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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학사회를 진단한다Ⅱ
‘논문 부풀리기’를 치유하기 위한 몇 가지 방안
[136호] 2006년 10월 09일 (월) 신정민 교수신문 기자
“표절한 교수들만 대학에서 내보내도 지금 있는 시간강사들 모두 자리 잡을 텐데요…”
“글쎄요. 들어갈 사람도 별로 없지 않을까요?”


새로운 연구윤리규정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 사태를 계기로 학단협과 민교협에서 공동주최한 토론회의 말미에 나온 위 대화는 3시간에 걸친 토론의 긴장을 녹이며 참가자들을 가장 많이 웃겼다. 아무튼 현 대학사회에서 이 말은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교수들로서는 지난 연말부터 올 여름까지가 상당히 수치스러운 기간이었을 것이다. 오죽하면 신문사에 “교수사회가 이미 만신창이가 됐으니 이제는 음지보다는 양지를 많이 보여줬으면 한다’는 부탁전화가 오겠는가. 연구자들은 값비싼 윤리수업을 들으면서, 대학과 학회에서도 현재 새로운 연구윤리 규정을 만드느라 나름 분주한 모습이다.

황우석 박사가 사이언스에 게재한 논문이 데이터 조작으로 밝혀진 이후, 과기부는 지속적으로 연구윤리 토론회와 공청회를 개최해, 그 성과로 ‘연구윤리지침’을 마련했다. 과기부의 ‘지침’이 각 대학에 내려지면, 이를 토대로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연구윤리를 포함해 올해 안으로 자체 세부규정을 제정, 내년부터 시행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또한 교육부는 학계에 만연한 연구부정행위가 도를 넘었다고 판단했는지, 국내 연구윤리를 글로벌스탠다드에 맞춘다는 취지에서 미국 ‘연구윤리 소개’ 책자를 번역해 ‘황 사태’ 이후 절묘한 타이밍으로 각 대학에 뿌렸다. 교육부는 외국유학생을 위한 ‘연구윤리가이드’도 번역해 소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국내 학계에 연구윤리 규범을 만들 수 있는 기초 조사연구가 안 돼 있기 때문에 급한대로 번역·배포한 것이다.

‘논문 부풀리기’의 실태

김병준 전 부총리가 교수사회에 던져준 문제 중에서 연구자들이 냉철하게 판단하지 못했던 부문은 ‘논문 부풀리기’였다. 1단계 BK21 책임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자신의 연구 실적을 부풀려 보고했다는 의혹이 부총리 자리에서 낙마케한 가장 큰 요인이었지만 학계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아직 정신을 덜 차린 것일까.
지방의 한 사립대에서 주요 보직을 맡고 있던 한 교수는 몇 년 전 20년 전의 석사논문을 재탕해 논문을 급조했다가 이를 고발하는 투서가 학내외 게시판을 떠돌자 보직을 내놓았으며, 지방 국립대에 임용된 한 신임교수는 편집위원장으로 있는 지도교수의 요청으로 교내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했다가, 그렇게 논문을 썩히는 게 억울해 약간 수정을 거친 후 등재지에 중복투고, 업적부풀리기 의혹에 휘말려 결국 해임을 종용받고 있는 사태가 발생하고 말았다.

최근에는 한 편의 논문이 대여섯 편으로 증식되는, ‘손오공 머리칼에 입김불기’ 같은 현란한 자기복제술이 신문 지면에서 적발되기도 했다. 또한 공동연구를 수행하면서 함께 모은 자료를 합의 없이 빼돌려 논문으로 선수를 처버리는 사례도 있으며, 제자와 함께 공저한 오래전 발표논문을 재구성해 단독저서에 올리는 교수들도 요즘 부지기수로 적발되고 있다. 이들을 모두 문제 삼으려면 신문을 증면해도 모자랄 정도다.

