 담긴 다이어리가 있어야 된다는 생각이고, 또 분명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러나 “소장용 다이어리는 타임캡슐 위원회에서 선정(탈락시 반환하지 않음)”이라는 구절이 필자를 아쉽게 만든다. 타임캡슐의 목록 선정은 투명해야 한다. 타임캡슐 위원회에서 소장품을 ‘선정’한다는 것 자체가 다분히 정치적 여과장치로 읽힐 수 있다. 물론 모든 사람의 소장품을 봉안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타임캡슐의 부피도 고려해야 하겠기 때문이고, 학교와 전혀 상관없는 사적인 기록은 공적인 행사의 의미를 퇴조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임캡슐 행사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백년 후의 후배들에게, 그 어떤 여과장치도 없이, 백년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날 것 그대로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지금은 판단할 수 없는 수많은 가치들을 그네들의 가치 체계에 따라 판단할 수 있도록 ‘열린 자료’를 넘겨줘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이번 동국대학교 건학 백주년 타임캡슐 행사가 한바탕의 쇼로 끝나지 않길 진정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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