논문의 위상이 추락한 이유

교수사회에서 논문의 위상이 왜 이렇게까지 추락했는가. 그 이면에는 몇 가지 중요한 배경이 있다. 대학의 교원 임용·재임용·승급·승진시 가장 높게 반영되는 부분이 ‘논문 발표수’다. 비전임, 전임 관계없이 안정적인 자리보전을 위해서는 장기적인 연구나 저술 혹은 해외명저를 번역하느니 등재학술지에 논문 한편 발표하는 게 우선이다. 이어 투고원고의 절대 빈곤에 시달리는 교내학술지를 살리기 위해, 혹은 자신의 연구성과를 보다 많은 연구자(독자)들에게 알리고 조언을 구하기 위해 선의의 중복게재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기존 논문을 재활용할 때 원 출처를 밝히지 않는 것은, 학자에겐 치명타다. 이런 최소기준조차 관행이란 이름으로 합리화된다면 우리 사회는 아마 가능성이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논문 부풀리기’ 현상은 한국학술진흥재단(학진)이 학술지의 질적 제고를 위해 지난 1998년부터 학술지 지원사업을 시작하면서 본격화됐다. 이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질 좋은 학술지의 발간비용을 일부 대준다는 취지는 좋다. 하지만 문제는 대학의 대응이었다. 대학에서는 교원의 능력을 평가할 자체 기준을 엄밀하게 세우기보다 학진 등재지에 실린 논문이면 마치 KS 마크라도 붙은 양 무조건 저술보다 더 높은 점수를 매기니, 학회들이 너도나도 등재지가 되려고 나설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학계의 인력풀은 한정돼 있는데, 1년에 일정한 편수 이상의 논문을 실어야 하니 논문을 만들게 되고, 여기저기서 논문을 만들어대니 에라 모르겠다 나도 만든다는 식으로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자연스럽게 교내에서 발간되는 논총에 위기를 안겼다. 논문 투고율이 급격하게 줄어들어 담당 교수는 누대에 걸쳐 이어진 교내논총의 명맥을 잇기 위해 대학원생이나 자신의 지도제자들을 동원해 논문을 게재토록 한다. 하지만 비등재지인 교내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은 연구업적에 산정되지 않을뿐더러, 발간된 논문집은 연구소 구석에 짐짝처럼 쌓여갈 뿐이다. 그마저 내지 않으면 교내에서 1년에 한 번씩 연구소를 평가할 때 업적점수가 모자라서 아예 문을 닫아야 할 판이기 때문이다.

논문 복제의 다양한 유형

이런 배경들이 겹쳐 논문들이 과잉 생산되면서, 복제의 유형도 다양화되고 고도화되는 모습을 보인다. 현재까지 통용되는 대표적인 유형들은 1) 같은 내용의 논문을 두 종의 학술지에 중복게재. 2) 제목이나 유사단어, 문단을 바꿔서 투고. 3) 국내 발표한 논문을 번역해 외국에서 발표하거나 그 역의 경우 4) 기존 논문에 한 章을 첨가하거나 서론, 결론부분을 보완. 5) 기존 논문을 요약하거나 말을 길게 늘려 써서 중복 게재. 5) 章의 순서를 교묘하게 바꿔서 시각적 착란 유도. 6) 최신 통계자료를 업데이트해서 신형 논문인 것처럼 위장. 7) 붕어빵 찍듯이 동일한 소재를 같은 분석틀에 여러 개 넣어 한꺼번에 돌리고, 하나씩 꺼내서 팔기 등이다. 그리고 이를 누군가가 문제 삼으면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고 변명하기 정도도 추가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런 비윤리적 행위에 대해 학자사회는 이제 진정으로 반성해야 한다. 협소한 전공학계에서 동학들에게 조금만 관심을 갖는다면, 누가 어떤 연구를 하는지 알 수 있지만 학계는 자신의 분과 외에는 관심이 없다.

그리고 직접적인 피해를 당하지 않았으면 문제로 삼지 않는 문화가 생각보다 심각할 정도로 체질화되어 있다. 또한 학회 학술지 게재 심사위원들과 편집위원들은 논문이 접수되면 투고자의 예전 논문과 제목과 목차 정도는 대조해보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투고된 논문의 내용만을 심사하는 것도 문제다. 그리고 일부에서 ‘표절’과 더불어 ‘자기복제’ 혐의를 문제 삼더라도 온정주의와 학회 이미지, 심사위원의 자존심을 생각해 회피하거나,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는 등등의 문화는 빨리 바뀌어야 한다.

판옵티콘이 팡팡 돌아가는 정보사회에서 이제 개인의 이력은 대중에게 환하게 개방된다. 국회도서관의 PDF 서비스를 이용하면 몇 십년 전의 논문도 컴퓨터 앞에 앉아서 요즘 논문과 비교해서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학진에서 개발해서 돌리고 있는 논문목록 DB(KCI)가 향후 몇 년간 좀 더 정교해진다면, 지금까지 연구자들이 어떤 논문을 썼는지, 그 논문을 인용하고 있는 논문은 무엇인지 등 자신이 논문을 쓸 때 이용하는 지식 네트워크, 주변의 친한 학자들까지도 모조리 검색된다. 이런 상황에서 계속 자기복제의 안일한 길을 걷겠다면 그는 자신을 제물로 바치는 순교자에 가깝다.

학자와 연구자들의 인식전환 필요

그렇다면 해결방안은 무엇일까. 가장 우선시 돼야할 점은 윤리의식이 마비된 일부 학회와 연구자들의 인식 전환이다. 그 다음은 이런 연구자들이 주체적으로 대학을 설득해서 업적평가를 할 때 양보다 질을 심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내야 한다. 학진은 인센티브와 패널티제를 실시해 학술지 관리를 지금보다 훨씬 엄격히 해야 하고, 학진등재지라면 멀리서 보더라도 빛이 번쩍번쩍 날 정도로 잘 관리를 해야 한다. 이는 연구자(학회)-대학-정부 상호간에 유기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표절 및 자기복제논문을 투고했을 시, 2년간 학회학술지 논문게재 금지 등의 미약한 제재보다는, 학계와 대학에 더 이상 발붙일 수 없도록 퇴출시키고, 해당논문을 심사했던 심사위원에게도 책임을 묻는 구조가 돼야 한다. 심사위원이 책임지지 않는다면 현재와 같은 열악한 구조에서 누가 제대로 심사를 하겠는가. 미국의 경우 동료평가제도를 실시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어느 정도 거름장치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지만, 한국의 경우 아직 동료평가가 지극히 형식적이라 개선이 시급하다. 결국 표절은 학계에서 판단을 내려야 한다.

대학에서는 SCI나 학진에 기대 연구자를 평가하기보다는 편수는 적지만 오랜 기간을 두고 준비한 독창적이고 알찬 내용의 박사논문과 저서, 논문을 높게 평가할 수 있는 내부심사제를 갖춰야 한다. 그런 능력이 없는 대학은 국제적 연구경쟁력도 갖출 수 없다.

국가에서 표절이나 중복게재에 대한 기준을 만들고 관리하는 것보다 각 분과학문별로 고유한 특성과 여건에 맞게 표절 및 연구윤리 매뉴얼을 만들어 이를 학문 전체의 규정으로 귀납적으로 만들어가는 과정도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추진해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나간 잘못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가 좀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다. 수십 년 전 저지른 한 건의 잘못 때문에 지도 제자를 수십, 수백 명이나 배출하고 정년을 몇 년 앞둔 학과의 노교수가 언론에 등장하고 가십거리가 된다면 그 밑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정서에도 그리 좋은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것이다. 따라서 표절 및 자기복제 논문에 대해서는 본인이 자진철회를 하고, “이것은 더 이상 논문이 아닙니다”라고 선언할 수 있는 기회는 주어져야 한다. 그리고 모든 자수가 그렇듯, 그럴 경우 면죄부까지는 아니더라도 충분한 행정적·윤리적 고려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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